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이야기
매일 밤 잠자리에 들기 전 습관처럼 아이를 향해 묻는다. 진짜 질문이라기보단 일종의 의례적인 절차. 당연히 다 썼으니 자려고 하는 거겠지. 그래, 엄마는 너를 믿는다. 믿는다 하면서도 매일 묻고 있지만 어련히 네 스스로 알아서 잘할까! 마음 한 켠의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의심을 애써 잠재우고 그렇게 그냥 넘어간다.
작년 초 홍콩에 코로나가 막 터졌을 무렵, 아이와 나는 한 달 동안 한국 친정에 피신해 있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코로나가 이렇게나 오래, 전 세계로 퍼질 줄은 모르고 잠깐 한국 갔다 오면 모든 게 괜찮아질 줄로만 알았다.
그때 발견한 나의 일기장 컬렉션. 커다란 상자 속에 초등학교부터 중학교까지 쓴 일기장이 고이 담겨 있었다. 직업 군인인 아빠를 따라 한 잦은 이사 중에서도 엄마는 세 딸들의 일기장을 언제나 가장 먼저 챙기셨다고 했다. 덕분에 무려 삼십 년도 더 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꼬꼬마 시절의 익숙한 듯 낯선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2020년 열두 살이던 나의 아이는
1992년 같은 나이의 나를 그렇게 처음 만났다.
우글쭈글해지고 누리끼리한 색으로 바랜 일기장을 침도 묻히지 않고 조심스럽게 넘겨가며 깔깔대는 아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는다. 당시 국민학생이었던 엄마가 쓴 일기장이 아이에겐 그 어떤 만화책보다 재밌나 보다.
꾹꾹 눌러 연필로 쓴 글씨는 마치 어제 쓴 일기처럼 진한 색 그대로다. 강산이 세 번 바뀔 동안 변한 건 나뿐인가. 느릿느릿 흘러가던 그때의 하루가 까만 글씨 너머 뿌옇게 떠오르는 것도 같다.
날 때부터 어른이었을 것 같은 엄마에게도 어린 시절이 있었다는 게 아이는 신기하다고 했다. 부모님에게 혼나고 동생, 친구와 싸워 속상해하기도 하고 시험 성적에 우울해하는 엄마의 모습은 자기 자신 같기도 했고 같은 반 친구 같기도 했나 보다.
무료했던 우리만의 자체 격리 생활 동안 아들은 몇 번이나 나의 일기장을 들추곤 하더니 어느 날은 본인도 홍콩에 돌아가서 매일 일기를 쓰겠다고 한다. 뜻밖의 교육 효과에 쾌재를 불렀다.
한글이 어려운 아이에게 귀찮기만 한 엄마의 잔소리 중 하나였던 일기 쓰기. 그런 일기를 스스로 쓰고 싶어 하다니 얼마나 기특하던지.
처음엔 말뿐이겠거니 했다. 그러나 나의 어린 시절 일기장이 아이에게 미친 영향은 꽤 컸나 보다. 2017년부터 써 온 일곱 권의 일기장 중 무려 네 권이 작년 한 해 동안 쓴 일기다. 심지어 코로나로 인해 이렇다 할 제대로 된 글감도 없었는데!
아이가 쓴 그동안의 일기장을 한 데 모아봤다. 영어로 이름조차 쓸 줄 몰랐던 첫 등교 날, 영문도 모른 채 엄마 따라갔던 이름 모를 전시회, 할머니에게 쓴 편지, 미래의 자녀들에게 되고 싶은 아빠의 모습, 방학 공부 스트레스, 혼난 후 엄마에게 하는 하소연 등 그새 많은 이야기가 쌓였다.
보다 보면 재밌기도 하고 어느새 이렇게 컸지 대견하기도 하다. 때로는 몰랐던 아이의 속마음이 가슴을 후벼 파고 전해져 뭉클해지기도 한다.
그러나 ‘미쳐’를 ‘밎처’로 ‘지하철’은 ‘지아철’, ‘한숨’은 ‘함숨’으로 ‘청소’는 ‘총소’로 써 놓은 걸 볼 때면 그야말로 속이 터진다. 이외에도 셀 수도 없다. 어찌나 맞춤법도 그렇게나 창의적으로 틀리곤 하는지! 고쳐줘도 그때뿐이다.
가끔은 도저히 무슨 말인지 이해가 되지 않을 때도 있다. 민감한 ‘은, 는, 이, 가’ 조사의 뉘앙스를 어디서부터 설명해 줘야 할지 어렵기만 하다. 일기 주제가 없을 땐 알 수 없는 그림과 만화를 그려 넣기도 한다. 어떤 날은 종이 접기로 그날의 일기를 당당히 대체한다.
그러더니 언제부턴가 일기장 속 날짜가 느려지기 시작한다. 4월 8일 다음이 19일, 5월 5일 다음이 23일이다. 그 이후는 말할 것도 없다. 한 달이 우습게 건너뛴 날짜. 나의 어린 시절 일기장 약발의 유효기간은 딱 1년이었을까.
매일 밤 자기 전 일기 썼냐는 물음에 안 썼다고 대답한 적은 거의 없었던 것 같은데 건너뛴 날짜 사이의 시간은 흔적조차 찾을 수 없었다. 믿음직하고 착실하게만 보이던 아들에게 맞은 뒤통수의 충격은 쉽게 가시지 않았다.
이제는 좀 컸으니 혼자 알아서 잘하리라 믿었다. 굳이 매일 일기 검사하지 않아도, 숙제 확인하지 않아도 스스로 하는 나이가 되었다고 생각했거늘 믿었던 도끼에 발등 제대로 찍혔다.
하루 이틀 정도야 괜찮겠지 하고 넘긴 일기는, 일주일을 넘겼고 한 달이 되었을 땐 일말의 죄책감도 남기지 않았나 보다. 아이에게 물으니 자기도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고. 그렇게나 오래도록 안 썼다고 하니 본인이 더 놀란 눈치다.
일기 검사 시작한 김에 줄줄이 소환되는 수학 문제집. 틀린 문제 몇 개를 추려 다시 풀어 보라고 했다. 일곱 문제 중 겨우 두 문제만 맞혔다. 불과 이틀 전 똑같은 문제 오답노트 적느라 팔 아프다며 응석 부리던 녀석이었는데 대체 오답노트엔 뭘 적었던 걸까.
아직은 엄마의 확인과 검사가 필요한 나이일까. 아니면 믿고 기다려줬어야 했는데 참지 못하고 성급하게 끼어든 걸까. 그렇다면 대체 ‘믿고 기다려야 하는 시간’은 어느 정도나 될까. 그냥 내버려 두었어야 했나? 그러다 ‘아프다’를 ‘앞으다’로 쓰는 어른으로 영영 커 버리면 어쩌지. 무심한 것과 믿어주는 건 어떻게 다른 걸까.
많은 고민과 생각 속에 잠을 설친 나와는 다르게 그렇게나 혼나고도 아이는 어제 일기를 또 건너뛰었다. 쓰려다가 깜박한 건지 책상에 펼쳐져 있는 일기장 속 6월의 날짜는 단 네 개뿐이다.
자, 아이의 일기장을 그대로 덮고 모른 척 넘어갈 것인가 아니면 열한 시가 넘도록 늦잠 자고 있는 아이를 깨워 책상 앞으로 데려와 어제 일기부터 쓰게 할 것인가!
한참을 고민하다 오늘은 그냥 넘어가 보기로 한다. 그러나 내일은 또 어떨지 모르겠다. 이 와중에 세상모르고 자고 있는 아이의 모습은 그저 해맑은 천사 같다. @이백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