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길 고장 난 지하철 안내판 앞에서 떠올린 생각
지하철 환승 구간 한가운데 있는 안내 모니터가 며칠째 고장이다.
이 고장은 큰 사고를 초래할 사안은 아니다.
다만 코앞에서 안타깝게 놓친 그 열차 하나로 인해
오르내리는 계단을 종종 대고
사무실 책상에 앉기까지 마음이 초조해질 직장인에게는,
이건 꽤 치명적인 고장이다
아침 5분은
생각보다 많은 걸 좌우한다.
그리하여 서울교통공사 담당자님께 요청드리는 것으로는
부디 저 같은 게으른 직장인을 헤아리시어,
서둘러 고쳐주시옵소서.
사실 조금 늦게 고쳐도
지하철은 여전히 잘 운행될 것이다.
회사도 마찬가지다.
회사도 대체로 망하지 않을 것이다.
늘 그렇듯이.
마침 어제 퇴근 직전에 부사장님께서
안 해도 당장 업무상 결함이 없음에도,
굳이 ASAP라는 말까지 덧붙여 업무를 지시하신 터라.
뿔이 난 채로 마음 급히 움직이는 출근길이었다.
그러던 중 마주한 지하철 모니터와 공사 직원을 향한 내 읍소로,
이내 이렇게 생각을 고쳐본다.
'아, 이걸 빨리 확인하시고 싶으신 마음에
기다리는 시간이 꽤 불편하실 수 있었겠다.'
어쩌면 나의 환승 구간 부사장님의 집무실은 그리 다르지 않다.
정보가 없어서 불안하고,
기다림이 길어질수록 괜히 초조해지는 상태.
사실 솔직히 말하자면
내가 의미를 부여하든, 투덜대든, 냉소적으로 넘기든,
데드라인은 줄어들지 않고 해야 할 일은 결국 내가 할 것이다.
그러니
마냥 귀찮은 ‘업무’로 여기지 말고,
고장 나지 않았어야 할 안내판 같은 거라고 생각해보려 한다.
없어도 큰 사고는 아니지만,
있어야 하루가 덜 꼬이는 것.
우리나라에는 이런 말들이 있다.
비 오는 날 결혼하면 잘 산다.
궂은날 이사하면 탈이 없다.
논리로 보자면 대부분 근거는 빈약하겠다.
때문에 냉정하게 말하면
적당히 우아한 자기합리화라고 판단한다.
언제부터 시작됐는지 모를 저런 관용어들이
사라지지 않고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는 건,
우리 모두는 불운을 증폭하기보다
견딜 수 있게 만드는 데 더 능한 사람들이라는 뜻이려니.
그렇다면
우리는 배달의 민족이기 전에 위로의 민족이겠다.
내가 글을 쓰는 지금의 이 합리화도 그 연장선인거지.
급한 일을
‘누군가의 불편을 줄이는 일’이라고 부르고,
고장 난 하루를 ‘의미 있는 하루’로 해석하는 것.
현실을 바꾸진 못해도 하루를 버티는 데는 꽤 쓸모가 있다.
내일도 고장 난 안내판 앞에서 열차를 기다리며 생각해야겠다.
이 일이 세상을 바꾸진 못하겠지만,
적어도 누군가의 아침을 조금 덜 불안하게 만들 수 있다면.
이 정도 자기 합리화쯤은 꽤 한국적인 미덕이 아닐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