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가 끝나면 아이는 친구들과 같이 먼 길을 걸어 집으로 돌아갑니다. 드문드문 차들이 지나는 도로 한쪽에서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는 긴 여정이 싫지만도 않습니다. 함께이기에 모험을 떠나는 기분이었을지도 모릅니다.
계절마다 바뀌는 풍경을 그 당시에는 잘 느끼지 못했겠지요. 파란 하늘이나 길가에 피고 지는 꽃보다는 서로의 이야기나 작은 걸음에 더 관심을 두었을 테니까요.
버스를 타고 갈 때는 따로따로 앉아 말이 없는데 걸을 때는 하고 싶은 말이 많아지고 발맞춰 걸으면서 귀를 더 기울이게 됩니다. 목적지가 같았기에 마음이 급할 것도 없고 함께이기에 무서울 것도 없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이는 홀로 집으로 돌아가야 했습니다. 학교에 남아 그림 연습을 해야 했거든요. 친구들은 수업을 마치자마자 집으로 가버렸으니 늘 같이 걸었던 길을 혼자서 걷습니다. 괜스레 마음이 급해져 걸음이 빨라졌고, 평소보다 늦은 시간에 집에 도착하고 나서 엄마를 보자마자 울어 버렸습니다.
친구들이 가고 난 뒤의 교실은 쓸쓸하고 너무 조용해서 적응이 되지 않았고, 걸어오는 길도 그랬습니다. 혼자서 무엇인가를 하는 것보다는 친구들과 같이 아무것도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을 합니다.
언니오빠와 걸었던 길 위에 오빠가 먼저 그다음에는 언니가 사라졌을 때도 아이는 외롭지 않을 수 있었거든요. 곁에 친구들이 셋이나 있었으니까요. 그건 친구들도 마찬가지였을 겁니다.
다른 동네를 거쳐 살고 있는 동네길로 들어서면 아이와 친구들은 가끔 길가에 책을 펴놓고 숙제를 합니다. 숙제를 미리 하고 집에 가면 바로 놀 수 있다는 생각을 했거든요.
머리를 맞대고 수학 문제를 풀었던 시간에는 틀려도 괜찮다는 안도감이 섞여 있습니다. 언제든 서로에게 답을 확인하고 고칠 수 있으니까요. 어른이 되면 각자 풀어야 할 숙제가 다르다는 걸 그 당시에는 알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숙제를 하기 위해서 또는 놀기 위해서 바로 집을 향해 걷는 날은 많지가 않습니다. 주변은 놀이터로 가득했으니까요. 지치지도 않는지 뛰고, 오르고, 뛰어내리고 그랬습니다. 많이도 웃었겠죠. 별일 아닌 일에도, 유치한 농담이나 학교에서 있었던 재밌는 일들을 다시 떠올리면서 말입니다.
그 웃음이 너무나 당연해서 우리는 서로가 우는 모습을 본 적이 없는 것 같습니다. 울었다 해도 곁에서 같이 걸어주는 것 말고는 해 줄 수 있는 게 없었을 겁니다.
얼마나 많은 시간을 같이 걸었을까요. 나이를 한 살 두 살 먹어 가면서 나누는 이야기들이 달라지고, 함께 나누지 못하는 생각들이 많아지면서 입을 다무는 날도 생깁니다. 기분이 상했을 때도 싸웠을 때도 있었겠지만 그래도 가야 할 길이 같으니 어쩌겠습니까. 같이 가야죠. 같이 걷다 보면 또 금방 웃을 일이 생깁니다.
제가 삼월생인데, 사나흘만 일찍 태어났어도 동네 친구가 한 명도 없을 뻔했답니다. 쓰면서 생각해 보니 정말 다행이었네요. 길동무가 셋이나 있어 외롭지 않게 학교를 다닐 수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