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다리 밑에서 주워왔다는 놀림은 흔한 놀림이었죠. 저도 들어는 봤는데 그 말을 믿은 적은 없었습니다. 사실은 그 말보다 더 듣기 무서운 말이 있었거든요.
같은 동네에 아들만 둘 있는 아주머니가 계셨는데 어느 날부터인가 저를 보면
-너, 우리 집 와서 같이 살래? 아줌마 딸 안 할래?
이러시는 겁니다.
한, 두 번 그랬으면 저도 그냥 넘겼을 텐데 너무 자주 그러시니까 어린 나이에 얼마나 걱정을 했는지 모릅니다. 말 만으로도 벌써 그렇게 돼버린 것 같아서 매번 눈물을 글썽였답니다. 한 번쯤은 우리 엄마 아빠랑 같이 살 거예요 라면서 소리 내서 외칠 법도 한데 성격상 그러지도 못했답니다.
동네에서 친구들과 놀고 있으면 그 아주머니께서 지나가시다 어김없이 제게 또 물어봅니다. 친구들 앞에서까지 그러니 창피하기도 하고 속도 상했습니다.
어느 날은 통장까지 들고 와서 그러시길래 내가 팔려가나 싶어서 엄청 서럽게 울었던 적이 있었는데요. 기억에는 옆에 엄마랑 다른 어른들도 있었는데 웃기만 하지 달래주지는 않더라고요. 통장을 막 보여주시면서 맛있는 것도 많이 사주고 예쁜 옷도 사주겠다는데 그게 좋을 리가 없잖아요. 그때 제가 여섯, 일곱 살은 되었던 것 같은데 그 나이면 가족들이랑도 충분히 정이 들었을 나이인데 말입니다.
그런데 언젠가 아빠가 그 집에 가서 딸 할 생각이 없냐면서 넌지시 묻는 겁니다. 당연히 싫다고 했지만 제가 멋모르고 그러겠다고 했다면, 운명이 크게 바뀌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가끔은 한답니다. 그 아주머니께서 꽤 진지하게 그러셨고 엄마 아빠도 딱히 적극적으로 안 된다고 하지 않았기에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때는 딸보다 아들을 더 귀하게 여겼을 때라 언니도 있으니 딸이 두 명까지는 필요 없었나 싶기도 하고요. 물론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ㅎㅎ)
서럽게 울고 난 뒤로는 아주머니께서 포기를 하셨는지 저를 봐도 그냥 지나치시더라고요.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기는 했지만 지나갈 때 보니 아주머니 표정이 너무 쓸쓸해 보이더랍니다. 다른 건 몰라도 통장 보여줬을 때 그렇게까지 서럽게 울지는 말 걸 그랬습니다.
진심이든 아니든 아주머니께서는 아들만 둘이니 막내로 딸 하나를 더 얻고 싶은 생각이셨겠지요. 다르게 생각해 보면 그 막내딸로 선택을 당했으니 저를 유독 예쁘게 봐주신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왕 추억으로 남은 일이니 되도록이면 좋게 간직해야겠지요.
엄마 뱃속에 있을 때 어른들은 다들 제가 아들이기를 바랐다고 합니다. 유치원 입학 전인가 후인가 머리를 남자아이처럼 짧게 자른 적이 있었는데 그때가 떠오르네요. 그러고 증명사진을 찍는 바람에 사진으로까지 남아 제게는 달갑지 않은 기억입니다. 그래서인지 초등학교 때는 치마 같은 것도 안 입었습니다. 레이스니 꽃무늬 같은 여성스러운 거 진짜 안 좋아했거든요. 엄마가 원피스를 입혀놨다고 뿔이 나서 방에만 앉아 있던 기억도 나네요. 어릴 때 보면 다 그럴만해서 그런 일이 많았습니다. 제가 울보였던 것도 울 일이 많아서 그런 거였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