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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속버스

by 샹송

얼마 전 또 오랜만에 고속버스를 탄 일이 있었습니다. 나른한 오후, 햇살이 드는 버스 안은 이전의 많은 시간들을 상기시켰습니다. 비슷한 듯 다른 도로 풍경들. 스쳐 지나간 무의미한 시간들인 줄 알았는데, 새삼 다 추억이 돼있었습니다.


저의 경우에는 주로 서울 가는 고속버스였습니다. 친구들을 만나러 가는 한 시간 거리의 그 길 위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고, 이십 대 대부분을 그랬던 것 같습니다. 잠깐이지만 옆자리에 앉아 같은 길을 향했던 이들의 수도 꽤나 많겠습니다.


친구들을 만나 해가 질 때면 언제나 마지막은 술집입니다. 아쉬움에 예약한 차표 시간을 뒤로 미루고 또 미루다, 막차를 놓치지 않으려 알딸딸한 상태에서도 전력질주를 했던 적이 몇 번 있습니다. 어느 날은 우연찮게 보고 싶었던 사람을 버스 기다리는 줄에서 만났습니다. 그냥 헤어지기 아쉬워, 도착지 근처 술집에서 술 한잔 하던 갑작스러운 만남은 기대에 없던 소중한 시간이었죠.


고속버스 역시 하나의 공간으로서의 분위기를 가졌습니다. 특히 겨울에 많이 느껴집니다. 추운 날씨에 하루 종일 바깥을 나돌다 따듯한 버스에 올라타면 몸이 노곤해지면서 잠이 쏟아집니다. 사람은 많지만 조용한 공간. 좌석에 앉아 있을 때 느껴지는 작은 진동과 여러 백색소음들이 그렇습니다.


갓 독립했던 대학시절과 사회 초년생 때처럼 명절이면 고향을 가기 위해 버스를 탔던 시절도 있었습니다. 차가 많이 밀릴 때도 있고 화장실을 참느라 고생했던 적도 있지만 고향을 간다는 설렘이 참 좋았습니다. 반대로 다시 집을 떠나 탄 버스 안에서는 괜스레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습니다.


들춰보니 다 쓰지 못할 정도로 소소한 추억이 많습니다. 이제 탈 일이 거의 없지만 고속버스에서만 맡을 수 있는 냄새나 분위기에 많이 익숙해졌기에 쉽게 잊히지 않을 것 같습니다.




모두들 즐거운 명절 보내시고,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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