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심 앞에서까지, 만 원을 계산기로 돌려본 나란 놈.

by 근노보

연말이 다가올수록, 세상은 유독 '선(善)'을 강요한다.


평범한 어느 누군가가 알고 보니 기부 천사였다든가,

어디 기업이 얼마를 기부했다든가.

요새는 좀 나아졌다만 여기저기 구세군 냄비도 있고.

왜인지, 그런 장면들을 볼 때마다 의도적으로 거리를 두는 편이다.


나에겐 그것들이
어버이날에'만' 부모님께 잘해드리고,
어린이날에'만' 아이에게 잘해주자는 일종의 이벤트 같다.



얼마 전, 아이와 인사동에 갔다.


언제 이렇게 관광업이 회복한 건지.

인사동 골목은 한복을 입은 외국인들로 가득했고

도로 한복판까지 진열대가 나와 있는 현란한 기념품 상점들에

음악 소리까지 더해져 그야말로 문전성시였다.


때문에 마음이 조금 예민해진 터였다.

아이 손을 놓치지 않으려고 괜히 손에 힘을 주고,

인파 틈을 비집고 나오듯 목적지를 향해 걸음을 재촉했다.


그렇게 앞만 보고 걷던 중, 갑자기 아이가 걸음을 멈췄다.


아이 시선에 따라 고개를 돌려보니,

붐비는 사람들 다리 사이로

장애를 가진 분이 한겨울 차가운 바닥에 엎드려 도움을 구하고 있었다.


저분은 뭐 하시냐는 아이의 물음에

‘구걸’이라는 단어를 써도 되는지 잠시 망설였다.

가난, 빈곤, 물질적 불평등 같은 개념은 아직 이 아이의 세계관에는 없으므로, 설명이 어려웠다.


그러던 중 아이가 국제기구의 한 기부 광고를 기억해 내면서 난처함에 빠진 나를 구해주었다.


우리, 저분께 만 원 드리자.

한 치의 망설임 없는,

기쁨에 가득 찬 어투였다.


만 원?

머릿속 계산기가 즉시 돌아갔다.


시사 프로그램 애청자로서,

길에서 받은 돈은 그 사람에게 그대로 남지 않고 뒤에서 관리하는 조직을 거쳐

일종의 상납 구조로 흘러간다는 이야기가 또렷하게 떠올랐다.

(단 20년도 더 된 기억이다)


이건 감정의 문제가 아니다.
이건 합리적인 판단이다.
우리 아이도 이제는 세상이 그리 예쁘지만은 않다는 걸 알 때가 됐다.


와. 이 얼마나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부모인가.


나는 아이의 손을 이내 잡아당겨 가던 걸음을 더 바삐 채근했다.

그리고 아이는 아무 말이 없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이 순간까지, 마음이 무겁다.

만 원이 뭐라고,

그 만 원에 눈이 멀었다.


아이의 동심을 지켜주고 싶은 마음보다

내가 만들어 낸 그럴듯한 논리가 먼저였다.

하루 커피값으로 만 원이 훌쩍 넘는 돈도 대수롭지 않게 쓰는 주제에.


나는 스스로 선의를 갖고 있다고 믿어왔다.

결코 기부를 하기 싫은 게 아니다.

단지 그 선의를 실행하기 전에 몇 가지 확인이 필요하고 증빙을 요구하는 사람일 뿐이다.


하지만 연말을 기념해 솔직해지자면.

만 원, 아깝다.

실은 ‘온전히 도울 수 없다면 하지 않는 게 낫다’는 그럴듯한 말 뒤로 이런 마음을 숨기고 있었다.



그래서 며칠 뒤,

기부 대신 로또를 샀다.


아주 교묘한 선택이다.

혹시라도 되면 좋고,
안 되더라도 복권 구매 금액의 일부는 어딘가에 기금으로 쓰인다지?


와. 이 얼마나 세련된 일석이조란 말인가.

기부도 하고

꿈도 사고

조금의 손해도 헷지하고


어른의 사고는 참 효율적이다.


그리고 결과는 뻔하다.
낙첨(이지만 이 돈의 40% 이상이 어딘가에 도움이 되겠지).


이건 기부에 대한 글이 아니다.

나라는 인간에 대한 관찰 기록이다.

직접 주는 건 망설이되 사회적 시스템으로 확인되면 마음이 편해지고,
선의마저 손익 계산을 거친 뒤 비로소 컨펌하는 사람.


연말이라고
사람이 갑자기 나아지진 않는다.




다음에 다시 그런 상황을 마주한들, 아마 나는 또 망설일 것이다.

만 원 앞에서 합리성이라는 무기로 방어할 것이다.


그래도 한 가지는 분명하다.

아이 앞에서 그 망설임은 분명 부끄럽다.


쓰고 보니,
어버이께 특별히 효도를 다하지 않는 나 같은 자녀에게는
어버이날이라도 있다는 사실이 꽤 유의미하게 느껴진다.


연말에 기부 이야기가 많아지는 것도,
그때만이라도 한 번쯤 더 돌아보라는 뜻이었다보다.


모두 의미가 있어서 기념일이 된 것이다.

마치 우리가 의미 있게 태어난 것처럼.





바야흐로 연말이다.
존재 자체로 이미 충분한 우리 모두,
한 해 동안 수고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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