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살인자를 변호할 수 있을까?
열심히? 아니면… 최선을 다해서?
둘 다 아니다.
이 책은 살인자를 변호하는 방법에 대한 이야기다. 저자가 직접 수행한 사건들이라는데 모르고 보면 누가 봐도 픽션이다.
이 책의 저자는 1994년부터 독일 베를린에서 형사전문변호사로 활동했던 사람이다. 변호사가 쓴 책이라 그런지 문장이 직설적이고 튀지 않으며 호소력이 있다.
책에는 11명의 범죄자들의 인생이 담겨 있다. 모두 저자의 의뢰인이다. 그리고 11건의 수사 및 재판과정이 책의 내용을 이룬다. ‘페너', '타나타의 찻잔', '첼로, '고슴도치', '행운', '서머타임', '정당방어', '녹색', '가시', ' 사랑', ’ 에티오피아 남자'. 저자는 이 11개의 사건들에 각각 이름을 붙였다. 이 글에서는 2개의 사건만 정리해 본다.
페너 사건
주변 사람들의 존경을 한 몸에 받아온 의사인 페너는 40년의 결혼생활 끝에 아내를 도끼로 내리쳤다. 범행 도구인 도끼는 스웨덴에서 만든 수제 도끼이고, 날이 선 도끼의 일격에 두개골은 반쪽이 났다. 페너는 이에 그치지 않고 아내의 머리, 몸통, 팔, 다리를 토막 냈다. 피 묻은 옷을 갈아입은 페너는 현장을 그대로 둔 채 경찰에 신고(자수)하였다. 검사는 피고인 페너에게 8년의 실형을 구형했다.
이 사건에서는 정신감정이 이루어졌다. 정신과 의사는 페너의 범행 당시 상태가 오랫동안 억눌러왔던 아내에 대한 분노가 폭발한 것이라고 평가했고 재판부도 페너가 심신 미약 상태에 있었다고 본 것 같다. 나흘에 걸쳐 열린 재판 끝에 페너에게는 3년의 실형이 선고되었다.
실제 발생했던 사건이라는 것도 충격적이지만, 페너의 범행 동기가 더욱 충격이었다. 페너는 결혼 전 아내에게 절대 떠나지 않겠다고 약속했는데 이 약속을 지키기 위해 이혼을 생각하지 않았고, 아내에게 느꼈던 분노를 40년간 참아왔다는 것이다.
저자는 페너가 약속의 포로였고 약속을 지키기 위해 참아왔던 분노가 폭발한 것이라고 말했다.
내가 특히 흥미롭게 봤던 부분은 두 가지다. 하나는 독일의 형사재판에서는 증인이 선서를 하지 않는다는 것, 또 하나는 독일은 실형을 선고하면서도 직업을 가지는 조건으로 하루 일과를 보낸 뒤 구치소 또는 교도소에서 잠을 자도록 하는 제도가 있다는 것.
무엇을 시사하는지 한 번 생각해 보자.
증인이 선서를 했다고 해서 거짓말을 하지 않을 것이라 믿는 법관은 없다는 인식. 이건 정말 합리적이다. 그리고 실형을 선고하면서도 ㅁ 주중에 직업활동을 허용하는 제도. 이 제도의 혜택을 받으려면 어떤 조건이 필요할지 모르겠지만 이것 역시 합리적이다. 돈을 벌게 해서 가족들을 부양하게 하고, 세금도 걷고(?). 재범 가능성이 낮다고 판단되는 사람이라면 야간과 주말, 공휴일에 감금하는 것으로도 충분히 뉘우치게 할 수 있지 않을까.
에티오피아 남자 사건
태어나자마자 버려졌고 줄곧 따돌림을 받으며 자란 빨강 머리의 남자 미할카는 군대에 다녀온 후 독일 함부르크의 환락가에서 창녀의 잔심부름을 도맡는 하인이 되었다. 그곳에서 포주, 사채업자, 마약중독자, 폭력배 사이에서 버텨오다 다른 나라로 떠나기 위해 은행 강도가 되었다. 미할카는 창녀에게 스타킹을 빌려 뒤집어쓰고 장난감 권총을 들고 은행 여직원을 위협하여 1만 2천 마르크를 챙겼다. 다행히(?) 강도 범행은 성공하였고 미할카는 행선지를 에티오피아로 정하고 비행기에 탑승했다.
무사히 에티오피아에 도착하였지만 그곳의 최악의 위생상태 탓에 발진티푸스에 걸렸고, 모기에 물려 말라리아에 걸렸다. 자살을 결심했지만 이마저도 쉽지 않았다.
사경을 헤매던 미할카는 우연히 운명의 여자를 만나 가정을 이루게 되었다. 그리고 커피 농장에 취직하여 동료들로부터 인정받는 일꾼이 되었다. 미할카의 노력 덕분에 커피 농장의 생산량은 급증하였고, 이로 인해 미할카는 꽤 유명한 사람이 되었다. 하지만 미할카는 불법 체류자였고 독일에서의 범행이 발각되어 독일로 강제송환되었다. 미할카는 독일에서 첫 번째 강도 범행으로 재판을 받게 되었으며 3년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이후 미할카는 수형생활 중 모범수로 인정받아 감시가 없는 외출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외출을 한 미할카는 아내와 딸이 너무 보고 싶었다. 에티오피아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던 나머지 결국 다시 은행 강도가 되기로 결심하였다. 두 번째 범행은 아쉽게(?) 실패했고 미할카에 대한 형사재판이 시작되었다.
이 사건에서도 정신감정이 이루어졌고 정신과 의사는 미할카가 자신의 행동을 제어하는 능력에 문제가 있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그리고 미할카의 변호인인 저자는 심리학자를 법정에 출석하게 하여 미할카의 지나온 인생을 설명하게 하였다.
검사는 피고인인 미할카를 둘러싼 이야기는 모두 소설에서나 나올 법한 상상이라고 하며 9년의 실형을 구형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미할카에게 2년의 실형을 선고하였다. 이후 미할카는 형기 절반을 채우고 가석방되었고 미할카의 재판을 담당한 판사와 배심원들은 미할카가 에티오피아로 돌아갈 수 있는 경비를 마련해 주었다.
저자는 누구든지 미할카와 같은 처지에 있었다면 같은 행동을 했을 것이라 강조했다. 과연 그럴까.
마지막으로 와닿았던 문구 기록한다.
#앞뒤가 맞지 않는 어처구니없는 이야기일수록 진실이라는 것과 아주 그럴싸한 주장일수록 사기에 가깝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