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브런치를 구독하지 않는 나의 라이벌 작가 지망생에게
내 핸드폰에는 '브런치' 앱이 깔려 있다.
매주 글을 발행하고 있으니 당연하다.
한편 배우자의 핸드폰에도 '브런치' 앱이 깔려 있다.
다만 나를 구독하거나 응원하려는 게 아니다.
본인이 데뷔하려고 깔았다고 한다.
저 무지막지한 마이웨이와 산 지 벌써 16년이다.
마침 그의 생일 즈음이기도 하고.
하여 오늘은 나와 정반대의 방식으로 삶을 살아가는 배우자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우리는 6년을 연애했고, 10년을 결혼했다.
숫자로 적고 보니 제법 길다.
보고 싶어 죽겠거나, '이 사랑 통역이 되나요?' 같은 꿀 떨어지는 달달한 눈빛을 주고받는 관계는 아니지만
과하지도 부족하지도 않은 수준에서 적당히 서로를 믿고, 응원하고, 좋아하며 살고 있다.
상호 그럴 거라 믿는다. 아마도 그럴 거다.
나의 배우자는
경제공동체이기 전에, 회사생활 선배이기도 했다.
언젠가 상위자와의 마찰로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을 때,
그는 무심히 본인만의 비법을 전수했다.
나는 일단 그 앞에서는 '네'라고 해. 그리고 안 해.
그게 무슨 소린가 싶었는데, 들을수록 묘하게 설득되었다.
일단 수긍하고 안 하면 불필요한 감정 소모가 없단다.
그리고는 시간이 흘러 상사가 물으면 그제야
"말씀하신 대로 해봤더니 이런저런 문제가 있더라, 이 방법은 어떠시냐"라고 되묻는단다.
무조건 싸워 이기려고 달려들어서 상처뿐인 승리를 거두거나,
아니면 내가 먼저 꺾여버리던 나에게 그의 방식은 꽤나 충격이었다.
태풍에 꺾이는 건 고고하게 서 있는 나무이지, 바닥에 붙어 유연하게 눕는 풀이 아니다.
내가 어떤 태풍에도 쓰러지지 않는 나무가 돼 보려고 안 되는 용을 쓰는 동안, 그는 풀이 되어 자신을 고요히 지키고 있었다.
그는 집에서도 쉽게 휘둘리지 않는다.
내가 회사 일로 들숨과 날숨을 내뿜어도 굳이 먼저 묻지 않는다.
그래도 내가 말을 꺼내면 그땐 자기 일처럼 같이 고민하고 방법을 찾아준다.
예전엔 배우자의 저러한 태도가 무심함인 줄 알고 서운했다.
그러나 16년을 살다 보니 그만의 가치이려니 한다.
함부로 상대의 영역에 발을 들이지 않는 것.
그것이 그가 상대를 존중하는 방식이자 본인의 평온함을 유지하는 비결이다.
그는 굳이 사서 스트레스받지 않는,
참으로 태평한 성격이다.
어느 때는 그 느긋함에 속이 터지다가도,
결국엔 그 여유로움이 못내 부러워진다.
어디서든, 누구 와든 자기만의 페이스를 유지하는 나의 배우자를 보면서 '존경한다'는 표현까지는 좀 멋쩍고.
대신 '부러워 죽겠다'는 말이 더 솔직하겠다.
그는 오늘도 여전히 그 단단한 페이스를 유지하고 있다.
서두에 언급했다시피, 그는 내 글을 구독하지 않는다.
나 역시 구독을 구걸하지 않았다.
저조한 구독자 수로 초라한 배우자를 위해
본인이 한 명의 구독자가 되어 응원하려는 '스윗한 배우자'가 되기보다는,
본인의 '작가 데뷔'에 더 집중한 사람.
어쩌면 그게 그 다운 건지도 모르겠다.
곁에 있는 사람이 무얼 하든 흔들리지 않고,
자기만의 속도로 자기만의 길을 가는 것.
내가 8개월 동안 매주 글을 쓰고 조회수의 노예가 되어 가는 사이,
그는 조용히 자기만의 등단 타이밍을 노리고 있었던 것이다.
배우자의 글을 응원하지 않는 무심함에 서운해하기엔,
그의 그 단단한 '마이웨이'가 가진 힘을 이제는 너무 잘 알아버렸다.
어쩌면, 이번 생에 내가 그를 부러뜨리긴 글렀나 보다.
어차피 넌 이 글도 안 보겠지?
(그래도 혹시 알아, 작가 신청하려고 들어왔다가 메인 화면에서 내 글을 마주칠지.)
생일 축하한다, 나의 라이벌 작가 지망생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