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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백십 Dec 29. 2020

넷플릭스 스위트홈 스포 없는 리뷰

그럼에도 살아야 하는 이유


넷플릭스 볼 게 없다고?



얼마 전 <타이탄의 도구들>에서 본 "한계는 곧 자유다."라는 말은 넷플릭스에서도 통하는 걸까?


2019년 1/4분기 <Nielsen's Total Audience Report>에 따르면 사람들이 뭐 볼까 고민하는 시간은  평균적으로 7 이라고 한다.

그중 20% 가 넘쳐나는 스트리밍 프로그램 선택지에서 뭘 볼지 결정 못한 채 포기하며  끄고 만다고. 차라리 선택지가 적은 예전 TV로 돌아가는 사람들이 많아졌다고 한다.

나도 그랬다.
한동안 넷플릭스 뭐 볼 게 없었다. 드라마는 긴 러닝타임이 부담스러웠고 영화는 딱히 보고 싶은 게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스위트홈> 출연자들의 홍보 영상으로 날 안내해 준 
유튜브 알고리즘.

이진욱, 송강, 이도현.
다 잘생긴 사람들이 나오니 한 번쯤 봐줘야겠다 생각했다. 근데 이중 대체 누가 주인공인 걸까.

그렇게 1회를 시작했다.




아... 이 드라마 뭐지?


웹툰도 보지 않았고 흔한 예고편 하나 보지 않았다. 그래서 더욱 그랬을 수도 있다. 킹덤을 능가하는 엄청난 스릴감.

2화 시작하기도 전에 하루아침에 다 끝내버릴 것 같은 두려움에 일부러 연출과 시놉시스부터 찾아봤다. 아니, <태양의 후예>와  <도깨비>를 연출한 이응복 감독님이라니.



이응복 님 연출


사실 이응복 감독님에 대한 별 기대감은 없었다. 그동안 작가 빨 배우 빨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동안 배우와 작가들이 감독님 빨을 받은 거였나.

웹툰을 보지 않았지만 분명 방대한 양과 각 인물의 서사 구조를 응축하기 쉽지 않았을 터인데 적재적소에 오버랩되는 캐릭터들의 스토리.

주인공 현수를 큰 줄기로 하고 은혁, 은유, 지수, 재헌, 이경 등 각 인물들의 사연이 가지치며 뻗어 나간다.

소주 한 입 혀에 적시며 내뱉는 재헌의 단 한마디로 그의 과거가 드러나는 식이다. 올곧게만 보였던 재헌에게 반전 매력을 선사하며.

끔찍하고 잔인한 거 싫어하는 나도 눈 가리고 귀 막지 않고 대사 한마디, 한 신 한 신 놓치지 않으려고 애쓸 만큼 
지루할 틈이 없었던 건 연출의 힘 덕분이라 하겠다.



모두가 끝까지 살아남길 바랐다.


주인공 송강은 더벅머리 피 떡칠을 해도 잘생쁨이 화면을 뚫고 나왔다. 하하하 그래서일까 난 끝까지 현수 편. 이진욱 역시 뺨 전체를 흉터로 분장하고 나왔어도 이진욱이었다.

뿐만 아니다.

냉철한 이도현, 츤데레 정석 고민시, 특전사 그 자체였던 이시영, 현실적이고 씩씩한 박규영, 믿음직스러웠던 김갑수와 김상호.

그 누구도 끝까지 죽지 않길 바랐다.



웹툰 캐릭터들의 실사화


<스위트홈>은 인기리에 연재되었던 웹툰이 원작이다.  웹툰을 보지 않은 나도 원작의 그림이 어땠겠구나 저절로 그려지던 드라마 속 괴물들의 실사화.

넷플릭스 자본의 힘은 실로 엄청났다. 킹덤의 좀비도 끔찍했는데 <스위트 홈> 괴물들 역시 대단했다.

1화당  50 분량의  10 에피소드. 
보는 내내 어찌나 어깨를 움츠리며 긴장하고 봤는지 보고 나면 목이 다 뻐근해질 정도였다.

유명 안무가와 괴물 연기 분야 대가 할리우드 배우를 초빙하여 괴물 움직임에 디테일을 더했고 회당 30 의 제작비를 투입하였다고 한다.

 300 .
넷플릭스가 작정하고 깔아준 판에서 할리우드만의 전유물 쳐다도   없었던 장르물, 하나 하나씩 도장깨기 하는 기분이다. 스튜디오 드래곤 지분 1 없으면서  내가  흐뭇한지.



더 이상 민폐 여성 캐릭터는 없다.


약하고 쓰러지며 주저앉아 울기만 하는, 남자 주인공이 애써 구하러 가야하는 민폐 여주인공은 어디에도 없다.

전 특전사 현 소방관 대원인 이시영.
그녀의 노출 신은 속옷만 입고 나오는데도 야하기는커녕 멋있다는  뭔지 제대로 보여줬다. 쫙쫙 갈라진 미세한 등의 잔근육까지 뽐내며 중요한 타이밍마다 사람들을 구하는 건 언제나 그녀의 몫.

박규영이라는 배우의 재발견.
베이스 대신 야구 방망이를 잡고 어떻게든 살기 위한 방법을 찾아 나선다. 두려워 숨기보다 괴물과 정면으로 맞서는 위험한 길을 과감히 택한다. 

시종일관 삐딱선 타는 고민시.
정작 중요할 때 누구보다 앞장서며 아무도 감히 하지 못하는 사이다 발언으로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해주는 유쾌 상쾌 통쾌 캐릭터. 마지막엔 짠하기까지.

일촉즉발 위기의 순간, 주인공들을 제외한 아파트 남자 주민들은 도망가기 급급하다. 괴물을 잡기 위해  밧줄을 힘껏 잡아당기는 사람들은 어리고 힘없거나 늙은 여자 주민들.

자기만 살겠다고 나서는 빌런들은 모두 빌빌대는 남자 캐릭터의 몫이었다.



회수하지 않은 떡밥, 시즌2의 여운을 남기고.


<스위트 홈> 역시 여기저기 뿌려 놓은 떡밥들을 회수하지 않은 채 남겨  놓았다. 시즌 2를 위한 큰 그림인가.

나쁜 놈들 다 죽고 착한 사람들 행복하게 사는 모습으로 깔끔하게 마무리하는 엔딩은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에선 이제 기대하기 힘든가 보다.

항상 여운을 남기는 결말.

까먹고 있다 보면 내후년쯤 나오려나. <킹덤> 때는 시즌 2 기다려야 하는 기간이 말도 안 된다 생각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이미 넷플릭스는 나를 길들여 놓았다.


언제고 좋으니 나오기만 했으면 하고 바라고 있는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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