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욱 감독 <어쩔수가없다> 영화 속 상징들의 의미
박찬욱 감독의 <어쩔수가없다>가 개봉 2주차를 맞았다. 그리고 어제 200만 관객을 돌파했다는 반가운 뉴스가 들려왔다. 다행스럽게도 최종 관객이 189만명에 그쳤던 전작 <헤어질결심> 비해 대중의 반응은 좋은 듯 하다. 이번 포스팅에서는 영화 <어쩔수가없다>에 표현된 다양한 상징들의 의미를 내 나름대로 해석해보고자 한다. 지난번과 마찬가지로 지극히 주관적인 해석이며 다수의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으니 관람을 예정하신 분께서는 영화를 관람하신 후 읽어주시길 당부 드리는 바이다.
만수와 미리의 계절의 상징
너무나도 많은 예술작품들에서 계절은 인생을 상징한다. 그래서인지 <어쩔수가없다>에서 역시 계절은 만수의 삶을 상징하는 것처럼 보여진다. 청춘을 의미하는 봄과 여름, 특히나 땀흘리며 고된 노동의 시간으로 치환되는 여름이라는 계절은 만수(이병헌)가 제지회사에 다니며 열심히 땀흘리던 계절을 의미한다. 그래서인지 첫장면에서 가족과 함께 고기파티를 준비하는 만수의 모습은 뜨거운 태양 아래에서 일하는 노동자와 같은 모습으로 보여지며 표정 역시 밝지만은 않다. 하지만 이윽고 화면의 톤이 노을이 지듯 변하는 순간이 생긴다. 만수가 가족들을 끌어안고 행복해하는 그 시점. 바로 여름내 일군 열매가 익고 수확하는 풍요로움의 계절 바로 가을을 의미한다. 아니나 다를까 만수는 가족을 안은채 다이뤘다며 행복해한다. 하지만 알다시피 가을은 짧다. 그리고 찾아오는 혹독한 계절 겨울이 기다린다. 겨울은 만수가 직장에서 해고 된 차갑고 시린 계절로 표현된다. 고군분투 끝에 다시 찾게된 만수는 다시금 가을이란 계절을 되찾게 된다. 하지만 첫장면에서의 온화하고 넉넉한 톤의 화면과 달리 차갑고 어두운 톤의 화면이 인상적이다. 그리고 바베큐 파티를 제안하는 만수를 만류하며 미리(손예진)가 말한다. "아직 겨울이니까..." 남편 만수가 일궈낸 결과물의 비밀을 깨닫게 된 미리는 더이상 그 풍요로움의 가을로 돌아갈 수 없게 된 듯하다.
만수의 아내 미리는 어떤 여자였을까?
다시금 물질적 풍요가 찾아왔음에도 밝은 표정이 아닌 미리를 보았을 때 미리는 남편의 부를 통해 자신의 행복을 가늠하는 여성은 아닌 듯 하다고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미리를 의심하게 되고 불안힌 존재로 느끼게 되는 순간은 만수의 해고 이후이다. 만수는 선물하면 도망간다는 속설이 있는 구두를 당당하게 선물할 정도로 당당한 남성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자신이 경제적인 역할을 제대로 수행해내고 있다는 믿음에서 기인한 자신감이었던 것으로 보여진다. 하지만 실직 이후 경제적 역할을 못하는 다시말해 가장노릇을 못하는 시점부터 만수는 미리가 떠날까봐 노심초사한다. 무도회 장면에서는 그것이 절정을 이루는데 관객 또한 자연스럽게 미리가 경제적으로 풍족한 치과의사 오진호(유연석)를 선택하는 것은 아닐까 걱정하게 된다. 하지만 이것은 철저한 오해였다. 미리는 진호와 부적절한 관계가 아니었으며 만수의 부만 탐하는 것이 아니었음도 경제적 풍요로움을 되찾았음에도 겨울이라고 인식하는 모습을 통해서도 분명하게 이를 알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만수와 미리의 계절은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마트 앞에서 옷이 벗겨진 만수
새로운 면접을 제안받으며 마트에서 해고된 만수는 관리자에 의해 옷이 벗겨진다. 속옷 차림으로 밖으로 내몰린 만수의 모습은 해고 노동자의 모습처럼 느껴진다. 옷을 입은 사람들 사이에서 수치스러워 하는 만수의 모습을 본다면 왜 해고시키는 것을 옷을 벗긴다고 하는지 짐작할 수 있을 듯 하다. 해고의 과정에서 느끼는 노동자의 모멸감과 수치심이 이를 지켜보는 관객에게 전달된 장면은 아니었을까?
만수에게는 다르게 전달되었을 말들
만수가 해고되고 생활력 강한 미리는 허리띠를 졸라매며 노력하지만 더이상은 어렵다고 말한다. 그리고 마치 만수의 회사가 그랬듯 가장 약한 자의 자리부터 줄여나간다. 바로 반려견이 그 대상이 된다. 결국 만수의 장인과 장모가 반려견을 데려가는데 그 과정에서 장인은 연신 재채기를 하며 "개털이 사람 잡네"라는 말을 한다.
우리는 일상에서 모든것을 다 잃은 사람을 개털이 되었다고 한다. 그런 의미에서 개털이 사람 잡네라는 말은 만수를 향한 비난처럼 느껴질 수 있는 표현이다. 하지만 영화의 마지막 다시 반려견을 데려왔을 때도 만수의 장인은 재채기를 멈추지 못한다. 개털이 사람 잡네는 정말 1차원 적으로 개털 알레르기를 의미하는 말이었던 것이라는 것. 만약 다시금 경제적 안정을 갖춘 상황에서 개털이 사람 잡네라는 말을 들었다면 만수는 그것을 자신에 대한 비난과 원망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뿐 아니라 아내 미리가 면접을 보러 가는 만수에게 전하는 응원도 의미 심장하게 들려온다. 바로 "다 해치우고 와!"가 그것이다. 자신이 모든 것을 책임져야한다고 믿는 만수에게 그 말은 정말 경쟁자를 죽이고 오라는 말처럼 들릴 법 하다는 생각이 든다.
3대에 걸쳐 그들이 땅에 묻은 것
만수는 자신이 죽인 고시조(차승원)를 자신의 앞마당에 묻는다. 그런데 재밌는 점이 있다. 바로 만수의 아들이 훔친 스마트폰 또한 땅속에 묻힌다는 것이다. 또한 만수의 말에 따르면 자신의 아버지 또한 키우던 돼지들을 모두 땅에 묻었다고 전한다. 할아버지-아버지-아들 이렇게 3대에 걸쳐 땅속에 무언가를 묻는다는 공통점이 있다. 차이점은 묻은 것이 무엇인가인데, 할아버지는 가축, 아버지는 사람, 아들은 기계를 묻는다. 그리고 이것들은 각각 시대별 가장 강력했던 노동력을 의미한다. 농업사회-산업사회-정보사회 속에서 자신의 자리를 위협할 대상들을 땅에 묻는 것을 보여준다는 점이 흥미롭다. 하지만 다시 말하자면 다음 사회에서도 우리의 자리를 위협할 대상들을 땅에 묻어야할 수 있다는 의미로 전달되기도 해서 다소 섬칫한 모습이기도 했다.
만수가 시조를 묻은 자리 위에 자라날 사과나무
태초에 아담과 이브가 깨물었던 사과가 탐욕과 욕망을 상징하듯 다양한 문학에서 사과는 탐욕과 욕망의 메타포로 활용된다. 시조의 시신위에 심긴 사과나무는 시조를 양분삼아 자라날 것이며 탐스러운 사과를 열매로 맺게 될 것이다. 그렇기에 앞마당의 사과나무는 추악한 진실 위에 자라나는 탐욕의 열매처럼 느껴진다. 그 열매의 근원을 알게된 가족들의 모습도 흥미롭다. 미리는 사과나무 아래 묻힌 것을 알게 된 후 급격히 어두워진다. 물론 만수를 비난하거나 원망하지 않는다. 만수의 선택은 불가피했음을 인정하는 듯도 하다. 하지만 미리는 만수에게는 풍요로운 가을이 왔음에도 여전히 겨울이라고 언급하는 모습은 복잡하면서도 미묘한 미리의 감정선을 느낄 수 있게 한다. 만수의 선택도 어쩔수가 없었고 그 선택을 목도한 미리의 심정도 어쩔수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유만수 그 이름에 관하여
유만수의 성이 You 그리고 이름에 Man이 있다는 점은 유만수가 영화를 보는 당신이자 남성을 의미한다고도 생각해볼 수 있다. 제지업체에 종사하는 노동자가 아닐지라도 우리는 누군가에게 대체될 운명 속에 처해있는 또다른 유만수들이라는 점은 몹시 섬뜩한 구석이 있는 부분이다. 영화의 말미에 만수가 그렇게 두려워하던 뱀처럼 생긴 기계들이 나무를 베어가며 종이를 만드는 제지업체의 구성원이 되어버린 모습을 본다면 더더욱 그렇다. 언젠가 우리를 대체할 기계들을 땅속에 파묻어야 할 날이 올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 다음에는 또 다른 것을 묻어야할 시대가 오게 되지 않을까? 결국 이 굴레는 어쩔 수가 없는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