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들 중에 누가 제일 좋은지랑 그 이유가 뭔지 알려줘." 라며 친구가 보낸 편지를 읽다 피식 웃음이 났다.
친구의 물음에 나는 뭐라고 대답했을지 궁금했는데 또 다른 편지에 "너는 왜 다 좋으니?"라고 물어온 걸 보니 다 좋다고 답장을 한 모양이었다.
같은 친구가 써준 다른 편지를 펼치자 두 번째로 좋아하는 너에게 라며 대놓고 고백을 해 놓았다. 첫 번째로 좋아하는 친구가 내가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었다.
햇살이 너무 뜨거워 산책을 포기하고 다락방에서 편지를 꺼냈다. 수많은 편지가 들어있는 자루는 보물상자를 열어 볼 때처럼 늘 설렘을 주었다. 자루 안에 이제껏 받은 편지들이 모두 있었다. 수많은 편지들 중에서 봉투 없이 대충 네모로 접어 놓거나 귀퉁이가 조금씩 찢겨 나간 편지들을 먼저 집는다.
제일 오래되었지만 연필로 쓴 글씨조차 선명하게 남아있는 초등학생 때의 편지였다. 편지 내용은 편지지만큼이나 다양했다. 싸웠던 건지 화해하자는 내용도 있었고, 빌린 돈 몇백 원을 갚으며 정성스럽게 쓴 편지, 시험을 잘 봤는지 물어보는 편지도 있었다.
크리스마스 때마다 받았던 카드와 방학 때마다 숙제는 다했는지 아픈 곳은 없는지 안부를 묻는 편지를 읽고 나자 마음이 훈훈해졌다. 편지마다 '사랑하는 누구에게' 혹은 '너를 사랑하는 누구가'라면서 써놓은 친구가 있었는데 꼭 의무적으로 한 것 같아 귀여웠다. 나도 그 친구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적었으려나? 친구들한테 보낸 편지 내용이 궁금해졌다.
어린 시절에는 편지지를 고르는 것도 하나의 큰 재미였다. 크리스마스 카드를 사는 것도 연례행사였는데, 문구점으로 카드를 사러 가면 예쁜 게 너무 많아 무엇을 살까 한참을 고민했었다. 물론 요즘에도 마음에 드는 편지지나 카드는 지나치지 않고 사는 편이었다. 쓸 일은 없지만 모으는 게 좋아서였다.
삼, 사 년 전쯤에는 친구 두 명과 크리스마스에 카드를 주고받자고 약속을 한 적이 있었다. 카드를 우편으로 보내고, 나도 친구들의 카드를 기다렸다. 우편함에서 카드를 발견했을 때의 그 설렘이란! 사실, 기대를 많이 해서인지 내용은 약간 실망스러웠다. 편지 쓰는 법을 잊어버린 게 아닐까, 인사말을 포함해 네, 다섯 줄로 끝이난 편지는 어딘지 싱거웠다.
혼자만 편지라는 추억과 낭만에 빠진 거였고, 친구들은 재미로 응한 것이지 큰 의미를 두지는 않은 거였다. 그다음 크리스마스에 친구들 몰래 카드를 보낼까 하다 말았다.
요즘 들어 자주 나 혼자만 잊지 못하고 사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옛날 사람이 되고 싶은 사람처럼 새것과 새로운 것에는 흥미가 잘 안 생겼다. 마음에 새겨진 것들이 희미해지지 않고 더 진해져서 자리를 내주지 않았다.
내가 정체되어 있는 거라면, 곁에 미래를 같이 꿈꿀 사람이 아니라 추억을 회상할 사람만 있어 그런 거라는 생각이 들면 불쑥 살아가는데 자신이 없어지고 마음은 낡은 것만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