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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백십 Apr 07. 2021

김밥 싸는 게 제일 어려운 나...    비정상인가요?

저절로 눈이 떠지던 소풍날 아침, 주방에서부터 퍼지는 고소하고 진한 참기름 냄새에 이불을 박차고 거실로 나오면 새벽부터 일어나 김밥을 말고 있는 엄마의 경쾌한 칼질 소리.


일반 김밥부터 시작해 계란 김밥, 누드 김밥으로 다채롭게 진화하던 엄마의 김밥들. 선생님들 김밥까지 책임지던 엄마는 김밥  때마다 말하곤 했다. 많은 엄마들의 고정 레퍼토리일 법한  ,



김밥 장사 볼까?!



엄마가 하는 일은  쉬워 보였다. 만만해 보였다. 누구나 시간만 들이면   있는 일인  알았다. 적어도 내가 직접 김밥을 싸 보기 전까진.


김밥을 말던 그때 그시절의 엄마



요리 못하는 엄마의 서바이벌


요리에 관심이 없다.  끝도 야무지지 못하나 보다. 어쩌다 엄마가 되었지만 바쁜 직장 생활 탓에 아이 이유식은 거의  남편이 알아서 택배로 주문하곤 했다.


결혼 십 주년 때도 흐른 건 시간뿐 내 요리 실력은 늘 제자리였다. 우리 부부 둘 다 회사에서 아침, 점심, 저녁 모두 제공하는 탓 혹은 덕에 내가 음식을 해야 하는 경우는 주말밖에 없었지만 그마저도 시댁 가고 외식하느라 집 냉장고는 언제나 텅텅 비어 있었다.


그러다 뜻밖의 난관을 만난 건 아이가 유치원에서 처음으로 소풍 갈 때였다. 아니 평상시엔 원에서 점심 제공하면서 소풍 때는 왜 그렇게 당연히 엄마들에게 도시락을 요구하는 건지.


자신이 없었다. 신혼  김밥을 싸 봤지만 김밥이 그렇게 맛없을 수도 있다는  그때 처음 알았다.  후에도    시도했지만  때까지는 성공하는  보였던 김밥들, 썰기 시작하니 김밥 옆구리 줄줄이 죄다 터졌다.


@Devi Puspita Amartha Yahya / unsplash.com


비엔나소시지를 사서 문어도 따라 해 보고 실패한 김밥 대신 김가루 주먹밥으로 대체해 보기도 했다. 그러다 초등학교 때부턴 깨끗이 포기했다.   되는구나. 과감히 사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아침 일곱 시부터 문 여는 김밥 집을 수소문했다. 전날 아이용으로 작게 만들어달라고 미리 주문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당일 새벽 젖은 머리카락 휘날리며 도착한 김밥집. 뺨에 부딪히던 차디찬 새벽 공기와  매연 사이로  지은 김밥 고이 모셔왔다. 서둘러 도시락에 옮겨 담고 돌봄반에 아이 데려다주고 회사 출근하면 미션 컴플리트.



매일 도시락 싸는 홍콩의 아침


그러다 홍콩에 왔다. 문제는  커졌다. 홍콩 국제 학교 급식은 여러 국적 아이들의 다양한 알레르기, 종교 상의 문제를 모두 고려하다 보니 맛도 별로고 부실했다. 한국에선 어쩌다 한번 쌌던 도시락을 여기선 매일같이 싸야 했다.


보통날의 도시락은 어떻게든 해보겠는데 소풍 도시락은 어쩌란 말인지. 한국처럼 김밥 집이 널려 있는 것도 아니라 새벽에 어디 가서 구할 수도 없었다.


더군다나 외국 친구들 사이에서 김밥은 늘 인기 메뉴였다. 선생님들도 탐낼 정도. 그 와중에 같은 반 다른 한국 친구들 김밥은 그야말로 휘황찬란했다.


그때 주먹밥과 유부초밥 사이에서 방황하던 내게 구세주처럼 다가와 주었던 S . S는 김밥 싸는 거야말로 세상 쉬운 일이라고 했다. 본인 아이들  싸면서  우리 아이, 심지어 남편과  김밥까지 챙겨 아침 여덟 시부터 우리   스벅으로 찾아오곤 했다.


소풍뿐 아니라 평상시에도 툭하면 김밥을 싸겠다고, 내일 도시락 싸지 말라던 천사 같던 친구. 고맙고  고마웠다. S 김밥은 완벽했다.  친구도 직장 생활만 하다 왔는데 나와는 다르게 요리도 잘했다.


그래도 홍콩 와서 매일 밥하다 보니 요리가 조금은 늘었다... 고는 하지만 이제 겨우 고추장과 고춧가루가 어떻게 다르게 쓰이는지 아는 정도다.


길거리의 꽃 조차도 당연하지 않았다.



 어떤 것도 당연하지 않았다.


엄마의 김밥은 전혀 당연하지 않았다. 당연히 주부 9, 살림 고수여야   같은 결혼 15  주부인 내게도 요리는 여전히 어렵기만  도전이다.


하루 삼시세끼 밥마저도 당연한 게 아니었다. 야채는 그냥 샐러드로, 고기는 그냥 구워 먹으면 되지 않나. 왜 꼭 요리라는 걸 해야 하는지 알 수 없는 대상에 화풀이라도 하고 싶을 때도 있다. 그러다 입맛 없어 보이는 아이와 남편을 보면 언제 그랬냐는 듯 백종원 유튜브라도 열심히 보게 된다.


더불어 학교에서 엄마들에게 당연히 요구하는 것도 당연하게 여기지 않아 주었으면 좋겠다. 국제 학교에서 오는 메일 공문은 늘 [Dear Parents and Guardians]으로 시작한다. 인상적이었다. 모두가 당연히 부모와 살 거라고 전제하지 않는다는 게.


같은 아파트에 사는 친한 언니네는 엄마가 일하고 아빠가 살림한다. 그 언니를 볼 때마다 나는 왜 그리도 작아지던지. 왜 그렇게 쉽게 커리어를 포기하고 당연하게 남편을 따라와야 한다고 생각했는지 부끄럽다.


해마다 봄이 되면 늘 보이는 꽃 조차 저마다의 사연이 있지 않을까 싶다. 정말 당연한 건 아무것도 없을까. 그래도 하나쯤은 있어주면 좋겠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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