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을 ‘생산 도구’로 만들었던 시대

인간은 물건이 아니다

by 재리건아빠

역사를 들여다보면 인간이 인간을 얼마나 잔혹하게 대할 수 있는지 보여주는 장면들이 종종 등장한다.


그중에서도 충격을 주는 이야기 가운데 하나가 19세기 브라질 노예제와 관련된 한 인물의 이야기다.


Pata Seca, 본명 호케 조제 플로렌시우(Roque José Florêncio)라는 브라질 출신 남성 노예.



인터넷과 SNS를 통해 퍼지고 있는 이 남자의 이야기는 단순한 역사적 에피소드가 아니라, 노예제라는 제도가 인간의 몸과 삶을 어떻게 바라보았는지를 극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그는 브라질 농장에서 특별한 역할을 맡았던 노예였다. 여성 노예들과 강제로 성관계를 맺어 새로운 노예를 태어나게 하는 일을 강요받았다는 것이다. 오늘날의 관점에서 보면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이 이야기가 중요한 이유는 단순히 개인의 비극적인 삶 때문이 아니라 노예제가 인간을 어떤 방식으로 제도화하고 경제 시스템 속에 편입시켰는지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브라질은 왜 거대한 노예 사회가 되었을까


19세기 브라질은 세계에서 가장 큰 노예 사회 가운데 하나였다. 당시 브라질 경제의 중심에는 커피와 사탕수수 농장이 있었다. 이 농장들은 막대한 노동력을 필요로 했고, 그 노동력의 대부분은 아프리카에서 강제로 끌려온 노예들이었다.


브라질은 대서양 노예무역의 핵심 국가 중 하나였으며 수백만 명의 아프리카인이 브라질로 끌려왔다. 이들은 농장 노동, 광산 노동, 도시 노동 등 다양한 형태로 이용되었다. 노예는 단순한 노동자가 아니라 법적으로도 재산으로 취급되었다. 농장주는 노예를 사고팔 수 있었고, 심지어 담보로 제공하거나 상속 재산으로 남길 수도 있었다.


이러한 구조 속에서 인간의 삶은 철저히 경제적 가치로 환산되었다. 노동 능력은 물론이고 건강 상태와 나이까지 모두 가격으로 계산되었다. 인간이 인간을 소유하는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기준은 도덕이나 인권이 아니라 경제적 효율이었다.



노예무역 금지 이후 등장한 ‘새로운 방식’


1850년 브라질에서는 중요한 법이 제정된다. 바로 Eusébio de Queirós Law이다. 이 법은 대서양 노예무역을 공식적으로 금지하는 법이었다. 국제 사회의 압력과 내부 개혁 움직임 속에서 만들어진 이 법은 아프리카에서 새로운 노예를 들여오는 길을 막았다.


하지만 이 법이 곧바로 노예제를 끝낸 것은 아니었다. 브라질 경제는 여전히 농장 노동에 크게 의존하고 있었고 농장주들은 노동력을 유지할 방법을 찾아야 했다. 새로운 노예를 수입할 수 없다면 기존 노예들을 통해 노동력을 늘려야 했다.


이때 등장한 방식이 바로 노예의 출산을 통해 노동력을 유지하는 것이었다. 여성 노예는 아이를 낳는 존재로 관리되었고, 태어난 아이 역시 농장의 재산으로 등록되었다. 즉 인간은 단순히 노동하는 존재가 아니라 노동력을 계속 만들어내는 존재로 취급되기 시작한 것이다.


이러한 구조 속에서 파타 세카와 같은 이야기가 등장한다. 체격이 크고 건강한 남성 노예에게 여러 여성 노예들과 강제로 관계를 맺게 하여 새로운 노예를 태어나게 하는 방식이었다는 것이다. 물론 모든 농장에서 이런 방식이 체계적으로 운영되었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당시 노예의 결혼과 출산을 경제적 관점에서 관리했다는 기록들은 역사 문헌에도 남아 있다.



‘200명의 자녀’ 이야기의 진실


인터넷에서 퍼진 이야기에서는 파타 세카가 200명 이상의 자녀를 남겼다고 전해진다. 일부 이야기에서는 그 숫자가 더 많다고도 한다. 하지만 이 숫자가 정확한 기록은 없는 듯하다.


노예 사회에서는 개인의 삶이 체계적으로 기록되는 경우가 드물었다. 특히 노예의 가족 관계나 자녀 수는 공식 문서에 남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파타 세카의 자녀 수에 대한 구체적인 기록은 확인한다는 건 불가능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이야기가 계속 전해지는 이유는 단순한 숫자의 문제 때문이 아니다. 이 이야기는 노예제가 인간을 어떻게 바라보았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로 읽히기 때문이다.


노예 사회에서 인간의 몸은 개인의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농장주의 재산이었고 경제 시스템의 일부였다. 노동 능력뿐 아니라 생식 능력까지도 자산으로 취급되는 구조였다. 이런 사회에서는 인간의 삶이 철저히 경제적 계산 속에서 결정되었다.



브라질 노예제의 종말


브라질의 노예제는 1888년에 공식적으로 폐지된다. 바로 Lei Áurea이 공포되면서였다. 이 법은 단 두 조항으로 이루어진 짧은 법이었지만 그 의미는 매우 컸다. 수백 년 동안 이어진 노예 제도가 법적으로 끝난 것이다.


브라질은 아메리카 대륙에서 가장 마지막으로 노예제를 폐지한 나라였다. 미국이 1865년에 노예제를 폐지했고 쿠바도 1886년에 폐지했지만 브라질은 그보다 늦은 1888년에야 노예제를 끝냈다.


그러나 노예제의 폐지가 곧바로 평등한 사회를 의미하지는 않았다. 노예로 살아왔던 사람들은 교육도 재산도 없이 자유인이 되었다. 토지 개혁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고 많은 사람들은 여전히 가난 속에서 살아가야 했다.


그래서 브라질 사회에서는 지금까지도 노예제의 역사적 유산이 사회적 불평등과 인종 문제의 형태로 남아 있다는 분석이 많다.



이 이야기를 꺼낸 이유


파타 세카 이야기를 쓰고 있는 건 궁금증이나 흥미 때문만은 아니다. 이 이야기는 인간 사회가 얼마나 쉽게 잔혹한 제도를 정상적인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지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노예제 사회에서 중요한 질문은 이 제도가 옳은가가 아니었다. 그 사회가 던진 질문은 훨씬 단순했다. 이 제도가 얼마나 효율적인가였다. 경제적 효율이 인간의 존엄보다 앞서는 순간 사회는 놀라울 정도로 빠르게 잔혹해질 수 있다.


노예제는 바로 그 극단적인 사례였다. 인간을 재산으로 보고 인간의 몸을 노동 도구로 바라보는 사고가 사회 전체에서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역사 속 질문은 결국 현재로 돌아온다


오늘날 우리는 노예제를 명백한 악으로 판단한다. 하지만 조금 더 냉정하게 생각해 보면 노예제는 당시 사회에서 합법적인 제도였다. 법이 허용했고 경제 구조가 필요로 했으며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자연스러운 질서로 받아들였다.


그래서 노예제의 가장 무서운 점은 잔혹함 그 자체가 아니라 그 잔혹함이 정상적인 질서로 인식되었다는 사실이다.


역사를 돌아볼 때 우리는 종종 과거 사람들의 잔혹함을 비난한다. 그러나 더 중요한 질문은 따로 있다. 지금 우리가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제도와 관습 가운데 미래 세대가 보기에 이해하기 어려운 것들은 무엇일까 하는 질문이다.


그래서 파타 세카의 이야기는 단순한 역사적 일화가 아니다. 그것은 인간이 인간을 도구처럼 취급했던 시대의 구조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기록이다. 그리고 그 이야기는 우리에게 불편한 질문을 던진다.


인간 사회는 언제든지 생명을 경제적 가치로 환산하는 방향으로 흘러갈 수 있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역사를 읽는 일은 단순히 과거를 아는 일이 아니다. 그것은 현재 우리가 어떤 사회를 만들고 있는지 돌아보게 만드는 과정이기도 하다. 노예제의 시대는 끝났지만 인간의 존엄을 둘러싼 질문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동물권 논쟁과 닮은 구조


흥미로운 점은 이 구조가 오늘날 일부 논쟁과도 닮아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산업 축산 시스템에서 동물은 고기 생산, 우유생산, 번식 등의 역할로 분류된다.


즉 생명체가 하나의 생산 단위로 취급되는 구조다. 물론 인간과 동물의 문제를 동일하게 볼 수는 없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보면 인간 사회는 반복적으로 “생명을 도구로 보는 체계”를 만들어 왔다.



결론


제도는 인간을 어디까지 바꿀 수 있는가. 파타 세카의 이야기는 한 개인의 삶이 아니다. 그것은 제도가 인간을 어떻게 바꾸는지 보여주는 이야기다.


노예제 사회에서는 사람을 사고팔았고, 사람을 번식시켰고, 생산 도구로 사용했다. 그리고 그것이 정상적인 경제 활동으로 인정되었다.


그래서 역사를 돌아볼 때 중요한 질문은 이것이다.


“과거 사람들은 왜 그렇게 잔혹했을까?”가 아니라 “오늘의 우리는 무엇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는가?”라는 질문이다.


역사는 종종 먼 과거의 이야기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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