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미꽃은 생각보다 쉽게 볼 수 없는 꽃이다. 작년 이 맘 때쯤 가보고 한참 발길을 끊었던 한 산책길. 동네에서 제일 명당이었던지 산소가 많은 길을 오랜만에 찾았다. 소나무가 많고 길 옆으로 나무들이 빽빽해서 조금 복작거리는 기분이 들게 했다. 안으로 걷다 보니 뒤늦게 피었는지 아직 꽃잎이 피어있는 벚꽃나무가 있었다. 그 나무가 바라보고 있는 산소는 주변이 온통 할미꽃이다. 그야말로 할미꽃밭. 꽃이 가득 피어 있는 걸 보니 살아생전에 좋은 일을 많이 하셨나 보다 하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시골에서 자랐어도 할미꽃을 봤던 일은 거의 없었다. 구부정한 줄기 끝에 늘어뜨려진 붉은색 꽃잎은 피어나기 전의 꽃봉오리 같다. 언뜻 벌어진 꽃잎 속을 들여다보면 그 속은 노랗다. 벌어진 꽃잎의 모양새도, 꽃과 꽃잎을 보호하듯 난 새하얀 솜털도 어린 새가 연상되어 이름과 달리 귀엽기만 한 모습이다. 이렇게 생겼구나, 자세히 할미꽃을 보고 있자니 이름이 왜 할미꽃인지 굳이 생각해 볼 필요도 없다. 들에서 쑥이며 나물을 캐는 할머니들이 가만히 앉아 고개 숙인 모습은 할미꽃을 닮은 듯하다.
나는 한때 노인이 되고 싶었던 적이 있었다. 지금 생각에는 참 이상한 점이다. 왜 그런 마음이 들었을까 싶지만 아마 너무 힘든 시간을 겪고 있었을 테고 시간이 앞으로 앞으로 많이 흘러가길 바랐던 것 같다. 그리하여 마루에 앉아 콩까는 모습이나 호미로 밭을 매고 봄나물 캐는 모습을 볼 때면 나중에 나도 저런 모습으로 늙어가겠지 하는 일종의 꿈을 품게 되었다.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감히 다 알지도 못하면서, 한편으로는 겪지 않은 세월을 너무 쉽게 가지려고 한건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노인이 되고 싶었기보다는 내 눈에 비친 모습들이 그저 평온하고 좋게만 보였던 것일 수도 있다. 나이가 들어감을 완전하게 좋아할 수는 없지만 이제는 그 사실이 싫지만도 않다는 것을 느끼고 있는 중이다. 그런데 또 생각해 보니 나는 왜 당연하게 노인이 될 거라고 자신하고 있었는지 의문도 들었다. 약속되어 있지 않은 삶. 누구나 늙고 싶지는 않겠지만 결국 노인이 되는 것은 하나의 꿈일지도 모른다. 그러니 기회가 온다면 할미꽃이 되어도 좋을 것이다. 늙어서도 꽃이 되어보는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