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사는 아랫마을과 할아버지가 사셨던 윗마을은 차로 2~3분 거리라 가깝습니다. 제가 열 살 무렵까지 같이 살다가 그 후로는 따로 살게 되었습니다. 어렸을 때라 이유를 모르고 부모님을 따라갔던 터라,,, 아마 여러 가지 사정이 있었을 거라 생각합니다.
고등학교는 집에서 다녔으니까 상관없었지만 대학생이 되고 난 후에는 명절 때나 방학이 되어야 할아버지를 볼 수 있었는데요. 그래서 방학을 하면 부모님 얼굴을 잠깐 보고 바로 할아버지 집으로 갔습니다. 조용하고 한적한 할아버지 집이 더 편하기도 했답니다.
요리하고 설거지하고 가끔 청소도 하면서 특별히 하는 것 없는데도 하루가 참 빨리 흘렀습니다. 하나 조금 힘든 게 있었다면 할아버지가 일찍 일어나셨기에 늦잠을 잘 수 없다는 거였습니다. 그래서 자주 낮잠을 잤던 기억이 나네요. 책 읽거나 텔레비전을 보다가 거실 한가운데서 스르륵 낮잠에 드는 게 나른하니 참 좋았습니다.
저녁이 되면 여덟 시 넘어서 해주는 일일연속극을 매일 봤습니다. 할아버지는 연속극을 보시면서 이런저런 설명도 해주시고 가끔은 욕도 하고 웃기도 하면서 참 재밌게 보셨어요. 연속극이야 처음부터 안 봐도 하루, 이틀 보면 이야기가 다 파악이 되기에 저도 재밌게 봤던 기억이 납니다.
배가 고프면 야식으로 달걀을 삶아 먹거나 냉동실에 얼렸던 떡을 데워먹는 것도 재미 중 하나였습니다. 할아버지는 평소에 소식을 하셨기에 조금씩 자주 드셨거든요.
어느 여름 방학에는 점심으로 국수를 끓여 먹었는데 할아버지가 체하신 적이 있습니다. 의도치 않게 소문이 나서 친구가 찾아와서 놀린 적이 있답니다. 네가 끓여준 국수 먹고 체하셨다고 소문났다, 이러면서. 저는 그냥 웃고 말았습니다. 위장이 약하신 편이었는데, 듣기로는 어릴 때 큰 사고가 있어서 장기가 약간 훼손되셨다고 그러더라고요. 그래서 오래 못 살 거라고 그랬다던데 오히려 건강하게 장수하셨어요.
지금도 할아버지 집에는 에어컨이 없는데요. 여름에 더워서 불쾌했거나 열대야로 괴로웠던 기억은 없습니다. 창문을 열어놓고 자면 시원하게 잠들었던 것 같아요.
겨울에는 거의 매일 저녁을 드시면 마을 회관으로 화투를 치러 가셨습니다. 치매 예방도 하실 겸 늘 화투를 만지셨거든요. 그래서 할아버지 화투를 보면 그림들이 흐려진 부분이 많았습니다. 소식과 걷기 그리고 화투가 할아버지만의 장수 비결이었던 것 같네요.
긴 방학이 끝나고 다시 돌아가야 할 때면 저도 그랬지만 할아버지도 서운한 기색을 많이 비치셨어요. 직접적으로 말씀은 안 하셔도 방학 끝나갈 때즈음 되면 언제 가야 하냐면서 물으셨거든요. 차비하라면서 용돈을 쥐어주시고는 하셨는데 용돈을 받으면서도 마음이 참 무거웠습니다.
부모님 집으로 다시 가는 날에는 십분 남짓이라 걸어서 갔는데 할아버지께서 늘 데려다주셨습니다. 나란히 길을 걸으면서 서로 아무 말도 없습니다. 길가와 조금 떨어진 곳에서는 강이 흐르고 나무들이 줄지어선 길 위로 드문드문 차들이 지나가네요. 차속 사람들에게는 저와 할아버지가 무슨 사연을 지고 있는 것처럼 보였을 테죠.
아랫마을 입구까지 오면 부모님 집에 들렀다 가시기도 했는데 그러지 않을 때는 입구에서 헤어졌습니다. 제가 손을 흔들면 할아버지도 얼른가라며 손을 흔드셨고, 뒤돌아서면 저는 눈물을 훔칩니다. 다시 못 보는 것도 아닌데 왜 그렇게 눈물이 고이던지. 홀로 걷는 할아버지의 뒷모습은 볼 때마다 점점 작아지는 것 같았어요. 꼬맹이때만 해도 세상에서 제일 키가 크고 힘이 센 사람이 할아버지인 줄 알았답니다.
먹고살기 위해 장에 나무를 팔러 다니셨다는 할아버지는 아주 오래전부터 같은 길 위를 해뜨기 전에도 해가 진 후에도 어둠 속에서 혼자 걸으셨을 겁니다. 흙길이 도로가 되고 물길이 달라지는 동안에도 변치 않은 발걸음으로. 그 길을 다 아는 건 할아버지뿐입니다. 아무도 모르는 길을 혼자 안다는 건 정말 외로운 기분이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