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히 그렇다 할 나쁜 일은 없었는데 마음이 착 가라앉아 괜스레 초라함을 느낀 그런 날이 있었다. 앉을자리 없던 버스에 서서 덜컹거리는 몸이 넘어지지 않게 잘 버텨냈다. 그렇게 잘 버텼는데 하루의 해가 질 무렵 알 수 없는 작은 설움이 밀려왔다.
어떻게 하루를 보낼까 고민하다 비교적 한적한 해변가가 있다 해서 책을 한 권 챙겨 가기로 했다. 씻고 준비를 하는데 해변에 입고 갈 만한 옷이 하나도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신발도 운동화와 약간 굽이 높은 샌들뿐이었다. 어쩌면 이때부터 슬슬 내키지 않았던 것 같기도 하다.
걸어서는 갈 수 없는 거리라 버스를 탔다. 꼼꼼하게 행선지를 확인하고 올라탄 버스는 여행자들로 가득했다. 그렇게 버스를 타고 한 시간 정도 지났을 때 갑자기 대학교 일 학년 때가 떠올랐다. 도시에서 처음 자취를 할 때 버스를 잘 못 타서 십분 거리를 한 시간 넘게 돌아간 적이 있었던 것이다. 왜 그 순간 그때가 떠올랐는지.
무엇인가 잘못될 것 같다는 초조함에 제대로 확인도 안 하고 우르르 내리는 사람들을 따라 내려 버렸다. 같이 내린 사람들은 하나 둘 떠나고 홀로 덜렁 남겨진 나는 구글 지도를 켜야 했다. 목적지를 입력한 후 허허벌판 같은 곳을 꽤 오래 걸었다. 똑같이 내리쬐는 햇살도 건물이나 나무가 없는 곳에서는 더 더울 수밖에 없다. 내리쬐는 모든 햇살이 다 나의 몫이었다. 가끔 바람도 불어왔지만 스쳐갈 뿐 머물지는 않았다.
그렇게 도착한 곳은 여느 해변가처럼 많은 사람들과 시끄러운 음악이 흘러나오는 음식점들이 즐비한 곳. 도저히 무엇을 할 용기가 나지 않았고 실제로도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모든 것이 어색했고 날 보는 사람들의 시선도 그렇게 느껴졌다. 어울리지 않은 옷을 입고 파티에 놀러 간 사람처럼 기가 죽어 다시 떠나야 했다. 하루의 해가 질 무렵 느낀 그 설움은 제대로 구경도 못하고 돌아온 탓, 밀려드는 파도 대신이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