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이만 끊을게요.
끊는다고 말씀드렸는데도 여전히 화면 속에서 사라지지 않는 아빠. 종료 버튼을 누를 때까지 아빠는 핸드폰 저 편에서 여전히 손 흔들고 계신다.
한 번은 아빠가 끊으실 때까지 나도 기다려보았다. 이만 들어가시라는 마지막 인사를 두어 번은 했는데도 통화는 좀처럼 끝나질 않았다. 결국 그때도 먼저 끊은 건 나였다.
한 달에 한 번이 쉽지 않다. 가장 큰 효도는 매일 전화하는 거라던데. 막상 통화 버튼 누르기까지 뭐 이리도 많은 과정이 필요한지. 분기 행사인 양 통화하는 아빠와 나. 아니 요즘엔 분기도 아니고 거의 반기인 듯하다.
엄마와 달리 아빠와 전화하면 할 말이 별로 없다.
"진지 드셨어요?"
"요즘 일하기는 힘들지 않으세요?"
"지난번 검사 결과는 어때요?"
매번 루틴처럼 반복되는 아빠와의 대화. 가끔은 아들에게 핸드폰을 토스해 보기도 한다. 무뚝뚝한 딸 대신 손주라도 아빠를 웃게 해 드리고 싶은 마음에.
그러나 그 엄마에 그 아들.
할아버지와 통화만 하면 '예' 아니면 '아니오' 로만 답하는, 세상 시크한 차도남이 되어버리는 녀석.
딱 내가 지금 아들 녀석 정도의 나이였던 삼십 년 전의 어느 봄날, 인생 최대의 위기가 찾아왔다. 새 학기를 맞아 새로운 친구들과 한창 알아가느라 정신없던 그때, 반에 이상한 소문이 퍼지기 시작했다.
쟤 손가락 봤어? 이상해...
태어날 때부터 남들과는 조금 달랐던 오른손 엄지 손가락. 누군가 볼까 두려워 늘 엄지를 다른 손가락 안으로 말아 주먹 쥐고 다니곤 했다. 손가락을 사용해야 할 일이 있으면 왼손을 연습시켰다. 공기도, 종이를 세는 것도 부자연스러운 왼손으로 대신하곤 했다.
부끄러운 엄지를 애써 숨기려던 그간의 노력은 모두 수포로 돌아가고 그렇게 열두 살, 새 학기 봄에 결국 난 들켜 버렸다.
여자애들은 쉬쉬했고 남자애들은 대놓고 놀렸다. 쉬는 시간 갑자기 자리로 와서 손가락 보여달라던 짓궂은 녀석들도 있었다. 학교에서 꾹꾹 참아내던 눈물을 집에 돌아오면 한 바가지씩 쏟아내곤 했다.
그날도 거실에서 울음이 터졌다.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엄마, 아빠에게 이야기하다 서러워 목이 메었다. 한번 터진 울음은 멈추지 않았다.
한바탕 대성통곡 후 한쪽 구석 소파에 축 처져 기대어 앉아 있었다. 그런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아빠. 베란다 창문 밖 어딘가에 시선을 둔 채 내게 말을 건넸다.
“OO야, 너 그거 아니?
미스코리아도 신체적 비밀이 있대.
어디 미스코리아뿐일까.
사람은 누구나 말 못 할 본인만의 특이한 신체적 비밀을 다 하나씩은 갖고 있다더라.
아빠 발가락 봐봐. 여기 이상하지?
니 손가락, 그건 아무것도 아니다.”
아빠의 그 말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나만 이런 거 아니라고?
심지어 누구나 다 이런 비밀쯤은 다 하나씩 갖고 있다고?
혼자 몰래 꽁꽁 싸서 숨겨야 했던 엄청난 우주의 비밀이었다. 제일 아픈 약점이기도 했다. 무겁고 감당하기 힘든 손가락이었다. 누가 알까, 볼까 두려워 늘 전전긍긍했다. 나만 다르다는 게 무서웠다.
그런데 아빠 말이 맞았다. 곱씹어보면 볼수록 맞았다. 나만 다른 게 아니었다! 누구는 특이한 귓바퀴를 갖고 있었고 또 다른 누구는 희한하게 생간 배꼽을 숨기고 있었다.
그날 이후 거짓말처럼 모든 게 변했다. 학교에서 아이들이 놀려도 아무렇지도 않았다. 저 아이들도 아직 들키지 못한 어떤 비밀이 있을 거라 생각하니 불쌍하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누구나 저마다의 비밀을 하나씩 가지고 있다니 마음이 편해졌다. 안심이 되었다. 나만 그런 게 아니었구나! 그렇게 창피했던 손가락이 정말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내 손가락을 흘깃 엿보는 친구의 시선에도 가슴 펴고 당당히 손 내밀 수 있었다.
그때 아빠의 말이 없었다면 학교 다니는 내내 지옥이었을 거다. 여전히 오른손을 덜 쓰고 싶어 했겠지. 뿌리 깊은 징글징글한 콤플렉스, 내 삶 전체를 갉아먹었을지도 모른다.
아빠에게 그때의 이야기를 다시 꺼내본 적은 없다. 뭔가 쑥스럽다. 진지하게 고맙다고 말한다는 게.
그래도 언젠가 꼭 한 번쯤은 말씀드리고 싶다.
그때 아빠의 그 말이 날 살렸다고.
살면서 가끔 나만 왜 이러지 싶은 순간에도 남들도 다 비슷할 거란 그 말이 용기를 주었다고. 끔찍한 내 비밀이 정말 아무것도 아닌 게 되어버려 그 이후 무서운 게 별로 없어졌다고.
다음 주에 돌아오는 윤달 2월 29일의 아빠 생신. 이번에도 고맙다는 낯간지러운 말은 못 할 것 같다. 대신 이렇게 말하는 편이 낫겠다.
"아빠, 운동 열심히 하고 있어요. 그래야 캐나다 로키산맥 트레킹 하러 같이 떠나지."
아빠가 이 말 뒤에 숨은 내 마음을 알아주면 좋으련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