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방학의 추억

by 샹송

자연은 영원히 변하지 않을 것 같지만 스스로 조금씩 변하기도 하고 사람에 의해 더 편리하고 보기 좋게 바뀌어집니다.


윗동네 살 적에 친구들과 누비고 다녔던 산과 들은 여전히 존재하지만 어느 곳으로 들어가서 어느 곳으로 나와야 하는지 길을 찾지 못하겠습니다.


강은 같은 곳에서 조금은 다른 모습으로 흐르지만 그 위에 자리 잡은 다리는 완전히 새롭습니다. 낮고 아담했던 돌다리가 지금은 어색하리만치 높고 큰 다리로 아주 늠름하게 놓여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옛날 다리가 더 마음에 들기에 그 다리 위를 다시 걸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드네요.


여름이면 다리 위에서 다이빙을 하며 놀던 언니 오빠들이 있었습니다. 거의 하루도 빠짐없이 온 동네 아이들이 강가에서 놀았는데요. 같은 또래끼리 놀았으니 저는 친구들이랑 얕은 곳에서 물장난을 치거나 나름 헤엄을 치며 놀았습니다.


한참 물놀이를 하다가 강 중간에 솟아있는 바위에 앉아 간식을 먹기도 했습니다. 주로 아폴로나 새콤달콤한 맛이 나는 알약 모양의 불량 식품들이었어요. 따사로운 햇살 아래서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먹었던 달달한 맛과 기분 좋은 나른함이 기억나네요.


강 가까이에 슈퍼를 하는 친구네 집이 있어서 군것질하기가 편했습니다. 친구 집은 나무들이 많아 늘 그늘이 져있고 시원했는데요. 해마다 여름이면 거북이 모양의 튜브가 대롱대롱 매달려 바람에 흩날렸답니다. 매번 사나운 매미 소리를 들으며 나무아래를 지나지만 동네 아이들 누구도 튜브를 가지는 일은 없었습니다.


그렇게 늘 비슷한 여름방학을 몇 차례 보낸 뒤 열 살이 되던 여름 방학에는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됩니다. 집 뒤편에 있는 작은 교회로 여름성경학교를 열기 위해 대학생 언니 오빠들이 방문을 했거든요.


그 기간 동안에는 평소 잘 나가지 않는 교회에 매일 갔습니다. 큰 언니 오빠들 말고는 동네 아이들이 거의 다 왔더군요. 교회에서 노래와 율동을 배우고 게임도 하면서 시간을 보내는 게 너무 재밌었습니다. 칭찬 스티커를 모으면 마지막날에 마음에 드는 학용품으로 교환을 할 수 있었는데, 예쁜 게 너무 많아서 고민을 한참 해야 했습니다.


저는 여러 선생님들 중에서도 안경을 쓰고 활짝 웃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던 여자 선생님을 제일 좋아했는데요. 무엇을 하든 그 선생님과 함께 했고 선생님도 정말 많이 챙겨주셨답니다.


세세한 기억은 잘 안 나지만 손을 꼭 잡아 주시거나 흐트러진 머리 같은 걸 정리해 주시던 손길 같은 게 언뜻 기억납니다. 말로는 형용할 수 없는 교감이 있었기에 따듯한 추억으로 자리 잡고 있겠죠.


여름 성경학교는 일주일 정도의 기간이었던 같아요. 정이 들기에는 충분한 시간이었기에 헤어질 때 너무 슬펐습니다. 사실상 또 만날 일이 없었으니까요.


서로 편지를 보내기로 약속을 하고, 여름성경 학교가 끝나자마자 저는 예쁜 편지지를 사서 하고 싶은 말들을 가득가득 채웠습니다. 아끼던 스티커를 여기저기 붙이고 유치원에서 찍어서 배지로 만들어줬던 사진 하나를 넣어 편지를 보냈습니다.


며칠 뒤 선생님에게 온 답장을 몇 번이나 읽어 보고 또다시 답장을 썼습니다. 몇 번 그렇게 주고받았지만 결국에는 연락이 끊기고 말았니다.



아마 마지막쯤 받은 편지인 것 같은데 선생님께서 삐삐로 연락을 하라며 빼곡하게 사용법을 적어 보내셨습니다. 시도는 해봤는데 부끄러워서 메시지를 남긴 적은 한 번도 없었답니다. 그다음 해에 또 다음 해에도 여름성경학교가 열렸지만 저는 동그란 안경을 쓰고 활짝 웃어주시던 선생님을 늘 떠올렸습니다.






여전히 선생님의 얼굴이 기억은 나지만 이제는 그 기억 속 얼굴과 달라졌을 테지요. 아직 가지고 계신다면 저의 어린 시절 얼굴을 몇 번이나 들여다보셨을지 궁금하네요.


낡고 오래된 상자 속에 넣어 놓고 잊었다 해도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저 역시도 잊은 채로 살아가니까요.


그래도 이렇게 생각이 날 때면 지나간 안부와 다가올 안부는 내버려 두고 그저 오늘 하루가 무탈하셨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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