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과 저녁의 선선함이 서서히 옅어지고 있다. 새들은 하루 중 가장 좋은 때를 노래하느라 이른 아침과 늦은 오후에 자주 지저귄다. 창을 열어 놓아도 춥지 않은 밤이 오면 진한 풀냄새와 함께 풀벌레들의 울음소리가 밤공기를 메운다.
한 여름같이 더운 낮이 되면 때때로 그늘과 시원함을 찾아 나선다. 키 큰 나무들이 우거진 숲은 가만히 앉아 있을 만하지만 역시 바람이 불어야 시원하다. 온통 그늘인 곳에선 군데군데 든 작은 햇살들이 따스하게만 보인다. 그늘은 여름 색의 한 부분을 차지한다. 어두운 색깔을 띠지만 칙칙하지 않은 반가운 여름의 보호자이다.
유월 중순이 되면 제일 먼저 잠에서 깨어난 숲 매미가 희미한 첫울음을 낸다. 혼자 운다는 것이 부끄러운 듯 첫 시작을 알리는 것이 어색하다는 듯, 희미하고도 짧다. 매미의 첫울음처럼 은근슬쩍, 이제 봄이 끝인가 하는 아쉬운 순간 여름은 시작이 된다. 초가을까지 살아 마지막에 남아 우는 매미의 울음도 갓 깨어난 것처럼 들려오다 멎는다. 모든 계절의 시작과 끝이 그렇다.
내리쬐는 햇살엔 이미 여름이 담겨있어 더워도 어쩔 도리가 없다. 아지랑이가 이름을 닮은 지렁이처럼 피어나 어질어질하다. 뭉게구름이 피어난 하늘은 그림을 그려놓은 것 같이 예뻐도 여름의 하늘은 영 인기가 없다. 태양이 높이 떠있어 구름을 한층 선명하게 볼 수 있는 날들이니 때론 여유로운 마음으로 하늘을 올려다보아도 좋다.
여름은 언제나 공기 속에 가득 넘쳐나고 그래서 곁에 오래 머문다고 느껴진다. 해가 길어졌을 뿐 실은 그리 길지 않다. 뭔가 잔뜩인 기분이라 아련하게 남는 것이 많은 계절이기도 하다. 소리 없이 고요한 더위 안에 신나는 여름의 노래와 바다와 산으로 떠나는 떠들썩한 휴가, 달콤하고 시원한 여름의 맛이 어우러져 조용하면서도 시끄러운 추억으로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