내 상식과 타인의 상식 사이, 그 좁혀지지 않는 거리에서
며칠 전, SNS에서 한 그림을 보았다.
지하철 좌석마다 높은 칸막이가 세워져 있고,
승객들은 칸막이로 나뉘어진 각자의 구획에 앉아 있었다.
그림을 보자마자 두 가지 생각이 동시에 스쳤다.
1. 저 구조라면 체격이 큰 사람은 아예 앉지도 못하겠다.
2. 사회가 스몰/미디엄/라지 같은 최소한의 옵션도 없이, 구성원 모두를 Free 사이즈 하나로 통일해서 가두는 것 같다.
이러한 연유에서 “다소 폭력적”이라고 댓글을 남겼다.
무심코 썼는데, 내 글에 달린 대댓글들이 무심할 수 없게 마음을 채근했다.
“O돼지들 버겁다.”
“돼지 OO들이 평범한 사람에게 폭력적인 거다.”

아니 여러분. 왜 이렇게 화가 난 건데요??
나는 ‘구조와 공간’의 폭력성을 가리켰는데,
누군가는 ‘타인의 인격’과 그로 인한 '나의 피해'로 뛰어가 있었다.
와. 신선해.
전혀 상상하지 못한 결의 해석이야.
다양한 생각도 생각이지만, 원색적인 비난이 제법 놀라웠다.
이토록 다양한 관점을 단 몇 분 만에 마주할 수 있다니,
SNS는 참 즉각적인 세상이구나.
역시 IT 강국. (옛날사람 같나.)
같은 그림도,
같은 단어도,
다른 관점에서 읽히면 이렇게까지 차이나는 결론에 도달하네.
이건 의견 충돌이 아니라, 애초에 출발점이 다른 일이다.
문득 잊고 있던 일화 하나가 떠올랐다.
언젠가 운전 중인 어느 때, 8차선 도로 반대편에 한 할머니가 서 계셨다.
'설마 8차선을 무단횡단 하시겠어?'
내 기준에서는 상식적으로 불가능한 선택이니,
기존 속도대로 주행을 이어갔다.
그러나.
할머니는 정말 건너기 시작했다.
앞차가 급히 브레이크를 밟으며 아찔한 순간이 지나갔다.
동승자는 나를 나무라며 말했다.
네 기준으로 세상을 보니까 그렇게 생각한 거야.
네 상식대로였다면, 애초에 할머니는 저기 서 계시지도 않았겠지.
SNS의 지하철 이미지도,
그 도로 위의 장면도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다.
우리는 모두 제각각의 세계관과 경험으로 세상을 해석한다.
그리고 그 각자의 해석이 상호 다를 수 있음을 잊는 순간,
다름은 틀림이 되고,
대화는 이해가 아니라 공격을 향한 가드 올리기로 바뀐다.
명쾌한 해결방법까진 모르겠다만,
내가 취해야 할 행동은 알겠다.
내가 말을 조금 줄이고,
상대의 출발점에 더욱 귀를 기울인다면
세상은 ‘내 상식이 전부’가 아니라
‘여러 상식이 공존하는 곳’이라는 걸 알게 되겠지.
물론 그 다양한 상식이 때로는 나를 불편하게 만들 수도 있다.
하지만 어떤 날에는, 뜻밖의 웃음을 건네기도 한다.
실제 어느 이의 대댓글이 그랬다.
“비만감수성 높으시네요.”
저 글 보고 육성으로 웃었다.
몰랐다. 내가 높다 높다 비만 감수성까지 높다니.
하여, 오늘은 말을 줄여볼 작정이다.
덜 말하면 더 잘 들리고,
더 잘 들리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있겠지.
그게 설령 내 세계관을 슬며시 비웃는 또 하나의 블랙코미디일지라도.
말을 줄이고 지갑부터 열어보자.
말은 줄여도 소비 충동은 어찌하지 못하는 나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