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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백십 Dec 11. 2020

단 한 번도 뒤돌아 보지 않았다

엄마에 대한 이야기는 아껴두고 싶었다. 여전히 비루하고 초라한 내 글에 엄마를 담고 싶진 않았다.

엄마에게 전화 한 통 하지 않는 딸이지만 엄마는 알고 있을까? 날마다 엄마에게 쓰고 있는 마음속 편지. 빨래를 널다가도 엄마에게 말을 걸곤 한다는 걸.



나 어떡하니... 암이래...



2년 전 홍콩으로 돌아가기 위해 공항버스를 타고 가는 도중 전화로 들었다. 엄마가 암이라고.

순간 멍했다. 암이 우리에게까지 찾아올 줄은 몰랐다.

공항 라운지에서 밥을 먹는데 하염없이 눈물이 흘러나왔다. 비행기를 취소 못하고 그냥 돌아가던 첫째 딸. 결국 그 정도였다 난.

1기였다. 시술로 가능하다고. 가슴을 쓸어내렸다. 1기에다가 수술이 아닌 시술이라니 행운이라고까지 생각했는데 딱 거기까지 였나 보다 자식새끼들 생각하는 수준이.

세상에 별 거 아닌 수술은 없다. 아니 적어도 당사자에겐 그렇다. 본인에게 닥친 일은 시술일지라도 남들 위중한 수술보다 백 배는 더 별 일인 거였다.

입원기간 내내 엄마는 낯선 모습을 보였다. 세 살 아기가 되었다. 나야 홍콩에 있어 건너 들었지만 두 동생들에게 병 투정이 심하셨다고. 틈만 나면 아프다, 주물러봐라, 초절정 예민함에 간병인과 싸우기도 여러 번이셨다고 한다.

퇴원 후에는 위암 투병 사실을 주위 아무에게도 알리지 말라셨다. 본인이 아프고 병약한, 불쌍한 이미지로 동정받는 게 싫었던 걸까.

어쩌다 알게 되어 전화 한 친한 친척에게도 센 척 아무렇지도 않은 척 통화하는 걸 우연히 들었다.



별거 아니야, 잠간 아팠던 정도지 뭐.



레이유문 라이트하우스


엄마는 어릴 적부터 나의 롤모델이었다. 매일 멋진 투피스 정장을 입고 또각 구두를 신으며 운전하고 출근하는 엄마는 늘 멋져 보였다.

영화나 티브이 속 멋진 영화 캐릭터가 나오면 청불 등급, 시험기간에 상관없이 얼른 보고 오라며 등 떠밀곤 했다.

‘양들의 침묵’ 속 조디 포스터를 보자마자 초딩인 날 데리고 영화관에 가는 걸 서슴지 않았으며  ‘포레스트 검프’를 보고 넘치는 감동을 주체 못 하고 중간고사 기간이던 딸의 손을 잡고 그날 저녁 또 한 번 보러 가기도 했다.


어느 홍콩의 밤



기숙 고등학교 입학시험을 보느라 낯선 여관에서 친구 엄마와 함께 자야 했던 날 밤. 다리 밑 개울까지 꽁꽁 언 추운 겨울이었다. 바빴던 엄마는 밤 아홉 시 무렵에야 잠깐 들를 수 있었다.


“자신 있지?”

마지막 한마디 던지고 어두컴컴한 골목길 속으로 돌아가던 엄마. 엄마는 단 한 번도 돌아보지  않았다. 그땐 참 매정하다 생각했다. 낯선 곳에서 친구 엄마에게 딸을 맡기고 가면서도 어쩜 저리 담담할 수 있을까. 부아가 치밀기도 했다.

엄마의 뒷모습은 한동안 그렇게 남아 있었다.

아이를 낳아 키우고 있는 지금, 이제 조금은 안다.

오히려 뒤돌아보지 않았던 마음이 백배는 힘들었겠구나, 초조하고 불안해하는 딸 앞에서 별일 아니란 듯이 태연하게 말하는 게 훨씬 더 어려운 일이었겠구나.

날 등지고 걷던 엄마가 보이지 않게 소리 죽여가며 앞에서 참았을 눈물을 그땐 몰랐다.


해질녁 언젠가


위암 수술을 하고서도 엄마는 일을 계속하셨다.  사실 엄마의 일에 별 관심이 없었다. 그저 아직까지 하는 거 보면 나름 어렵지 않은 일인가 보다 했다.

그러다 지난번 코로나로 엄마 집에 한 달 이상 머물면서 알았다. 전화기에 대고 소리소리 질러야 하는 일이었다.

엄마의 사업체는 집에서 왕복 두 시간 거리에 있었다.  그것도 대중교통이 아닌 자차로. 매일 고속도로를 타고 몇 시간씩 운전해야 하는 거리.

한 번은 가까운 데로 옮기는 게 어떻겠냐고 물었더니 정색을 한다. 사업장은 근처도 가기 싫단다. 다들 꼴도 보기 싫고 퇴근하면 한시라도 빨리 그 동네를 벗어나고 싶을 뿐이라고.

아. 엄마의 사회생활도 결코 쉽지 않았구나. 목이 메어와 더 이상 말을 이어 나갈 수가 없었다.


올드 레이유문 쿼리의 요새



그러다가 지난주 또 입원하셨다. 이번에는 담낭과 담관을 제거하는 수술이었다. 막내딸이 제일 효녀다. 엄마병 핑계 삼아 직장도 때려치우고 엄마 옆에 꼭 붙어있다. 투덜대고 투닥이며 엄마와 말씨름도 열심히 하는 것 같지만.

수술 마치고 나온 엄마.
핸드폰 너머로 본 엄마 얼굴,
창백한 얼굴에 기력이 하나도 없어 보인다.

입에 호스 반창고를 붙인 채 가녀린 팔에 여러 개의
링거줄을 꼽고 누워있는 기운 없어 보이는 저 초로의 여인은 누구일까.

학교에 올 때마다 제일 세련되고 아름다웠던 엄마. 그래서 항상 자랑스러웠던 엄마. 하지만 꾀병 부리며 조퇴했을 때는 다시 학교로 돌려보내던 단호했던 엄마.

속상한 일 털어놓을 때마다 너만 그런 거 아니라고 다들 그렇다고 내 마음을 어루만져 주던, 세상 모든 일을 다 알고 있을 것 같던 우리 엄마는 어디로 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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