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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백십 Dec 12. 2020

18 Grams

스페셜티 커피 카페


그렇게 해서 마진이 남겠니?



몇 년 전 동생의 카페 창업 이야기.

공덕 오거리에서 삼각지 쪽으로 올라가는 대로변의  한 허름한 건물.  5평은 되었을까. 동생은 그곳에서 카페를 열기로 했다.

우리 집에서 자영업은 처음이라 신기하기도 하고 기특하기도 했다. 나름 인테리어도, 가게 이름도 인스타 속 빈티지 갬성스러운 게 그저 멋져 보였다.

바리스타 대회도 몇 번 나가 상도 곧잘 타더니 커피 맛도 동네 커피 맛집으로 소문날 정도는 되었던 동생 카페.

정식 오픈 전 여러 원두로 테스팅하던 중  확실히 비싸고 좋은 원두가 커피 맛도 남달랐다. 문제는 마진이었다. 원두를 뭘 쓰냐에 따라 마진이 확확 달라진다고.

고민하던 스물일곱의 청춘.
과감히 마진을 포기하고 맛을 선택했다.

어른들은 그렇게 해서 마진이 남겠냐며 고나리를 시전 했지만 젊고 패기만만했던 동생. 그대로 밀어붙였다.

그때 덩달아 나도 깨달았다. 좋은 원두가 커피 맛과 향에 얼마나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지.



__________



홍콩엔 수준급의 카페들이 많다.
대부분 스페셜티 커피를 취급하는 홍콩의 카페들.


스페셜티 커피란 미국 스페셜티 커피 협회 (Specialty Coffee Association) 정한 기준(특수하고 이상적인 기후에서 재배되며, 컵의 풍미와 맛이 독특하고 결점이 없는 것이 특징으로 이러한 독특한 풍미는 생산지의 토양에 기인됨) 따라 엄격히 분류되고 관리되며 평가점수가 100 만점에 80 이상의 커피 라야 호칭할  있다.


출처: 네이버 지식인


예전엔 스페셜티 커피가 뭔지 잘 몰랐다. “고급 원두”의 “고급”처럼 그냥 커피 앞에 붙는 일반 형용사인 줄로만 알았다.

그러다 스페셜티 커피에 대해 어렴풋이 알게 될 무렵, 우연히 18 그램스의 창업자, "John So"의 인터뷰 기사를 읽게 되었다.


스페셜티 커피를 다루다 보면 매일 똑같은 커피를 만들  없다는  깨닫곤 한다. 올해와 지난해의 원두가 다르고 여름과 가을의 기온이 다르므로 아무리 일정한 맛을 내는 바리스타의 커피라도 어제의 커피와 오늘의 커피는 다르다.

그러니 지금 당신 앞에 놓인 커피와 소중한 시간을 
그저 즐겨야 한다.

출처: coffeeandtales.com




코즈웨이베이 메인 스트릿에서 벗어나
한적한 외진 귀퉁이에 자리 잡고 있는
18 그램스



어딜 가나 사람 많은 코즈웨이베이.
잠깐 볼 일이 있어 나왔다가 금방 허기가 진다.
인파를 헤쳐 조용히 이 한 몸 앉혀주기 위해 찾아간 곳은,

18 GRAMS.

18 그램스 창업자  "John So"는 로스팅 원두를 공급하다 직접 카페를 차렸다고 한다.

18 그램 필터를 사용할  가장 스윗한 아로마 향을 추출할  있어 카페 이름을 18 그램스로 지었다고. 게다가 숫자 "18"은 중국 사람들에게 "행운"을 뜻하니 짓고 낫서도 무척이나 만족스러웠다고 한다.


조심스럽게 안을 살펴보았다. 좁아도 정말 좁다. 사진상에 보이는 저 공간이 다였다. 마침 덩치 큰 손님 한 분이 앉아 계셨다.

대부분 테이크아웃 손님들. 매장 바깥에는 딜리버리 기사들이 피다가 버린 담배꽁초들로 가득했다.

18 그램스는 홍콩 전역에 5개의 매장을 가지고 있다.

시작은 바로 이곳,
작은 코즈웨이베이의 에스프레소 바였다는 .


라떼 40 hkd & 스콘 30 hkd


이 날도 라떼를 시켰다.
고소하고 부드러운  넘김이 좋았던 라떼.
우유의 양이 조금만 많았어도 밍밍할 뻔했는데 그 아슬아슬한 비율의 선을 잘 지키고 있었다.

18 그램스는 아침 메뉴가 훌륭하기로 유명하다.
앞에 앉은 분이 시켜 드신 것만 봐도 그래 보였다. 그러나 한 끼 하긴 부담스러운 마음에 시켜 본 스콘. 스콘은 별로였다. 같이 나온 수제 쨈도 눈곱만큼 주더라.

핸드폰 3개를 가지고 통화를 끝없이 하시던 덩치 좋은 아저씨를 마주하고 삐거덕 거리는 테이블에 한참을 앉아 있었다. 손님들 대부분 카푸치노를 많이 주문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코즈웨이베이에서 일하시는 분들이 부러웠다. 18 그램스 덕분에. 일하다 졸리면 잠깐 나와서 사갈 수 있는 맛있는 

18 그램스 카페가 지척에 있으니.


Espresso, Syphon, Aeropress, filter 브루잉하고 
Synesso Hydra 장비로 사용하는 18 그램스.

부드러운 커피가 퍽 인상적이었다.



_________




최근 읽고 있는 한 소설이 떠올랐다. 아이도 있고 남편도 있는 한 소설가가 우연히 들른 카페 사장과 사랑에 빠지는.

그 카페는 커피콩의 고소하고 쌉싸름한 향이 퍼져 나오고
<왈츠 포 데비>와 <평균율 클라비어>가 잔잔하게 흐르며 
갈색 카디건의 댄디한 사장님이 <네메시스>를 읽고 있는 곳이었다.

그 사장님은 모든 손님에게 항상 처음인 것처럼 중립적으로 대한다. 자주 찾아오는 주인공에게도 한결같은 무심함으로 일관한다. 여기서 주인공이 그에게 빠지지 않았을까. 한결같은 무심함.

어설픈 친한 척보다  알면서도 모른척하는 무심함은 편하다.  깊은 친절함이다.

18 그램스 매니저도 그랬다. 주문 이후로는 일체 말 섞을 일이 없다. 삐그덕 대는 테이블에 앉아 내 앞자리 손님이 세 번이나 바뀔 동안 내가 무얼 하는지 코 앞에서도 전혀 상관하지 않았다.

음악이 흘러나오기는 했던가. 부산스러운 커피 만드는 소리만으로도 작은 홀이 가득 찼던 18 그램스. 댄디한 사장님도, 클래식한 음악도 없지만 소설 속 카페가 전혀 부럽지 않았다.

18 그램스에는 그보다 훨씬  부드럽고 맛있는 커피가 있다. 그게 제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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