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산책"

봄과 여름 사이

by 샹송

계절이 바뀌고 풍경이 달라짐에 따라 산책을 하는 시간과 장소에 변화가 생겼다. 산과 들은 울창해졌고 좋은 공기를 만들어냈지만 그 공기를 맡으려는 건 나뿐만이 아니었다. 며칠 전 뒷산 오솔길을 걷다가 만나고 싶지 않은 것을 만났다. 설마 없겠지, 두리번거리며 걷다 조금 앞서 있는 새끼 뱀을 마주쳤다.


바로 그 자리에서 멈춰 서자 뱀은 멈칫하더니 원래 있던 곳에서 건너편으로 빠르게 기어갔다. 그제야 나도 계속 길을 가려는데 뱀이 제자리에서 주시하듯 바라보고 있었다. 그 눈이 정확하게 나를 보고 있다는 게 소름이 끼쳐 그만 발길을 돌리고 말았다.


강가에도 풀들이 많이 자라나, 강을 따라 걷던 산책로 역시 풀들이 무성해졌고 걸으면서도 땅에서 뭐가 나오지는 않을까 신경이 쓰였다. 강으로 산책을 가던 것도 그만두었다.


게다가 한 여름이 오기도 전 너무 뜨거운 햇살에 낮 산책을 제대로 즐길 수 없었다. 봄은 너무 짧고 하고 싶은 것은 많았다.


어느 날, 저녁을 많이 먹어서 소화를 시킬 생각으로 산책을 나갔다. 그러다 기대하지 않았던 고즈넉한 밤의 분위기에 단숨에 음을 빼앗겼다. 왜 지금까지 안 하고 있었나 싶어 밤 산책을 하루 일과에 추가하게 되었다.


밤 산책은 늘 같은 길이었고 최종 목적지도 같았다. 집을 나서서 마을 뒤쪽으로 난 오르막길을 올라, 밭과 무덤가를 지나면 마을에서 가장 큰 나무가 있는 고개가 나왔다. 낮에는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주는 안락한 장소였는데 밤에 보니 전체적인 나무의 모습은 으스스했다. 거기에 바람이 불어 나뭇잎들이 흔들리면 마치 유령의 집처럼 보이기도 했고.


그래도 나무 아래에 가로등 하나가 불을 환하게 밝히고 있었다. 그 가로등 불빛 아래에 서서 올 사람도 없는데 기다리는 마음이 되어본다. 바람이 불면 가슴에 무엇인가 차올랐다가 금세 사라져 버린다. 아마도 설렘이겠지. 언제고 이런 밤에 연인의 손을 꼭 붙잡고 산책을 해봤으면 좋겠다.



다시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귀신이나 짐승보다 사람을 마주칠까 더 조마조마했다. 깜깜한데 뭐 하냐고 물어보면서 이상하게 볼 것도 같았다. 누가 묻거든 운동한다고 말하면 될 텐데 괜히 신경이 쓰였다.


길에서 동네 분들을 마주하면 투명인간이 되고 싶을 때가 많았다. 겉으로는 웃고 있어도 속으로는 일도 안 하고 노는 나를 한심하게 보는 것은 아닐까 싶었다. 실제로는 다들 큰 관심도 없을 텐데 혼자서 별별 걱정을 다하고 있다.


살면서 했던 많은 걱정들이 내 삶을 조금이라도 더 낫게 만들었다면 억울하진 않을 텐데. 더 편하고 온전하게 좋은 것들을 느끼기 위해서 걱정 줄이는 연습을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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