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도 내 모습이야

잊을 수 없는 의뢰인

by 재리건아빠

요즘 마약 때문에 핫해진 유명배우. 덕분에 옛 기억 소환한다. 이 배우가 출연했던 ‘화차‘라는 영화는 아래의 일을 겪기 전까진 접해본 적 없는 작품이다. 그런데 영화 줄거리는 아래 등장하는 여성을 염두에 둔 거 같다.


1. 상 담


사무장님이 갑자기 방으로 들어와 급하게 사건 의뢰를 하고 싶어 하는 여성분이 찾아왔다고 하셨다. 무슨 일인지 물어보니 16억 정도 투자를 받았다가 사기로 고소를 당한 거 같다고 하신다. 최대한 빨리 상담하고 작성 중이던 서면마저 써야겠다는 생각 했다.


의뢰인이 들어왔다. 크고 동그란 안경테를 쓴, 너무 나 착한 이미지의 젊은 여성분이었다. 소파에 앉더니 명품지갑과 수입 자동차 키를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얼굴은 잔뜩 겁에 질려 있었다. 사랑하는 남편과 아이가 있다고 하면서 제발 살려달라고 애원부터 했다.


의뢰인을 진정시키고 무슨 일로 여기까지 오게 되었는지부터 설명해 보라고 했다.


2. 의뢰인의 인생사


의뢰인은 중고등학교 학창 시절을 회상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되면 상담은 최소 2시간이다. 식겁했지만 의연한 태도로 의뢰인을 진정시키고 사건에 관해서만 설명을 해달라고 했다. 그랬더니 사건은 학창 시절부터 시작한다고 말했다. 결국, 다른 일은 제쳐두고 의뢰인의 말을 들어보기로 했다.


의뢰인은 어릴 적부터 집이 너무 가난해서 친구들로부터 무시를 당하고 살았기에 가난이 죽는 것보다 싫었다. 돈을 벌기 위해서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았고 어렵게 번 돈은 모두 옷과 가방을 사는 데 사용했다. 그래야만 좋아하는 친구들과 가까이 지낼 수 있었다.


그런데 대학 진학 후 만난 친구들은 달랐다. 의뢰인을 무시하는 사람은 없었고, 다들 밝고 활발한 의뢰인을 좋아했다. 대학에서 만난 사람들은 모두 의뢰인의 집안 사정을 몰랐다. 의뢰인은 점점 당당해졌다. 부모님의 직업과 경제적 능력을 과대포장 했고 친구들 사이에서는 선망의 대상이 되었다. 엄청난 재력가 집안 자제임에도 재테크 공부를 게을리하지 않고 항상 근검절약하는 개념 있는 학생이었다.


그리고 대학 졸업 후 의뢰인은 금융 분야 공공기관 인턴십을 지원했다. 약 6개월가량 인턴 생활을 하고 백수가 되었지만, 친구들에게는 공공기관 정직원으로 정식채용되었다고 말했다. 그리고 얼마 후 의뢰인을 가장 따르는 친구 중 한 명이 의뢰인에게 건실한 남자를 소개해주었다. 의뢰인은 그 남자와 결혼했고 신혼집은 최고급 부촌에 있는 수십억에 달하는 단독주택으로 마련했다. 신혼집은 의뢰인이 준비한 것이다.


의뢰인은 어느덧 두 아이의 엄마가 되었고 아이들은 최고급 사설 보육기관에 보냈다. 그리고 거의 매일 키즈카페에 들러 동네 사람들과 친분을 쌓아갔다. 잔정이 많아 지인들의 생일은 물론 경조사도 빼먹지 않고 챙겼다. 동네 사람들에게는, 부모님은 외국에서 교수와 사업가로 일찍이 성공하셨고, 남편은 국내 굴지의 대기업에 다니는 직장인으로 소개했다. 그리고 본인은 금융기관 정직원으로 일하고 있고 주식이 전문 분야라고 설명했다.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의뢰인의 부모님은 평생 국내에서 일해오신 평범한 분들이고, 남편은 의뢰인이 말했던 대기업의 소규모 계열사에서 근무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의뢰인은 직장을 다니고 있지 않았다.


의뢰인은 주변 사람들에게 남편이 근무하는 대기업에서 공모하는 우리 사주가 가장 유망한 투자처라고 설명했다. 우리 사주를 배정받은 후 보호예수가 풀리면 매도 시 상당한 시세차익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의뢰인의 지인들은 의뢰인의 말을 믿었다. 부촌에 살던 사람들이라 그런지 선뜻 의뢰인에게 거액의 투자금을 건넸다. 의뢰인이 알아서 잘 처리해 주겠다고 했으니 약정서는 굳이 필요하지 않았다.


의뢰인이 받은 투자금 중 일부는 실제 우리 사주 배정을 받을 용도로 쓰였다. 그러나 우리 사주를 배정받는 사람은 남편이 아닌 실제 그 대기업 사원인 또 다른 지인. 한 사람이 우리 사주를 배정받을 수 있는 물량은 한정되어 있다 보니 투자받은 돈을 모두 투입할 수 없었다. 남은 투자금 중 일부는 먼저 투자한 사람들에게 수익금 명목으로 인출되었다.


사실 의뢰인이 거주하고 있던 집은 자가가 아니었다. 남편의 월수입은 주거비의 절반에도 미치지 않았다. 남은 투자금은 의뢰인 가족의 초호화 생활에 투입되었다고 보는 것이 맞겠다.


이 상황이 영원할 리 없다. 더는 투자자들에게 수익 금을 줄 돈이 없던 의뢰인은 다른 지인들에게 돈을 빌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의뢰인에게 그 많은 돈을 빌려줄 사람은 없었다. 얼마 후 투자자였던 키즈카페 사장님이 의뢰인과 남편을 고소했고 동네에는 소문이 퍼지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때까지도 남편은 아내의 투자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다.


3. 수사와 재판


의뢰인의 사건은 담당 검사님이 직접 수사를 했던 것 같다. 사정상 의뢰인의 조사과정에는 참여하지 못했는데 검사님이 의뢰인에게 했다는 말을 들어보니 의뢰인이 왜 그렇게 겁에 질려 있었는지 알 수 있었다. 무서운 검사님은 의뢰인을 바로 구속하려다가 피해자들과 합의를 할 수 있는 시간을 주신 모양이다. 의뢰인이 구속을 피하기 위해서는 피해자들과의 합의가 최우선이었다


사건을 수임하고 난 후 피해자들에게 직접 연락을 하며 합의안을 제시했다. 그리고 의뢰인과 거의 매일 통화하고 상담하면서 피해 상황을 정리했고, 궁지에 몰린 의뢰인을 다독이며 끝까지 최선을 다해 피해배상을 해보자고 했다. 다행히 합의서 1장은 받을 수 있었고 즉시 검사님께 제출했다. 의뢰인은 정말 최선을 다했다. 의뢰인을 둘러싼 모든 사람이 하나같이 의뢰인에게 해결책을 내어놓으라 재촉했지만, 의뢰인에게는 다시 사기를 치는 것 말고 더는 방법이 없었다.


검사님은 의뢰인을 불구속 상태로 기소했다. 그리고 공판기일이 지정되었다. 며칠 뒤 열릴 재판을 준비하면서 법원에 제출할 변호인 의견서를 정리하던 중 의뢰인의 남편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4. 불길함


다급한 목소리의 남편은 아내와 연락이 되지 않는다면서 아내의 휴대전화가 최종적으로 확인되는 위치는 00시에 있는 호숫가라고 말해줬다. 우선 실종신고를 해두었고 아내와 연락이 되면 즉시 연락을 주겠다고 해서 일단 전화를 끊고 기다렸다.


이틀 뒤 젊은 남녀가 00시 소재 펜션에서 동반 자살했다는 뉴스 속보가 떴다. 불길했지만 아니길 빌었다. 속보가 이어지며 드러난 정황들은 점점 의뢰인을 가리키고 있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의뢰인의 유서가 발견되었다.


며칠 후 나는 공판기일에 출석해서 의뢰인의 사망을 증빙하는 자료를 제출했다. “피고인이 사망하였습니다."라는 진술을 듣던 검사님과 판사님도 적잖이 당황했을 것 같다. 재판장님은 잠시 침묵하시다가 그 자리에서 공소기각 결정을 선고했다. 그리고 의뢰인의 남편을 만나 상속 포기 절차를 안내해 주었다. 남편은 한참을 울었다.


5. 한숨


그리고 얼마 후 누군가의 제보로 의뢰인의 이야기가 한 지상파 프로그램에 공개되었다. 제작진은 의뢰인을 너무 이상하게 표현했다. 유튜버들이 조회 수 늘릴 요량으로 재탕해서 써먹기 딱 좋게 편집해 놨다. 당시 제작진이 사무실로 찾아와 인터뷰를 요청하기도 했다. 뭐라고 말했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아무튼 그때가 내 생에 첫 언론 인터뷰였다. 의뢰인의 처지에서, 아닌 부분은 아니라고 말해보고 싶었지만 나 역시도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이야기해야 할지 몰라서 별 얘기를 하지 못했다.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해할 수도 없는 그 의뢰인을 아직도 잊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