맑은 날에

On a Clear Day

by 샹송

미세먼지 없이 맑은 날. 아침 운동 중에 기다렸던 꽃비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집을 나설때부터 심상찮게 바람이 불어와 벚꽃을 보려고 신나게 뛰어 갔습니다.


공원에 도착하니 공터에 피었던 벚꽃잎들이 우수수 흩날려 실컷 구경을 했답니다. 꽃잎이 희어서 그런지 눈이 내리는 것 같았습니다. 그 모습을 보면서 꼭 눈을 처음 본 아이처럼 감탄을 했습니다.


처음 본 건 아니겠지만 기억에 남아 있지 않는 걸 보니 전에는 제대로 느끼지 못했던 모양입니다. 지나고 나서야 그랬다는 걸 알았습니다. 인생에서 가장 꽃 같았던 시절들을 우두커니 나무처럼 지내버렸다는 걸.


좋은 걸 좋다고 느끼지 못하고 지냈던 안타까운 시절을 되돌릴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지금은 느낄 수 있어 정말 다행입니다.


떨어지는 꽃잎과 남아있는 꽃들, 아직 피우기 전인 꽃봉오리까지. 벚꽃나무의 완성은 있을 수 없는 일인가 봅니다.


떨어지면서 파란 하늘을 수놓은 꽃잎들은 리듬을 타듯 아래로 가라앉아 어딘가에 안착을 합니다. 그렇게 떨어져 바람이 불어오면 쟁반에 구슬 굴러가듯 또르르 굴러네요.


떨어지는 꽃잎을 여렵사리 몇 개 잡아봤습니다. 꽃잎이 살포시 손 위로 내려앉자 소중한 거라도 손에 쥔 듯 그런 기분입니다.


바람에 날리는 꽃잎들


오후에는 네 앞 길로 벚꽃 구경을 갔습니다. 길 양쪽으로 벚꽃나무가 있어 저는 벚꽃터널이라고 부답니다. 제가 자전거를 타고 운동하러 갈 때마다 지나가는 길인데요. 조용하던 거리가 주말이라서 그런지 조금 들썩였습니다.


차들도 꽃구경을 하느라 느릿느릿 지나가고 배낭을 메고 카메라를 손에 든 사람들도 가다 서다 하네요. 저와 같이 산책 나온 이들은 여유 있게 바람을 맞아가며 걷습니다. 모두가 느릿느릿한 세상입니다. 꽃이 만든 세상이지요.


바람이 세게 불어와도 꽃잎들은 아직 지기를 거부합니다. 이제 막 피어났으니 억울할 거란 생각이 드네요. 바람이 안 불 때는 가만히 귀 기울이면 벌들이 윙윙대는 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온종일 눈이 부십니다. 햇살과 반짝이는 강물에 하얀 꽃나무까지. 요즘에는 이렇게 맑은 날이 좋은 날인 것 같아요.


봄을 처음 만난 사람처럼 이제야 기억 속에 제대로 된 봄을 그려 넣은 것 같습니다. 걷는 길마다 꽃길이라 향기가 떠나질 않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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