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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메케메케 Jul 23. 2016

에니어그램의 지혜, 통합의 함정

왜 통합하세요?

에니어그램을 공부하면서 든 의문이 한 가지 있다. 우리는 왜 에니어그램을 공부하고 있냐는 것인데, 아마 보통은 '통합하여 정신적인 성장을 이뤄내기 위함'이라고 답하지 않을까 싶다. 그렇지만 과연 우리는 그 '통합'이라는 개념에 대해 확실히 인지하고 있는 걸까? 우리가 생각하는 통합 개념이 틀렸다면, 처음부터 바라봐야 할 방향이 잘못되었던 것은 아닐까?





통합하고 계신가요?


보통 에니어그램을 안다는 사람들에게 통합의 의미를 물어보면 "정신적으로 건강한 상태"정도로 대답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리고 각각의 9가지 유형별로 화살표 반대방향으로 가면 통합이라는 말이 따라붙는다. 예를 들면 두려움 때문에 안전을 추구하는 6 유형이 9 유형처럼 여유를 가지게 되면 통합이고 정신적으로 건강한 상태라 설명하는 방식이다.


그렇지만 여기서 의심해볼 만한 것이 있다. 6 유형이 가지게 된 여유가 사실은 (6 유형 고착에 불과한) 안전추구인 게 아닐까? '통합' 자체를 안전하기 위한 무언가로 이미지화하면, 이미 통합했다는 느낌 자체가 6의 안전을 이야기했을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게 이미 두려움이기에, 통합과는 거리가 멀다. 모든 유형의 '통합하고자 함'을 간단히 표현해보겠다.


1번이 통합하려 한다 : 그것이 완벽이다.

2번이 통합하려 한다 : 그것이 도움이다.

3번이 통합하려 한다 : 그것이 성취다.

4번이 통합하려 한다 : 그것이 특이다.

5번이 통합하려 한다 : 그것이 사색이다.

6번이 통합하려 한다 : 그것이 안전이다.

7번이 통합하려 한다 : 그것이 행복이다.

8번이 통합하려 한다 : 그것이 강함이다.

9번이 통합하려 한다 : 그것이 평화다.


이미 '통합하려 함'자체가 고착에 뿌리내려있다. 위와 같은 게 정말 통합이라 여기는가? 그 정도로 일반적으로 알려져있는 통합 설명은 허술하다. 통합하려고 함 자체가 고착이다. 물론 통합하지 않으려 하는 것도 같은 원리로 고착에 불과하다.


당신이 하는 모든 행동은 고착에서 비롯되어있다. 심지어 통합했다는 느낌도 고착이다. 고착이라는 감옥 안에서 행복한게 정말 통합이라 생각하고있는가?


애초에 '~하려 함' 자체가 고착이기에, 무언가 할 수 있는 것은 없다. 통합하기 위한 행동조차 그가 해당 유형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음을 알려주고 있다. 그렇게 견고한 감옥이 우리를 둘러싸고 있다. 현대에 에니어그램을 처음 알린 구르지예프는 이를 "인간 기계"라 설명하였다. 통합했다는 느낌을 포함하여 우리가 가지는 모든 생각과 행동이, 결국 기계적으로 굳어져있는 고착의 결과물이라는 이야기다.



에니어그램의 지혜


나는 이것이 단지 내 개인적인 생각이 아님을 알리고 싶다. 이미 에니어그램 좀 안다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책, "에니어그램의 지혜"에서도 이를 언급하고 있음을 찾을 수 있다.


사실 에니어그램을 사용할 때 따르는 가장 큰 위험 중 하나는 슈퍼 에고가 성장을 위한 우리의 노력을 '떠맡고' 더 높이 올라가거나 통합의 방향으로 가지 않는다고 우리를 비판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현재에 더 많이 존재할수록 이들 목소리가 아무 도움이 안 된다는 사실을 깨닫고 그것에 에너지를 주지 않을 수 있다. -에니어그램의 지혜-


여기서 말하는 슈퍼 에고는 어린 시절부터 만들어진 우리의 9가지 고착을 이야기한다. 고착 스스로가 통합이라는 과제를 떠맡는 것이 정말 위험하며, 결국 아무 의미 없는 행동이라는 사실을 이야기해주는 부분이다. 위에서 언급한 '통합하려 함'이 바로 그것이다.


에니어그램의 지혜에서는 "통합하려 하지 말아라." 고 이야기하고 있는데 그다지 중요하게 읽히지는 않고 있는 듯하다. 실제 이 책의 후반부는 어떻게 통합하냐에 대한 파트지만, '통합'자체는 거의 언급되지 않으며 위 인용구처럼 오히려 통합하려 하는 것을 멈추라고 권고한다. 이는 '내려놓음의 에니어그램'이라 설명되어있다.



통합하려는 것을 멈춰라, 내려놓음의 에니어그램


이 글을 통해 '왜 통합하세요?'라는 질문을 던지고 싶었다. 지금 글을 읽으면서 다시 생각해보자. 통합하고 싶은 이유가 무엇이었나? 그것은 깊이 파고들어갈수록 자신의 고착과 연결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각 유형이 통합하고 싶은 이유는 고착에서 비롯되어있다.


고착을 내려놓듯이 통합도 내려놓아라.


무언가 하려는 것을 멈추고 그 마음을 들여다보아라. '~하려 함'속에 빠져 허우적대지 말고 그 하려는 마음 자체를 바라보아라. 통합은 보다 명상이 추구하는 것과 일치한다. 마음속에 어떠한 '두려움'이라는 암덩어리가 있을 때 그것을 껴안고 있는 자신을 알아차려야 한다. 두려움을 깨닫고 그것을 내려놓아라. 그것이 곧 통합으로 연결된다. 내려놓음이 통합인데 어째서 통합은 그토록 꼭 잡고 있는가? 이미 집착의 대상이 된 시점에서 그것은 고착이지 통합이 아니다.


또한 우리가 빠지지 말아야 할 곳은 "통합하지 말자."의 함정이다. 그것 또한 '~하지 말자를 하려 함' 아니겠는가? 어떤 길도 우리를 통합으로 이끌어주지 못하니 아예 시작부터 하지 말자는 말은 우리를 낮은 의식 수준 상태에서 머물게 만드는 고착의 함정이다. "통합하려는 것을 멈추자"는 말은, "통합하려는 것을 멈추자"라는 마음 또한 내려놓자는 이야기다. 그렇게 고착을 하나하나 내려놓을수록 순수 존재감인 진정한 참나를 맞이하고 영혼의 성장을 느낄 것이다.


고착 위에 통합을 씌우지 말아라, 고착을 벗어내면 그 안에 이미 통합이 있다.


개인이라고 하는 것,
자신의 존재를 육체의 삶과 동일시하여
자기를 '나'라고 부르는
그것은 자아이다.

육체는
자력으로 움직이지 못하며 자아감이 없다.
참나인 순수 의식 또한 자아감이 없다.

이 둘 사이에서 신비롭게도 자아감이 솟아나니
그것이 '나'라는 생각이다.

삶의 모든 고통의 뿌리에는
자아 즉 분리된 개별 존재라는 느낌이 있다.
그러니 그것은 가능한 한 모든 수단으로 없애야 한다.

이것이 자유요, 깨달음이며, 참나 실현이다.

-라마나 마하리쉬, '영혼의 자유 에니어그램'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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