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몇 번이라도

by 샹송

산책을 하다 유독 눈길이 멈추는 길 위에는 할아버지가 있습니다. 제가 같이 일 때도 있지만 할아버지 혼자일 때가 더 많네요.


할아버지가 평생 걸었던 걸음수가 과연 얼마나 될지 모르겠습니다. 할아버지는 운전을 할 수 없으셨으니 걷는 게 늘 일상이셨습니다. 아마 그래서 큰 병 없이 장수를 하신 것도 같네요.


할아버지는 24년에 태어나셔서 21년에 돌아가셨습니다. 재작년 추석에 돌아가셨으니 이제 일 년 반개월 정도 되었네요.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처음 맞는 설에는 괜히 길을 잃은 사람처럼 서성거렸습니다. 늘 따스하고 온기가 돌던 방이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영정사진뿐이라 너무 허전했답니다. 사진 앞에서도 밝게 인사할 수 있으면 좋겠는데 대답 없는 인사가 선뜻 나오지 않았습니다.


할아버지 건강이 악화되셨을 때쯤 저는 같이 일하는 동료가 코로나에 걸려 이주동안 자가격리를 했었습니다.


할아버지가 앓아누우셔서 식사도 제대로 못한다는 소식에 어찌나 마음이 무겁던지. 그래도 다시 기운을 차리실 거라고 생각했었는데요. 잔병치레가 있으셔서 한 번씩 크게 아프시고는 했거든요. 그때마다 늘 다시 일어나셔서 건강한 모습을 보여주셨기에 막연한 희망이 있었습니다.


할아버지를 요양병원에 모신다는 얘긴 고향으로 내려가는 당일에 들었습니다. 다행히 추석 전에 아슬아슬하게 자가격리가 끝나 집에 갈 수 있었습니다. 병원에서 할아버지를 데리러 두 시에 온다고 했는데, 차가 막히다 보니 속으로 얼마나 애가 탔는지 모르겠습니다.


두시에 겨우 도착해서 바로 방으로 들어가니까 야윈 몸을 웅크리고 누워있는 할아버지가 보였습니다. 언니도 저도 막 울면서 할아버지 손을 붙잡고 불러봐도 할아버지가 절대 눈을 뜨지 않으시더라고요. 얼마 안돼 요양병원 차량이 도착했고 어쩌면 마지막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 차에 같이 올라탔습니다.


그날 할아버지를 보면서 태어나서 처음으로 나는 죽을 때 어떻게 죽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무서웠습니다. 할아버지도 두려워하시는 것 같았어요.


숨은 쉬셨지만 산소포화도가 낮아 호흡기를 끼워드리는데 싫으신지 자꾸만 손으로 쳐내시더라고요. 그러면서 엄마 손을 어찌나 꽉 잡으시던지...


요양원 같은 곳에 절대로 가기 싫어하셨는데, 그렇게 가기 싫었던 곳에 가야 한다는 걸 인정하고 누워 있어야 하는 심정이 어땠을지 지금도 마음이 아픕니다.


그렇게 요양병원에 가시고 바로 다음 날 새벽에 위독하다는 연락이 왔습니다. 다행히 부모님께서 마지막을 함께해 드렸지만 역시 저는 마음이 편치 않았습니다.


짧은 시간만이라도 할아버지랑 눈을 마주치고 이야기를 나눌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멈추지 않더랍니다. 그 당연했던 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가는데 마치 빠르게 달리는 기차의 차창 같아 허망하기만 했습니다.


장례식을 치르는데 살 만큼 오래 사셨다는 말을 많이들 합니다. 할아버지의 삶에서 정말 좋았던 날이 얼마나 될까요? 너무 힘든 시대에 태어나셔서 고생하셨던 날들이 반도 더 넘으실 겁니다.


장례식 마지막 날 할아버지의 방을 정리하면서 유품을 몇 개 챙겼습니다. 장갑 한 켤레와 늘 착용하셨던 안경, 손목시계 그리고 사진 한 장을 챙겨 장례식이 끝나자마자 자취방으로 돌아갔습니다.


자취방으로 돌아온 날 저녁에는 여섯 칸짜리 책장 한 칸을 비워 할아버지의 유품을 올려놨습니다. 물건을 하나하나 보다 손목시계를 집어 들었는데 여전히 가고 있는 시계를 보니까 기분이 묘하더라고요. 마치 할아버지가 살아계신 것 같다는 느낌이 들어서 시계가 멈추지 않게 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선 진짜 펑펑 울었답니다.


입관식 때만 빼고는 장례식 내내 눈물을 계속 참았거든요. 어찌나 눈물을 참았던지 관자놀이에 눈물이 다 얹힌 것 같았답니다. 손녀딸이 너무 서럽게 울면 이상할 것 같아서 또 도저히 짧게 울고 말 자신이 없었습니다. 아마도 저는 마음껏 울고 싶어서 장례식이 끝나자마자 서둘러 돌아갔던 것 같습니다.


어릴 때부터 같이 산 탓도 있겠지만 저는 유독 할아버지에 대한 애정이 남달랐습니다. 언니오빠에 비해 추억도 많습니다. 그래서 더 많이 울기도 하고 그리워도 하지만 다시 돌아간다 해도 같은 추억들을 또 쌓아 올리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