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쩔수가없다>에 내재된 '가장의 굴레'에 대하여

<어쩔수가없다>가 전하고자 하는 주제의식에 대한 리뷰

by 에틱 유니버스

화제작 <어쩔수가없다>를 드디어 관람하였다. 거장 박찬욱의 영화답게 밀도 있는 이야기와 넘치는 미장센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눈을 떼지 못하고 이야기에 푹 빠져 영화를 보았다. 영화는 재미있었고 감독이 의도한 바인지는 알 수 없으나 내가 느낀 부분을 나만의 해석으로 리뷰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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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리뷰는 영화의 전반적인 스토리와 함께 스포가 될 수 있는 내용이 다수 담겨 있습니다. 따라서 영화를 관람하시고 읽어보시는 것을 적극 권장드립니다. 또한 앞서 밝힌 듯 이 해석은 지극히 저의 주관에 의해 작성된 것으로 감독의 의도와는 다를 수 있으니 이 점을 참고하여 읽어주시길 바랍니다.



09_59_12__62c38ce09f46f[H800-].jpg 화려한 색채의 미장센이 인상적이었던 전작 <헤어질 결심>
박찬욱 감독의 초기작의 차갑고 어두운 색채가 느껴진다

<친절한 금자씨>부터 <헤어질결심>까지의 박찬욱 영화는 따뜻한 색채로 우아하면서도 차가운 색채로 도도하며 기품이 가미되어 세련되면서도 고풍적인 느낌이 특징이었다. 반면 이번 작품은 다소 어둡고 거칠며 투박한 느낌이 영상을 가득 채운다. 이러한 느낌은 전작 <복수는 나의 것>과 <올드보이>의 느낌과 오버랩이 되는 듯 하다. 아마도 중심인물 자체가 남성 캐릭터이다보니 그런듯도 한데 그동안 각본 작업에 박찬욱과 콤비를 이루던 정서경이 참여하지 않은 것도 그 이유가 아닌가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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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 가장의 굴레를 다룬 이야기가 아닐까?

<어쩔수가없다>는 처음부터 끝까지 만수(이병헌)가 중심이 되어 이야기가 진행된다. 제지업에 오랜 시간 종사하던 만수가 해고를 당하게 되며 시작되는 이야기는 가장의 실직으로 인해 나타나는 상실감과 이 상실감을 극복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중년 남성의 눈물겨운 노력의 이야기이다. 얼핏보면 가장의 무게를 보듬고 위로하는 이야기로 전개될 듯하지만 이 영화를 차분히 곱씹어보면 의외로 그 메세지가 정반대로 다가온다.


봉준호 감독의 <마더>가 숭고하고 아름답게 인식되는 어머니의 모성애를 마치 괴물처럼 묘사했듯 중산층의 삶을 이어나가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가장의 모습을 괴물처럼 묘사한다.

sKIm1THLXOgDj85WEsCTRFKOhoY.JPG <마더>는 비뚤어진 모성애를 더욱 극대화 시켜 표현하기 위해 국민엄마 김혜자를 주연으로 캐스팅하였다.
만수(이병헌)과 범모(김성민)의 교집합, 그것은 가장의 굴레

그것은 만수가 첫번째 타겟으로 삼은 구범모(김성민)과의 교집합에서 매우 선명하게 드러난다. 만수와 범모의 교집합은 실직한 가장이라는 점과 아내의 불륜의 원인을 자신의 실직으로 치환한다는 것이다. 실직자가 된 범모는 아내인 아라(염혜란)의 아버지 명의의 집에 살고 있다. 게다가 음악카페를 차려주겠다는 장인의 제안까지 받는다. 하지만 범모는 이를 거절하고 오로지 재취업에 사활을 건다. 이 과정에서 아내의 불륜을 목격하지만 아내와 상간남에게 화를 내지 못하고 밖으로 뛰쳐나와 맨바닥에 온몸을 나뒹굴며 좌절하고 오열한다. 자신이 피해자임에도 불구하고 가해자에게 잘못을 묻고 따지기 보다 문제의 원인을 자신으로 돌리며 괴로움에 가득찬 것이다. 만수 역시 아내 미리(손예진)가 근무하는 치과의 원장 진호(유연석)와 아내의 관계를 의심하지만 그것을 못본척하려 애쓴다. 그렇기에 치통에 시달리던 만수에게 치료를 권하는 진호의 제안을 못들은척 회피하려 애쓴다. 만수의 치통은 실직과 동시에 생긴 고통으로 상징되는데 이후 실직이 해결되는 마지막 살해 직전 자신이 직접 앓던 이를 뽑아내며 마무리 짓는다.

mb_1758772462917236.jpg 범모는 온전히 자신의 힘으로 성공해야 하는 가장이다. 그것은 영화 제목처럼 어쩔수가없다.


아마도 이것이 바로 만수와 범모의 교집합이 아닌가 생각된다.

만수와 범모는 가장의 역할, 다시말해 경제적 역할이 모든 문제의 원인이라고 느낀다. 그렇기에 모든 문제는 자신이 경제적인 역할을 제대로 수행해내면 해결될 수 있다 믿는 것이다. 이러한 맥락으로 만수와 범모는 자신의 재취업을 배우자에게 보여줘야한다고 굳게 믿는다. 그래서 그 과정에 타인의 힘이 개입되서는 안된다. 범모에게는 아내의 아버지가 음악카페를 차려주는 것, 만수에게는 아내의 직장상사가 치과치료를 제안하는 것이같은 맥락으로 가장의 권위를 짓밟는 제안들로 인식된다.


이 영화는 이 지점을 가장의 무게를 짊어진 가장의 모습을 괴물의 욕구처럼 그려낸다. 감독의 의도였는지 모르겠으나 초반부의 미리는 허영심 많고 남편의 경제력을 밑바탕으로 살아가는 여성처럼 보여진다. 또한 관객이 미리와 진호의 관계를 부적절한 것으로 의심하게 만드는 장치를 여럿 만들어 놓는다. 하지만 후반부 미리가 사과나무 밑에 감춰진 추악한 진실을 확인하며 처절하게 부서지는 모습을 통해 그러한 관객의 시선이 오해였음을 입증한다. 또한 범모의 아내 아라 또한 범모를 살해하는 순간 자신을 이해하지 못한 그 태도가 문제라 외치게 한다.

news-p.v1.20250919.de002ac46e534472b0abcfd924666c95_P1.jpg 다시보니 사과나무 밑에 시신이 묻힌 것과 대비되는 장면처럼 느껴지는 장면

우리가 은연중에 믿고 있는 고정관념. 남편이 경제적 부를 아내에게 선사하며 가족이 유지되는 방식. 바로 그것이 사실은 틀린 것임을 꼬집는 것이다.

미리의 불륜은 오해였으며 아라가 범모를 살해한 이유는 경제적 문제가 아니었다. 다시말해 가장이 물어다주는 경제적 부가 가족을 지탱하는 힘이 아님을 비유적으로 전달한 것 아니었을까?


조용필의 고추잠자리 그리고 집단적 독백

범모를 살해하려 만수가 잠입한 순간. 총소리를 가리려 큰 음악소리가 울려퍼지는데 이로인해 범모와 만수 또한 아라는 서로의 말을 알아듣지 못한다. 특히 범모는 계속해서 상대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고 자신의 입장만을 읊어댄다. 심지어 범모는 만수를 아라의 불륜상대로 오해하고 계속 자신의 입장만을 설파한다. 이 장면은 매우 코믹하게 그려져 정말 웃음이 났지만 그 웃음은 사실 쓴웃음 같았다. 블랙코미디라는 표현이 적절하다고 느껴지는 장면이었다. 상대의 말을 들으려하지 않고 그저 자신의 입장과 논리만 늘어 놓는 모습은 가부장적 구조 안의 많은 우리네 아버지들의 모습과 오버랩되는 장면 같기도했다. 어쩌면 우리네 아버지들의 귓속에서 상대방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을 정도로 커다란 고추잠자리가 울려퍼지고 있는 것은 아니었을까 싶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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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에게도 가장의 굴레는 본능처럼 전해진다

만수는 아들 시원에게 은연중에 가장의 무게를 전해왔던 것으로 보여진다. 영화 <미나리>에서도 이와 같은 맥락의 장면이 있다. 병아리 감별사로 일하는 아버지가 아들에게 알을 낳을 수 없는 숫병아리는 아무 쓸모가 없기에 소각장에 불태워진다 말하며 가족 내에서 가장의 쓸모가 곧 존재의 이유임을 각인시킨다. 어쩌면 가부장제 사회 속에서 남성에게 그런 압박은 숙명과도 같다. 그렇기에 아버지 만수의 실직 후 어머니의 고통을 목격한 아들 시원은 가장으로서의 무게가 자신에게 왔음을 본능처럼 느낀듯하다. 그렇기에 범죄를 저지르는 철없는 선택을 하고 경찰서에 가게 된다. 그런데 이 상황에서 만수는 아들의 그런 행동을 꾸짖기보다 할아버지의 일화를 전하며 이 상황을 모면해야함을 주지시킨다. 이외에도 아내 미리 몰래 시원에게 담배를 돌려주는 등 어린나이임에도 마치 성인과 같은 존재임을 은연중에 각인시키기도 하는데 이를 통해 이 집안 가장의 굴레를 자연스레 전달하는 일종의 메타포가 아닐까 싶다.

4bafbdb3-1117-40c0-b663-91283663a8e7.png 영화 <미나리> 속의 아버지와 아들
<어쩔수가없다>는 정말 어쩔수가 없는 남자의 이야기

분명 이 영화는 남자의 이야기이다. 하지만 앞서 말한 듯 남성성을 거세당하는 고통을 겪는 가장의 모습 그리고 가족을 책임지겠다며 고군분투 하는 사투를 결코 숭고하게 포장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이 문제의 원인이며 계속 굴레가 되고 있음을 지적한다. <마더>의 혜자가 자식을 지키기위해 살인까지 저지르는 괴물 같은 어머니의 모성애를 비틀었듯 <어쩔수가없다> 역시 가족을 지키기 위해 살인을 선택한 괴물 같은 아버지의 가장의 굴레를 잔혹하게 비틀어버린 작품은 아니었을까 생각해본다.




*작품의 주제에 대해 나름대로의 생각을 정리하다보니 글이 너무 길어졌습니다. 사실 이 영화 속의 상징과 은유들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 싶었는데 분량 관계상 이 부분은 다음글에서 정리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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