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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백십 Apr 05. 2021

올 봄, 나도 투표해도 될까

우리 가족은 모두 봄에 태어났다. 그것도 5월에 태어난 둘째를 제외하면 4월 한 달 동안 엄마, 아빠, 나 그리고 막냇동생까지 이틀, 사흘 간격으로 생일이 돌아온다.


이에 아빠는 어릴 때부터 우스갯소리로 자주 말씀하시곤 하셨다. 너희들이 만들 수 있는 기념일은 봄 말고 다른 계절로 나누어서 하라고. 그래서 일부러 결혼은 12월 한겨울에 했다. 그래도 남편의 생일까진 어쩌지 못했다. 남편 역시 내 생일과 불과 열흘 차이.


새 학기, 봄꽃, 봄바람만 해도 설렘이 가득한 이 계절. 생일파티까지 더해지니 봄은 항상 기분 좋은 추억들로 가득했다.


@lydyanada / unsplash.com


반 친구들 모두를 집으로 불러 모아 생일잔치를 열어주시던 엄마. 거기까진 참 좋았는데 문제는 늘 생일파티 2,3일 후에 있었던 반장 선거.


한 번도 반장 선거를 염두에 두고 친구들을 초대한 적은 없었지만 열두 살 생일잔치 때부턴 괜히 마음이 찜찜해졌다. 공교롭게도 생파 바로 다음 날 열렸던 반장 선거. 그 전날 우리 집에서 재밌게 놀았던 친구들 몇몇이 날 추천했고 결국엔 반장으로 뽑혔다.


분명 11살과 10살 때도 상황은 비슷했는데 12살이 되어서야 그런 기분이 들었다. 6학년 때도 상황은 마찬가지였지만 그냥 엄마가 하라니까 했던 것 같다.


그러다 내 의견을 본격적으로 피력한 건 중학교 들어가면서부터. 엄마는 집에서 하는 생파가 싫으면 몇몇만 불러서 패스트 레스토랑에 가라고 했지만 그것도 싫었다. 오얏나무 아래에서는 갓끈도 고쳐 쓰고 싶지 않았다.


추억 속 학창 시절 반장선거를 넘어서서 성인이 되어 첫 투표했던 계절도 봄이었다. 아마도 재보궐선거였으리라. 파란색, 빨간색 후보들 공약 팸플릿을 열심히 읽어보기도 했지만 정치 드라마만 보더라도 겉으로 보이는 게 다가 아니지 않나.


@parkerjohnson / unsplash.com


과연 내 소중한 한 표를 이렇게 써도 되는 건가 긴가민가 하면서 구의원, 시의원 후보로 나온 생소한 이름들 옆에 도장을 찍곤 했다.


홍콩에 와서도 부재자 투표로 열심히 선거했다.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는 경우는 생각보다 자주 있었고 결국 정치하는 사람들은 다 거기서 거긴가 싶어 아예 선거 자체를 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 들기도 했다. 또 어떨 땐 내 마음과 꼭 닮은 기사를 만나 반갑기도 하지만 그 밑으로 달리는 댓글들을 보면 헷갈릴 때가 많다.


나는 보수인 걸까 진보인 걸까.

진보는 공산주의였던가.

보수는 과연 어떤 가치를 보수하는 걸까.


첨예하게 대립하는 온라인 댓글들을 보면 이쪽과 저쪽의 끝에서 나 같이 방황하는 사람들의 설자리는 없어 보인다. 나이와 지역에 따라 극명하게 갈리는 정당 지지율은 보는 것만으로도 피곤하다.



모두가 비슷한 생각을 한다는 것은
아무도 생각하고 있지
않다는 말이다.

When all think alike,
no one thinks very much.



아인슈타인의 말이다. [똑같은 일을 반복하면서 다른 결과를 기대하는 일이야말로 미친 짓(Insanity: doing the same thing over and over again and expecting different results)]이라는 말 다음으로 좋아하는 말이다.


예전 누군가의 인터뷰에서 읽은 적 있는데 신곡을 결정할 때 직원들에게 들려준 다음, 투표를 한다고 한다. 그때 무조건 다수의 의견에 따르기보다 열 명이 반대한  곡을 끝까지 추천하는 한 명의 소수 의견에 따른다고. 그럼 더 대박 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최대 다수 최대 행복.

비슷한 생각을 하는 다수의 의견에 손을 들어주는 선거.


소크라테스를 처형하라고 소리 지르던 관중의 무리 속에, 바라바 대신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형에 처하라고 목놓아 부르짖던 사람들 속에 내가 있지는 않았는지.


가끔은 내 우매한 표 하나가  다수의 힘으로 둔갑해, 멀리 보고 지혜로운 눈을 가진 소수의 생각을 짓누르는 건 아닌지 겁이 나기도 한다.


올봄, 선거는 그 어느 때보다 무겁게 다가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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