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그 부장님들. 왜 그랬는지, 이제야 알겠다.
요즘 내 일상을 주식으로 치자면 전형적인 박스권이다.
어제와 오늘이 크게 다르지 않은 일상.
40대 직장인의 삶이란 대개 그렇다.
새로운 '이벤트'라고 해봐야 고작 수면내시경 일정이나 아이의 방학 일정을 체크하는 정도.
이런 낮은 변동성은 삶을 안정시키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생기를 조금씩 갉아먹는다.
영양가는 있지만 다소 퍽퍽한,
닭가슴살 같은 일상.
그래서인지 요즘 나는 자꾸만 외부 서사에 눈을 돌린다.
이를테면, 팀 막내의 '말랑말랑한 주말' 같은 테마들 말이다.
내가 신입사원이자 미혼이던 '야만의 시절',
나는 우리 팀의 살아있는 이야기 소재였다.
부장님들은 이상하리만큼 내 연애에 관심이 많았다.
“요즘 만나는 사람 있어?”
“주말에 소개팅은 했어?”
"결혼은 하지 마. 그래도 연애는 해야지."
처음엔 웃으며 넘겼고, 두 번째도 괜찮았다.
하지만 세 번째부터는 피곤함을 참을 수가 없었다.
사적인 나의 이야기가 회사에서 소비되는 느낌이 썩 유쾌하지 않았다.
대체 왜 남의 연애사를 이렇게까지 궁금해하는 걸까.
(당시 연애사가 순탄치도 않아 예민했을 시기다.)
그 이후로 나는 점점 말수를 잃어갔다.
동시에 개인정보와 혼밥의 중요성을 배워갔다.
얼마 전, 팀 막내와 점심을 먹다가
내 입에서 나도 모르게 이런 질문이 튀어나왔다.
주말에 뭐 해?
막내는 멈칫하며 말했다.
“그냥... 집에 있으려고요.”
아...?!
그 순간 깨달았다.
이거, 그 질문이다.
까마득했던, 나의 미혼인 시절.
부장님들이 그렇게 좋아하시던 바로 그 질문.
‘주말에 뭐 했어?’
뜬금없게도,
20여 년이 지난 이제서야 그들이 이해되기 시작했다.
아마도 당시 그분들 역시
어제랑 오늘이 비슷하고, 작년과 올해가 비슷하고,
아마 내년도 비슷하게 흘러갈 것 같은 이 느낌.
그 평이함 속에서 누군가의 말랑말랑한 연애 얘기는
대리만족이 아니라 그냥 살아있다는 느낌이었던 거구나.
회사라는 무미건조한 공간에서
누군가의 핑크핑크한 이야기는 의외로 자극적인 점심 메뉴였을 테니까.
이제 와 생각해 보니 나에게 질문하셨던 그분들,
대체로 회의실에서는 볼 수 없던 눈빛이었다.
똘망한 눈에 한가득 웃음을 머금은 표정.
(하. 지금 나도???)
(아쉽게도) 2026년 지금
그때는 괜찮았을지 몰라도 지금은 아니 된다.
이해가 된다고 해서 같이 해야 하는 건 아니다.
무엇보다 나는 알고 있다.
신입사원이던 시절
그 질문이 얼마나 날 피곤했는지.
시대가 바뀌었고,
선이 생겼고,
막내는 나에게 사생활을 공유할 이유가 없다.
그래..그게 맞다..... 만 좀 서운하다.
사람은 생각보다 쉽게 빌런이 될 수 있겠다.
조심하자.
하여 오늘 점심은, 조용히 혼밥을 하기로 했다.
비겁하지만
빌런이 되기 전에 멈추는 것도 제법 어른스러운 일이다.
말을 줄이면 더 잘 들린다고 했다.
막내의 연애사로 얻을 얄팍한 도파민보다는,
혼자 조용히 식사하며 내 감정을 관리하는 쪽이 훨씬 남는 장사다.
실제로 밥값도 굳었다.
그러니까 오늘 내 점심은 남는 장사다.
'막내의 자유'도 지켰고 '나의 품격'을 챙겼다.
꽤 괜찮은 쿨거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