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에도 크리스마스날은 왔다. 크리스마스를 홀로 보낸 적이 대부분이었지만 이상하게 설레었던 날로만 기억되어 있다. 서른이 채 되기도 전에 벌써 생일에는 무뎌졌지만 크리스마스는 그래 지지가 않아서 참으로 신기할 따름이다.
사실 어린 시절부터 크리스마스는 특별할 게 없는 날이었다. 반짝이는 트리는 물론 트리 아래 알록달록한 포장지로 싸인 선물 상자도 신나는 캐럴도 없었다. 그저 텔레비전에서 해주는 특선 영화 같은 것을 보면서 얼핏 크리스마스란 저런 거구나 하고 알고만 있었다. 우리 집만 그랬다면 슬펐겠지만 동네의 다른 친구들도 다 마찬가지라 속상한 마음은 없었다.
크리스마스에도 동네 풍경은 다른 날과 같았다. 어느 집에서도 트리를 꾸미지 않았으며, 문 앞에 겨우살이를 걸어 놓은 집도, 전구를 매달아 놓아 반짝이는 집도 없었다. 크리스마스인걸 아는 것도 관심을 두는 것도 나뿐인 듯했다.
그런 심심한 하루가 흘러가고 저녁이 되었다. 그제야 나는 하루 중 가장 크리스마스 다운 시간을 보내기 위해 양말 한 켤레를 꺼내 들었다. 내가 크리스마스 양말이라고 부르는 귀여운 펭귄 양말이었다. 산타 모자를 쓰고 있는 펭귄에 색깔까지 빨간색이라 크리스마스에 참 잘 어울렸다.
몇 년 전 자주 가는 스파 브랜드에서 그 양말을 사놓고는 해지는 게 아까워 가지고만 있었다. 그러다가 재작년에 트리 하나가 수놓아진 양말 한 켤레를 샀고, 그래서 그것은 두 번째 크리스마스 양말이 되었다. 그렇게 두 번째가 생기고 나서야 아꼈던 것을 꺼내 신을 마음이 생긴 것이다.
양말을 신고 나서 앙증맞은 펭귄들을 한 마리, 두 마리 손으로 짚어가며 귀엽다는 말을 해주었다. 몇 천 원짜리 양말 한 켤레에 소중하고 아끼는 마음을 가질 수 있다는 게 참 간단해서 좋았다.
양말을 신고 불을 끄고 침대에 달린 조명을 켰다. 아늑하고 따듯해진 분위기에서 한 일은 좋아하는 영화와 시트콤을 보는 것. 주로 크리스마스에 어울리는 내용들이었다. 몇 번이나 봤기에 다 아는 내용이지만 안 보고 지나가면 아쉽고 허전했기에.
한창 버킷리스트가 유행했던 당시 "해외에서 크리스마스 보내기"를 목록에 적어 놓았었다. 수많은 해외 영화 속에서 그려지는 크리스마스의 분위기가 너무 동화 같고 예뻤다. 화려하게 장식된 건물과 대형 트리, 볼거리 가득한 크리스마스 마켓에 장난감 가게까지. 죽기 전에 한 번은 크리스마스를 해외에서 보낼 날이 오지 않을까 기대하며 다음 크리스마스를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