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이 되자 밭이 풍성해졌다. 가장 고된 일은 고추를 수확하는 것이었다. 사월 말 심었던 어린 모종들은 어느새 허리만큼 자라 열매를 맺고 빨갛게 익어가고 있었다.
낮에는 너무 더워서 하루 중에 그나마 덥지 않은 새벽이나 해가 질 무렵에 고추를 땄다. 행여 비소식이라도 있으면 비가 오기 전에 익은 것들을 다 따기 위해 한낮에도 일을 해야 했다. 그럴 때는 선크림이 다 지워질 정도로 땀을 흘렸다.
고추밭 아래에는 가지와 오이 나무가 있었다. 사과밭 한쪽에는 애호박과 방울토마토, 참외가 열렸고 비닐하우스에서는 수박이 익어가고 있었다. 나는 삼, 사일에 한 번씩 바구니를 들고 밭에 가서 가득 채워 집으로 돌아왔다. 주로 가지와 오이, 방울토마토를 따왔다.
엄마가 정성 들여 가꾼 농작물들이 내게 수확하는 즐거움으로 돌아왔다. 여기저기 뻗어 난 줄기에서 농작물을 하나씩 떼어내는 내 손길은 신중하고 조심스러웠다.
집에 채소들이 넘쳐나서 이웃들에게 나눠주거나 대부분은 식당을 하는 막내이모네에게 주었다. 과일 역시 사 먹지 않아도 될 만큼 많았는데, 특히 몇 그루 안 되는 나무에서 열린 복숭아는 파는 것보다 더 달아서 여름의 맛을 제대로 느끼게 해 주었다. 비닐하우스 안의 수박들이 하나둘 익어가자 먹어도 먹어도 끝이 없었다.
그 와중에 간혹 집에 오는 손님들이 수박이나 복숭아를 사가지고 왔다. 여름 내내 과일을 입에 달고 살았다.
여름 햇살 아래에서 무럭무럭 자라나는 농작물들이 기특했다. 뜨거운 햇살과 때로는 강한 비바람을 맞기도 했지만 쓰러지지 않았다. 부모님의 정성과 애정에 보답해 버텨내는 것들이 있어서 다행이었다. 흙을 밟고 있는 시간들이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