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림을 배우다."

겨울과 봄 사이

by 샹송

아직 추운 이월, 땅도 얼었는데 엄마가 별안간 나승개를 캐러 가자며 채비를 했다.


-나승개? 그게 뭐야?

-냉이.

-냉이를 벌써 캐?


당연히 냉이는 삼월이나 되어서 캐는 줄 알고 있었다. 냉이를 봄나물로 알고 있었고, 기억이 조작된 게 아니라면 어린 시절 동네 친구들과 같이 냉이와 쑥을 캐러 다녔을 때는 분명 봄날이었다.


-지금 캐서 먹는 냉이가 맛있어.


엄마는 그렇게 말하며 검은색 비닐봉지와 호미 하나를 챙겼다. 그런 엄마를 따라나서면서 아직 날이 추운데 냉이가 있나 하고 의심이 들었다.


우리는 집을 나서서 마을 뒤쪽에 넓은 들판으로 갔다. 밭이었던 것 같은 그곳에는 정말 냉이가 많았다. 엄마가 캐면 나는 곁에서 뿌리에 달린 흙을 털어 챙겨 온 비닐봉지에 넣었다. 그러다 틈이나서 검색을 해보니 냉이는 가을부터 초봄까지 채취한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사실은 그 뿐 아니라 새롭게 알게 된 것들이 많았다. 감자는 감자를 심어야 나고, 고구마나 마늘 역시 그해 수확을 하면 종자를 따로 챙겨놓았다가 심는 것이었다. 여태 그것들을 먹어오면서도 씨를 뿌려서 키운다는 막연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삼월이 되면 모든 작물들을 한꺼번에 심고 가을이면 또 한꺼번에 다 수확하는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마늘 파종은 봄이 아니라 가을 끝자락에 했고 감자는 삼월에 심었고, 고추는 사월 말, 고구마는 오월 중순쯤이 되어서야 심었다. 그리고 심은 순서대로 서서히 수확을 했다. 알고 나니 그제야 다 당연한 것 같았다.


어느날 밭에서 아직 아무것도 열리지 않은 나무 하나를 보고 있었다. 그 나무는 대추나무였는데, 매년 가을 무렵 엄마가 택배로 보내줬던 대추는 너무 달달해서 내가 좋아하는 간식 중 하나였다. 그런 대추가 열리는 나무를 알아보지 못하고 엄마한테 이게 무슨 나무냐고 물었다가 살짝 면박을 당했다. 엄마는 그 나이 먹도록 대추나무가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르냐며 괜히 나무랐다. 엄마가 한 말의 뜻이 과연 그게 다였을까? 나는 아니라고 본다.


그리고 위의 것들과는 다른 종류의 배움도 있었다. 살다 보면 언니와 오빠에 대한 존재를 잘 인식 못할 때가 많았는데 그러다 한 번씩 " 맞다, 나 언니랑 오빠가 있었지. 우리 집에서는 내가 막내고." 그런 새삼스러운 생각이 들고는 했었다.


그날 아침에도 홀로 밥을 먹고 있었다. 겨울이 끝나가면서 부모님과 기상 시간이 거의 한, 두 시간씩 차이가 났기 때문이다. 그렇게 홀로 아침을 먹는데 갑자기 언니, 오빠랑 한 집에 살았던 시절이 낯설게 다가왔다. 우리 삼 남매가 한 밥상에서 밥을 먹고 옹기종기 모여 앉아 텔레비전을 보던 시절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다른 이의 기억 속을 더듬 듯 그 추억들이 아주 희미하게만 남아있던 것이다.


나도 이런데 부모님은 어땠을까? 비어있는 방을 볼때나 둘이서만 마주 앉아서 밥을 먹을 때 얼마나 마음이 허했을까 싶었다. 자식들이 집에 오는것이 얼마나 반가울까 이해가 갔다. 그리고 언제부턴가 나 역시 언니네나 오빠가 온다고 하면 자연스레 기다려졌다. 사정이 생겨서 못 온다고 하면 아쉬운 기분을 느끼면서 기다리는 사람이 되어 버린 것이다.











keyword
이전 03화"크리스마스와 펭귄 양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