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샹송 May 16. 2024

 아침 풍경

긴 항해가 피곤했는지 깊은 잠을 잤다. 평소보다 느지막이 일어나 베란다로 나가자 따스한 볕이 내리쬐고 있어 안 그래도 하얀 공간을 더 눈부시게 했다. 새하얀 바닥 위의 꽃잎이 선명하고 붉게 빛나 눈길을 끈다. 떨어진 것처럼 보이지 않았고 일부로 놓아둔 것처럼 잘 어울렸다. 조심스레 집어 시집 사이에 꽂아놓자 어쩐지 여유로운 기분이었다.

하늘은, 약간 뿌옇게 보였고 구름도 옅기만 해 기대했던 것과는 다르다. 상상 속에서의 하늘이 더 파랗고 예뻤을 뿐. 한 번도 와본 적 없는 곳에 대한 환상은 깨지고 만다. 지만 환상이나 기대, 꿈같은 것들은 내가 원해서 마음대로 가지는 것인데 조금 잃거나 무너지면 어떤가. 햇살은 여전히 따사로웠고 이국적인 풍경에 기분은 상쾌했다. 살랑거리는 바람에 잠이 완전히 달아나자 마을도 덩달아 깨어난다. 담벼락 너머로 마을의 활기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마을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닭과 돼지와 나귀가 우는 소리, 사람들의 말소리가 뒤범벅이 되어 들려왔다. 나는 침대에서 뛰어 일어나며 조르바! 오늘은 할 일이 있잖아요, 이렇게 소리치고 싶었다. 그러나 나 자신도 햇살이 장밋빛으로 들어오는 아침에 가만히 몸을 일으키는 행복감에 저항하기 어려웠다. 그렇게 기적 같은 순간이 오면 인생의 모든 것은 아침처럼 산뜻해 보이는 법. 대지는 부드럽고 구름은 바람에 그 모습을 끊임없이 바꾸어 갔다.



시집의 꽃잎들. 별 것 아닌데 오랫동안 간직하고 있다 보니 특별한 꽃잎으로 여기게 되었습니다. 특별한 건 처음부터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닌가 봐요.


매거진의 이전글  휴식을 위한 여행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