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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메케메케 May 19. 2016

마다가스카의 펭귄, 진짜 나

있으면서도 없는, 나 다움

마다가스카의 펭귄 23화 - 진짜 사나이  보러가기


아이들을 위한 에니매이션에도 뼈가 있다. 어쩌면 교육적으로 당연한 일이지만, 본인이 성장했다는 자만심 때문인지 하찮은 취급을 하곤 했다. 그러나 거기엔 성인들이 봐도 배우고 돌아볼 점이 있다. 이번에 본 '마다가스카의 펭귄'이라는 에니매이션이 그러했다.




여자가 되는 것은 죽을 정도로 싫다


남자로서 자부심 넘치는 특공대장 펭귄 '스키퍼'는 돌연 스스로가 암컷이라는 판정을 받게 된다. 언제나 "사나이다움"에 자긍심을 가지고 살아온 그로써는 충격이었고, 시한부 인생이라도 선고받은 듯 반응했다. "남자다워야 한다"는 마음 어느새 "나"가 되어 스스로를 고통스럽게  것이다.


"나는 절대 그런 사람이 아니야!" -스키퍼-


남자는 남자로 태어나고, 성장하며 다시 남자가 된다. 무슨 말일까. 이미 태어난 시점에서 우리는 이미 온전하게 존재했는데, 사회적으로 성별에 대한 학습을 받고 뿌리 깊은 고정관념과 에고를 받아들이게 된다. 그렇기에 성장하여 남자가 된다는 말은 곧 남성적 행동양식을 학습한다는 말이다. 그리고 그것이 스스로의 진짜 모습인 마냥 사용하며 살아간다. 결국 남자로 태어나 남자가 된다는 말은, 온전한 나로 태어난 후, 불완전한 무언가로 스스로를 축소시키는 작업이다.


그런 작용 속에 "진짜 나"는 사라져있다. 대신 그 자리에 '학습된 남성상'이 자리하고 있기에, 그 남성이라는 가면을 떼어놓는 일은 마치 나 자신을 갈기갈기 찢는 것만 같다.



우스꽝스러운 자화상


결과적으로 스키퍼를 암컷이라고 판정 내려준 기계는 고장이었지만, 이 사실을 모르는 그의 마음은 이제 자신을 여성이라고 느끼기 시작한다. 마음의 힘은 대단해서 사실과 무관하게 그것이 진짜인 마냥 흘러가도록 한다. 본래 그는 호탕하고 지도자적인 스타일 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자'라는 딱지가 붙은 순간 약하고, 겁이 많아지며, 남자들 뒤치다꺼리나 하려고 하는 전통적인 여성상에 자신을 대입한다.


결국 스키퍼는 '남성'이라는 가면이 깨지자, '여성'이라는 가면으로 바꿔 쓴 것에 불과하다. 가면을 쓰지 않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왜 자꾸 스스로를 제한하는가. '나'라는 존재는 어느 한 가지로 규정되는 무언가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끊임없이 다른 가면 안에 스스로를 가둔다. 하나의 가면이 깨지면 다른 것으로 바꿔 쓰며 끝없이 '나'라는 왕좌를 가면에게 내어준다.


우리는 스스로를 단단히 착각하며 살아가고있는지도 모른다.


스키퍼의 이 곤혹스러운 표정은 우리의 모습이 아닐까. 가면 쓰는 일을 멈추지 못하고 바꿔 쓰는 것만 하다 보니 자꾸 어딘가 위화감을 느끼고 두려움에 떤다. 리본을 매고 스스로를 암컷이라 믿는 이 펭귄 모습은, 우리의 우스꽝스러운 자화상이다.



나 다움이란, 있으면서도 없다.


스스로를 무언가로 규정하는 일은 고통스럽다. 언제까지나 그 가면 아래에서만 살 수 있다면 다행이지만, 모든 것에는 만남과 끝이 있는 법이므로 그 가면은 언젠간 깨지고 만다. 우리는 살아있는 동안 남자나 여자로, 혹은 어떤 직업이나 성격에 스스로를 대입하며 살아간다. 그러나 어느 것도 영원하지 않다. 우리가 죽고 흙으로 돌아가면 어떤 가면도 더 이상 의미를 잃는다.


"네가 암컷이라면, 네가 하는 모든 행동은 여자다운거야."


나 다움이란 무언가로 규정되지 않음으로써 존재한다. 여자이기 때문에 무언가를 하는 것은 외부의 무언가를 흉내내는 것에 불과하다. 역으로 무언가를 하는 자신이 여자라는 점을 이해하는 쪽이 나 다움이다. 행동과 마음에 근거하여 스스로를 정하지 않고, 그저 스스로가 원래부터 온전했음을 이해하면. 가면은 이제 필요 없을지 모른다.



가면은 내가 아니고, 가면을 쓴 게 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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