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널 믿었던 만큼 내 친구도 믿었기에

by 이백십

열세 살 봄, 짝꿍으로 만난 해롱이. 처음 우리 둘 사이는 그저 그랬다. 친한 무리들은 4 분단 다섯째 줄 즈음에 한데 모여 앉게 되었는데 나만 1 분단 셋째 줄이었다.


“아, 나만 왜 여기야?!”


새 자리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대놓고 아쉬운 마음을 토로하기도 했다. 쉬는 시간이면 친한 친구들이 몰려있는 교실 반대편으로 갔다가 다시 종이 울릴 때쯤에야 자리로 돌아왔다. 짝꿍이었던 해롱이가 서운해했다는 걸 나중에야 들었다.


우리가 어떻게 친해졌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시간이 갈수록 그저 해롱이가 점점 더 좋아졌다. 초반 그 아이를 서운하게 한 미안한 마음은 아직도 죄책감처럼 남아있다.


해롱이는 더 이상 일기 검사가 없는 6학년에도 매일 일기를 쓰는 아이였다. 부모님이 일기 검사를 하고 일기장 하단에 코멘트를 남겨주셨다. 사춘기 초입이었던 우리들은 센 척, 어른인 척 그런 해롱이를 놀리곤 했다.


“너, 뭐 애야? 부모님 검사 맡게?”



@Ivan Aleksic / unsplash.com


해롱이는 그때도, 그 이후에도 한 번도 학원을 다니지 않았다. 물어보니 아빠가 직접 수학의 정석으로 가르쳐주신다고 했다.


얼마나 부러웠는지 모른다. 멋졌다. 정석을 푸시는 부모님이라니! 겉으론 아무 말 안 했지만 어린 마음에 나도 그런 부모가 되고 싶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해롱이는 똑같은 문제집 두 권을 사 오더니 하나를 내게 건넸다. 하루 분량까지 정해주면서. 각자 풀어와서 서로 바꿔 채점하자고 했다.


한 번도 처음부터 끝까지 푼 문제집이 없었는데 해롱이 덕분에 생겼다. 문제집을 끝낸다는 게 얼마나 짜릿한 일인지도 이때 배웠다.


@Anthony Delanoix / unsplash.com


우리는 중학교 3학년 때 다시 만났다. 해롱이는 학교에서 우등생들을 뽑아 방과 후 “특별반”을 운영하던 것을 패러디해 “특수반”을 만들었다. 선발 기준은 <아무나>였다.


“특수반”은 “특별반”이 하지 않는 시간대를 골라 불 꺼진 교실에 모여들었다. 평소엔 얼굴도 몰랐던 수위 아저씨들에게 순대까지 뇌물로 바쳐가며.


우리끼리 서로 가르쳐주면서 공부하기도 하고 가족 오락관에 나오는 게임을 하기도 했다. 이 친구들과 있으면 늘 웃느라 배가 찢어질 거 같았다.


해롱이는 과고를 갔고 난 그 옆 학교를 갔다. 그때부턴 주로 편지로 서로를 응원했다. 어느 날 해롱이가 말했다. 네 편지들 모두 모아서 언젠가 책으로 내주겠다고. 그러니 훌륭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멀리 유학 가던 날, 쿨하게 밥 먹자마자 떠난 엄마와 달리 공항 게이트 들어갈 때까지 있어준 친구도 해롱이였다.


마지막 인사를 하는 내 손에 꼭 쥐여준 세 개의 편지봉투.

각 봉투 겉면엔 “아플 때”, “외로울 때”, “비행기 안에서”라고 쓰여 있었다.


유학 생활 내내 부적처럼 날 지켜주던 세 통의 편지들. 돌아갈 때까지 나머지 두 통은 끝끝내 읽지 않았다. 보다 더 아프고 외로운 순간을 위해 남겨두고 싶었다.


@Sam Manns / unsplash.com


그런 우리도 싸운 적이 있다. 아니 싸웠다기보다 서운한 감정이 쌓이고 쌓여 터진 적이 한번 있었다.


사건의 발단은 해롱이가 소개팅해 줬던 같은 학교, 같은 랩실의 남친. 그 녀석의 선배를 만나기 위해 혹은 학교 근처의 맛집을 찾아가느라 남친 학교 근처에서 몇 번 데이트하곤 했다. 문제는 그 학교는 해롱이 학교이기도 했다는 것.


어느 순간부터 같은 랩실의 선배들이 해롱이에게 짓궂은 장난을 걸기 시작했다.


"너랑 제일 친한 친구라면서 어떻게 학교까지 놀러 와서 너는 안 보고 남친만 보고 가냐?"


"니 친구는 저 XX가 왜 좋대? 쟤가 어제 어디 갔었는지 니 친구는 알아?"


장난도 자꾸 듣다 보면 수긍하게 된다. 해롱이는 차마 내게 말은 못 하고 속으로만 끙끙 앓았지만 우리 사이 달라진 분위기를 눈치 못 챌 정도로 나도 둔감하지는 않았다.


어느 날 부모님이 여행 가신 해롱이네 집에서 우리 둘은 그간 참아왔던 이야기들을 터뜨리며 서로 붙잡고 밤새 엉엉 울었다. 나 때문에 나의 가장 소중한 친구가 그런 말을 들어왔다니 참을 수 없었고 잘못된 만남인 그 녀석과는 깔끔하게 헤어졌다.


그랬던 우리가 요즘엔 서로의 생일에만 톡 하는 사이가 되어버렸다. 미국에서 싱글로 살고 있는 해롱이와 홍콩에서 아이 기르며 살고 있는 내가 함께 즐거워하며 나눌 수 있는 주제는 이제는 기억도 잘 나지 않는 옛날 옛적 이야기뿐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마음으론 그 누구보다 서로의 삶을 응원하고 있다는 걸 안다. 말하지 않아도 안다. 요즘은 누굴 만나고 어떤 음식을 제일 좋아하는지 알지는 못하지만 "친구" 하면 늘 제일 먼저 떠오르는 영원한 내 짝지, 해롱이. 갑자기 왜 보고 싶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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