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감정이 아니라 기술이다

by 재리건아빠

우리는 사랑을 감정이라고 배웠다.


어느 날 갑자기 찾아와 가슴을 흔들고, 운명처럼 시작되었다가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식어버리는 것. 그래서 사랑이 사라졌다고 느끼는 순간, 우리는 이렇게 말한다. “마음이 변했어.” 마치 그것이 피할 수 없는 자연현상이라도 되는 것처럼.


그러나 에리히 프롬은 정반대의 말을 한다.

사랑은 감정이 아니라 기술이며, 기술인 이상 배워야 하고, 연습해야 하며, 무엇보다 훈련과 인내, 그리고 정신집중을 요구한다고.


이 문장을 처음 읽었을 때 나는 이상한 불편함을 느꼈다.

사랑이 왜 이렇게까지 고단한 일이 되어야 하지?

사랑이 기술이라면, 우리는 왜 아무도 제대로 가르쳐주지 않았을까?


훈련이라는 말이 불편한 이유


‘훈련’이라는 단어에는 묘한 거부감이 있다.

의무, 통제, 고통 같은 이미지가 먼저 떠오른다. 우리는 사랑을 자유롭고 자발적인 것으로 믿고 싶기 때문이다. 그러나 에리히 프롬이 말하는 훈련은 복종이나 억압이 아니다. 그것은 자기 의지의 표현이며, 나아가 훈련을 즐겁게 생각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사랑의 기술은 시작된다고 말한다.


생각해 보면, 우리가 진정으로 사랑하는 일에는 늘 훈련이 따른다.


좋아하는 악기를 연주하기 위해 매일 같은 음계를 반복하고, 사랑하는 일을 지속하기 위해 지루한 일상도 감내한다. 그런데 유독 인간을 사랑하는 일만은 “그냥 되기를” 바란다. 노력하지 않아도, 연습하지 않아도, 알아서 잘 흘러가기를 기대한다.


하지만 인간은 그렇게 단순한 존재가 아니다.

사랑은 언제나 타자와의 관계 속에서 이루어지고, 타자는 결코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세계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정말로 귀를 기울이고 있는가


에리히 프롬은 말한다.

타인과의 관계에서 정신을 집중시킨다는 것은 타인에게 귀를 기울일 수 있음을 의미한다고. 이 문장은 단순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매우 가혹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타인의 말을 듣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실은 듣는 동안 이미 머릿속에서는 다음 반박을 준비하고 있고, 자신의 경험을 대입하며 판단을 끝내버린다. 심지어 상대가 말을 마치기도 전에 조언을 꺼낸다. “그건 네가 이렇게 했어야지.”


그 순간 대화는 끝난다. 상대는 더 이상 말하지 않고, 듣는 사람은 설명할 기회를 잃는다.


프롬이 지적하듯, 진정으로 귀를 기울이지 않으면서 이루어지는 대화는 결국 모두를 피곤하게 한다. 말한 사람도, 들은 사람도 아무것도 얻지 못한 채 감정만 소모된다.


귀를 기울인다는 것은 생각보다 훨씬 어려운 일이다.


그것은 상대를 이해하기 전에 판단을 유예하는 능력, 그리고 내 이야기를 잠시 미뤄두는 절제력을 요구한다. 다시 말해, 사랑의 기술은 언제나 자기 중심성으로부터 한 발 물러서는 훈련에서 시작된다.


지금 여기에 머문다는 것


정신을 집중한다는 것은 또 무엇일까.


프롬은 이를 이렇게 정의한다. 현재에, 지금 여기에 완전하게 살고 있다는 것. 지금 무엇인가를 하고 있으면서 다음에 해야 할 일을 생각하지 않는 상태.


이 문장을 읽으며 나는 깨달았다.

우리가 사랑에 서툰 이유는 상대를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지금 이 순간에 제대로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누군가와 함께 있으면서도 우리는 끊임없이 다른 곳에 있다.

휴대전화 알림을 확인하고, 다음 약속을 계산하고, 오늘 못한 일을 떠올린다. 몸은 함께 있지만 마음은 늘 미래로 도망친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를 “함께 있음”이 아니라 “옆에 있음”으로 착각한다.


사랑은 항상 현재형이다. 과거의 추억이나 미래의 약속만으로 유지되지 않는다. 지금 이 순간, 상대 앞에 전부로 존재할 수 있을 때 사랑은 비로소 현실이 된다.


사랑은 성격의 문제다


프롬은 사랑을 관계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의 성격 구조의 문제로 본다.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은 특정한 대상을 잘 고르는 사람이 아니라, 사랑할 준비가 된 사람이다. 훈련과 인내, 집중을 삶의 태도로 삼은 사람이다.


그래서 사랑의 기술은 연애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아이를 대하는 태도, 동료를 대하는 말투, 낯선 사람을 바라보는 시선 속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사랑은 특별한 순간에만 작동하는 감정이 아니라, 일상의 방식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흔히 묻는다. “왜 사랑이 이렇게 어려울까?”

하지만 어쩌면 더 정확한 질문은 이것일지도 모른다.

“나는 지금, 제대로 훈련하고 있는가?”


사랑은 저절로 되지 않는다


사랑은 우연히 시작될 수는 있지만, 저절로 유지되지는 않는다.

사랑이 기술이라면, 우리는 실패할 수도 있고, 다시 연습할 수도 있다. 그리고 그 가능성은 오히려 위로가 된다. 사랑을 잃었다는 사실이 곧 사랑할 능력을 상실했다는 뜻은 아니기 때문이다.


오늘 하루, 누군가의 말을 끝까지 들어보는 것.

지금 하고 있는 일 하나에 온전히 집중해 보는 것.

다음 말을 준비하지 않고, 그저 상대 앞에 머무는 것.


에리히 프롬이 말한 사랑의 기술은 거창하지 않다. 다만 꾸준하고, 성실하며, 인내를 요구할 뿐이다. 그리고 어쩌면 사랑이란, 그 모든 훈련을 기꺼이 감내할 의지가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우리의 태도일지도 모른다.

작가의 이전글사랑의 기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