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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백십 Dec 15. 2020

홍콩 뒷산 트레킹에서 멧돼지와의 조우

아이의 방학이 시작되었다.
하루 종일 이것저것 하다 보니 어느덧 오후 4 .

이번 방학엔  무술을 가르쳐주고 싶었는데 모두  닫은 체육시설. 그나마 있는 체력도  떨어지겠다 싶어 아이를 데리고 조금 빡센 걷기라도 해보자 하는 마음에 집을 나섰다.

뉘엿뉘엿 지는 해를 바라보며 동네 뒷산 트레일을 올랐다. 이렇게 늦은 시간에 오르는  처음이었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오르고 있었다.


쌀쌀한 날씨에도 짧은 반바지와 민소매 차림으로 매일의 루틴인  도저히 따라갈  없는 빠른 속도로 올라가고 있던 서양인들.

다섯 살이나 되었을까. 어린아이 둘을 데리고 산책하듯 걷는 가족도 보이고 한쪽 팔을 위로 뻗고 다른 팔로 겨드랑이 부분을 연신 두드려대며 올라가는 중년의 여성도 보였다.

막상 오르막길이 시작되자 체력이 떨어진  오히려 나였나 보다. 아이는 심지어 뛰기까지 하며 저만치 앞서갔다.

하나둘씩 무리 지어 가던 사람들과 떨어지고 혼자 걷는 순간이 많아져 아이를 불러 함께 걸었다.

중간중간 주위에 아무도 없을 때는 마스크를 내리기도 했다. 내려오는 사람들과 계속 마주치는 바람에 바로 다시 올려야 했지만.

한참을 오르다 보니 아이가 이제 돌아가자고.
적당히 했으니 돌아갈 때가 되었다고 자기는 이만하면 충분한 운동이 되었다고 한다.

조금만  오르자고.
조금만  가면  중턱 빌딩 숲을 멋지게 바라볼  있는  포인트가 있으니 정상은 아니더라도  거기까지만 올라가자고 했다.



어느 순간부터인가 우리 앞에 나타나신  할아버지.
줄리엣 로버츠의 "프리티 우먼" 핸드폰 스피커로 크게 틀어 놓은  유유자적 걷듯이 오르고 있었다. 자주 올라가시는 분이셨는지 하나도 힘들어 보이지 않았다.

처음 할아버지를 인지했을  불과 10 미터 정도 차이였는데 어느새 할아버지는  50미터는 앞서 걷고 계셨다.

할아버지만 부지런히 쫓아가도 빨리 올라갈  같은 마음에 놓치지 않으려고 잰걸음으로 따라가본다. 이제는 아이가 나보다 뒤처지기 시작한다. 자긴 걷는   힘들다고. 뛰는   쉬우니  쉬었다 뛰어오겠다고 한다.



우리가 본 건 뭐였을까?




그때였다.

도대체 얼마나  가야 하나 싶어 고개를 들고 가야  길을 눈으로 셈하는 순간, 커다란 짙은 회갈색의   마리가 숲에서 걸어 나왔다. 목줄이 걸려있지 않았다.

 주인이 나타나겠지. 덩치가 멧돼지만큼 크네 속으로 생각하던 찰나,   마리가 숲에서 따라나왔다.

그중  마리가 할아버지 앞으로 다가갔다. 그대로 멈춰  계셨다. 얼어붙은 뒷모습 같기도 했다. 할아버지 개였나? 뭔가 이상하다. 다시 보니 개보다 머리가   듯싶다.

아이와 나는 한참 뒤에  있었다. 바로 뒤돌아서 내려갔다. 뛰면 왠지 쫓아올  같은 생각에 빠른 걸음으로 내려갔다.  가족을 발견하고 그제서야 속도를 늦췄다.

아이는  마리를 봤다고 했다.
내가    마리였는데.

사진이라도 찍었어야 했나. 개였을까 멧돼지였을까. 흥분해 내려가고 있는데   수풀에서 자꾸 이상한 소리가 난다. 어두운 수풀 사이로 돼지 엉덩이가 보였다.

설마 했다. 이렇게 많다고? 아까 봤는데  본다고? 아이도 느끼고 우리 바로 앞에서 혼자 걷던 여성분도 느끼셨나 보다. 셋이 동시에 같은 곳을 바라봤다. 시야에서 엉덩이를 놓쳤다 생각하는 순간 돼지 멱따는 소리가 들려왔다.

누가 들어도  돼지 소리였다.  여성분과 눈이 마주쳤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다시 빠른 걸음으로 아래로 내려왔다.


________


하이킹 자주 가는 언니에게 물었던  있다.
"멧돼지 자주 보세요?"

홍콩 트레일 코스를 걷다 보면 가끔은 숲이 너무 울창해 뭐라도 튀어나올  같았기 때문이다.

"언젠가 밤에 사람들이 모여 있길래 뭘까 하고 봤는데 

멧돼지더라고. 근데 동네 트레일 코스엔 없어. 이런  없어."


________



. 분명 멧돼지였다.

저녁 식사를 마친  기사를 검색해보았다.
홍콩  멧돼지 목격 사례는 최근 5 사이에 급증했다고 한다. 2018년에는 목격 신고만 1,000.

다행히 사람을 만나면 피해 가니 위험한 존재는 아니라고 했다. 그러나 나와 같은 트레일 코스에서 멧돼지를 만났던 호주 여성분은 소리를 질러도 손뼉을 쳐도 도망가지 않아 다시 뒤돌아 내려와야 했다고. 

먹이를 찾아 아파트까지 내려오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특히 새끼 멧돼지 같은 경우는 귀여워서 주민들  먹을 것을 주는 사람들도 많다고.

얼마  9월엔 뱅크 오브 차이나(Bank of China) 타워의 풀에도 나타나 화제가 되었던 멧돼지 가족. 멧돼지는 수영에 능하다고 한다.

“Feral family of boars hog limelight in Hong Kong business district with swim in Bank of China Tower Pool” (SCMP, 2020/09/25)



2019 6 케네디 타운 MTR 나타났던 멧돼지.

2016년엔 홍콩 공항 제한구역에 나타났고 2019년엔 미드레벨의 케네디 로드에서  운전자의 차에 부딪히기도 했다고.

2018 포획된 멧돼지 수는 129 마리. 2019년엔 “멧돼지 (wild boars team)” 인원을 6명에서 18명으로 충원했다고 한다.

“what you need to know about hong kong wild boars.” (hongkongliving.com 2019/12/30)



hongkongliving.com


이렇게 생긴 아이들이었다. 말라 보였다. 걷는 자태도  이랬다.  마리가 함께 있었는데 아이는  마리를 봤다고 했다. 아니면 우리가 착각한 걸까. 그냥 덩치  산개를 보고 호들갑을  걸까.

처음엔 커다란 산개라 생각했다. 할아버지가 소리도 지르지 않고 가만히  계시길래. 그러나 내려오는  수풀 사이에서 들었던 소리는 분명 돼지 울음이었다. 

기사에서는 멧돼지를 코너로 몰거나 새끼 돼지와 함께 있는 어미가 아닌 이상 사람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다고 했다.

요즘은 골프장이나 트레일 코스에서 멧돼지를 보는  흔한 일이 되었다고도 했다.

그러나 산길에서 만난 멧돼지는  자체만으로도 무섭다. 산개라도 두렵다. 내가 무슨 짓을 할지 나조차 장담할  없다. 피하는  상책이다.

 할아버지는 무사히  내려왔을까. 무섭지 않았을까. 아니면 정말 할아버지 개였을까. 산에서 일하시는  같았는데.

한동안 아이와 둘이서 트레킹은 못할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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