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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백십 Dec 21. 2020

보건교사 안은영 리뷰

3회 정주행을 끝내고.



누가 칠판을 손톱으로 긁는 것 같은
불편한 시작


불편했다. 교실에 걸린 학교 창업자의 사진도, 단체로 주술에라도 걸린  한쪽 팔을 들고 다른 손으로 겨드랑이를 마구 두드려대며 웃으란다고 웃는 아이들.

웃음이 끝나니 울음이 터졌다. 간신히 학교를 구하고 한숨 돌리는가 싶더니 성적 비관해 자살한 귀신이 가져온 울음 파도. 곡소리가 학교를 가득 메운다. 조용할 날이 없다. 웃음과 울음 사이 널뛰기에 중간은 없다.

괴기스러운 웃음과 울음소리. 마치 누가 칠판을 손톱으로 긁어대는 것처럼 불편해졌다.

예쁘고 잘생긴 주인공들이 서로 오해하다 사랑에 빠지는 동화 같은 해피엔딩은 어디에도 없다.

해가 중천에  때까지 늘어지게 자고 싶었던 일요일 아침, 쉬지도 않고 우는 아랫집 아이같이 잠자던  신경을  하고 건드리는 드라마.


보건교사 안은영 넷플릭스 포스터



어디든 학교는 참 거지 같아



매켄지가 말한다. 학교는 참 거지 같지 않냐고. 그러자 임대아파트 사는 등록금 낼 돈도 없는 지형이 반문한다. 거지가  어때서요?”


허를 찔렸다. 피 철철 흐르며 쓰러져 있는 농구부 왕따 지형이. 매켄지가 내민 손보다 ‘거지’란 말에 울컥한다.


왜 돈도 안 되는 학교에서 이러고 있냐는 매켄지의 질문에 안은영도 대답한다. 학교를 좋아하는 사람이 어딨냐고.


그랬다. <보건교사 안은영> 속 학교는 내 기억 속 조작된 첫사랑 오빠가 있던 곳이 아니었다.


전학생을 어느 반으로 받을 거냐고 묻는 교감 질문에 “어떤 아이인지부터 묻는 선생님들. 아이들을 비교하고  등수로 존재감을 확인한다.


편의상 번호로 부르기도 한다. “오늘이 15일이니 15번 나와봐” 식이다.  있는 아이가 약한 아이를 괴롭히는 일이 ‘ 그러면서 크는 거라고묻히는 곳이다.



왜 이런 데다 학교를 지어가지고



그럼에도 학교엔 우정, 사랑 그리고 추억이 있다. 무엇보다 아이들이 있다. 어른인 우리가 지켜야 할 존재. 그래서 안은영도 학교에 있다.


그러나 누군가에게 학교는 그저 욕망의 대상이다.


개인의 부귀영화와 출세에 눈이 멀어 강한 기운의 숨구멍이 자리한 이 곳에 학교를 지었다. 학교를 뺏고 뺏기지 않기 위한 거대한 조직의 세력다툼에 아이들은 희생양이 되어간다.


하지만 그런 우리에겐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끔찍한 젤리를 보는 고통을 안은채 살아가도 “에잇, X발, 어쩌겠어!” 자기 한 몸 기꺼이 날리는 츤데레 안은영 선생님이 있다.


어디 안은영 선생님뿐이겠는가. 자신의 할아버지 과오를 인정하고 사과할 줄 아는 우리의 한문, 홍인표 선생님도 있다.


자기에게 떨어질 떡고물 유산을 과감히 날릴 줄 아는, 할아버지가 되라고 해서 선생님이 되었지만 누구보다 아이들에 진심인 또 다른 히어로. 우락부락 근육질 헐리우드 히어로들과 결부터 다르다.


훈훈한 투샷



내겐 가족같은 언니가 있다.



드라마 초반 안은영은 홍인표에게 수줍게 자랑한다. 내겐 친구가 있다고. 거의 고아나 다름없던 안은영에게 먼저 손 내밀어준 가족 같은 언니.


피곤한 하루의 , 샤워가운을 입은  봉숭아 물을 들일 때마다  안은영의 귀엔 블루투스 이어폰이 꽂혀 있다.

우리 대부분이 그렇듯, 안은영도 자신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을 하나뿐인 친구 화수 언니에게 이야기 하며  날의 스트레스를 풀곤했다.



그런 화수 언니가 갈긴 초강력 빅 펀치 뒤통수. 내막을 전부 알고 난 안은영, 화수 언니 집에 찾아간다. 집 현관에 서서 둘이 독대하는 씬에서 느껴지던 팽팽한 긴장감. 눈빛만으로 모든 걸 압살 하는 게 이런 거구나 싶다.


아느녕~!, 세상에서 니가 젤로 이상해.”


도저히 빠져나올 수 없는 화수의 최면. 이대로 다시 갇히는가 싶은 순간, 그렁그렁 눈물을 머금은 상처 받은 영혼의 눈동자가 혼신의 힘을 다해 내뱉는다.


니가  이상해!”



니가 어떻게 한테 그럴  있어?”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누구나 각자의 인생이라는 무대 위에서  대사  쳐본 사람이 있을까.


우리에게 가장 큰 상처를 주는 사람은 길거리 지나가는 이름 모를 아무개가 아니다. 가장 가깝고 믿었던 사람, 가족, 친구. 그들이 던진 말은 그 어떤 무기보다 날카로운 비수가 되어 가슴에 꽂힌다. 치료약이 있을까. 그저 시간이 약이라면 약이다.



그렇지만
때로 가장  상처는 우리를  성장하게도 한다.



안은영도 그랬다. 죽은 사람들이 변한 젤리보다  무서웠던  앞으로도 계속 이렇게 살아야 한다는 사실이었단다. 그래서  절망했고 인생은 우울했다.

이랬던 안은영이 달라졌다. 젤리가 보이지도 않으면서 학교로 돌아간다. 이미 특별한 능력이 사라져 여느 다른 선생님과 다를 것 없어진 안은영이지만 학교를 구하기 위해 위험천만한 모험 속으로 뛰어든다.



알면서도 피할 수 없는 일을 뭐 어쩌겠어,
당해야지!



“내게만 보이는 또 한 겹의 특별한 세상”을 탓하고 원망할 땐 하기 싫어 어쩔 수 없이 하던 일이었다. 그러다  운명에 정면으로 맞서서 당할 용기를 손에 가득 쥐었을  안은영은 발견한다. 이런 삶도 나쁘지 않음을. 나름의 의미 있음을.  


누구의 인생에서나 좋고 나쁜 일은 비슷하게 일어난다고 한다. 중요한 건 그 사람의 마음. 같은 일이라도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달라진다고.


예전 기성용 축구선수가 한참 구설수로 시끄러울 때 아내 한혜진이 인터뷰 도중 했던 말이 기억에 남는다.

뭇매를 맞을  맞고 가야 한다고.”

어떻게 저런 생각을 할 수 있는지 신선한 충격이었다.


“죄송합니다. 주의하겠습니다.”가 아니었다. 어쩔 수 없는 일 피하지도 않겠으며 마땅한 처분 감내하고 안고 가겠다는 그 말은 몇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뇌리에 박혀있다.


잘은 모르지만 기성용 선수는 훨씬 덜 힘들었을 거 같다. 피하고 도망가고 전전긍긍하기보다  의지로 맞선다면  뭇매가 그렇게 아팠을  같지 않았기 때문이다.


슬픈데 웃기다. 그런 드라마 내용을 함축적으로 보여주던 김치씬



__________



그냥 편하게 갔으면 좋겠는데 툭툭 던지는 대사 한마디로 왕따를 소환하고 성적 지상주의 문제를 꺼내며 노동자 인권을 이야기한다.


암울한 학교, 먹고 먹히는 탐욕과 필요에 의한 인간관계. 어느 것 하나 쉬운 게 없다. 하나의 문제를 해결하면 또 다른 문제가 산더미처럼 쌓여있다.


그럼에도.


그럼에도 드라마는 희망을 말한다. 무지개 형광 장난감 칼을 든 맥아리 없이 말라 보이는 단발머리 보건교사를 통해 우리에게 살짝 힌트를 준다. 어떻게 하면 사랑받을 수 있는지, 행복해질 수 있는지.


너는 말이야, 캐릭터 문제야.
그럴수록 칙칙하게 가지 말고 
달리는 모험 만화로 가야 .
다치지 말고 유쾌하게 가란 말이야.
사람들한테 사랑받으며 살라고.”



간만에 만난 띵작이다.정유미는 안은영 그 자체였고 남주혁은 세상 재미없고 따분한 모쏠 한문이었다.


회차를 거듭할수록 디테일한 연출과 대사에 기습 감동받는다. 감독님. 이 마약 같은 가스나. 도저히 빠져나올 수 없다. 언제까지 어깨춤을 추게 할 건가. 올해 크리스마스 선물은 이걸로 빌어본다. <보건교사 안은영 시즌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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