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로펌 이야기
많은 기업, 특히 아직은 규모가 크지 않은 스타트업의 대표분들과 이야기를 하다 보면 대부분의 경우 법률자문의 필요성과 변호사 비용에 대한 적절성에 대한 가치관의 충돌 때문에 많은 고민들을 하시는 것을 본다. 규모가 꽤 되는 기업의 대표분인데도 법률자문은 계륵과 같다는 표현을 하실 정도로 당장 필요한 것 같지도 않고 자문의 결과가 그다지 도움이 되지도 않는 것 같긴 하나 그렇다고 아예 자문을 안 받자니 불안하기도 하고 뭔가 찝찝한 그런 존재와 같다고나 할까?
매년 수십만 불, 수백만 불의 법률비용을 사용하는데 큰 부담이 없는 대기업들이 아니고서야, 그리고 지금 당장 소송을 지면 회사의 존재 자체가 위태로운 상황이 있는 것이 아니고서야 대부분의 기업들에겐 법률자문 비용이란 것은 마치 구독은 했지만 한 달에 한 두편 볼까 말까한 OTT 구독료와 같은 존재가 아닐 수 없다. 그렇다고 당장 구독을 끊어버리자니 심심할 때 한 두편씩 부담없이 검색해서 손 쉽게 찾아보던 드라마나 영화를 못 보는 것이 가끔 아쉬울 때가 있을 것 같기도 하고..
정말 중요한 소송에서 완전 승소를 한 경우가 아니고서는 거의 대부분의 경우에 본전 생각이 나지 않는 법률비용이란 것은 없을 것 같다. 실제로 승소를 하더라도 그 중 상당수는 막상 이기고 나면 "솔직히 변호사가 한 거라곤 내가 주는 자료들 정리한 거랑 서류 몇개 글 써준게 다지 뭐. 어차피 법리적으로 내가 이길 사건이었는데 괜히 변호사 비용만 많이 들였네.."라는 아쉬운 생각이 들기도 한다. 중요한 계약을 성공적으로 클로징하고 나서도 어차피 비즈니스 관계에서 다 얘기가 잘 되어 있는거 계약서에 문구 좀 만들어 놓고 계약서 검토 비용이랍시고 변호사들이 몇 천불, 몇 만불씩 청구하는 거 보면 속에서 열불이 나기도 하고..
지극히 다 정상적인 생각이다. 필자가 변호사라서 변호사의 입장을 대변하면서 "위 비용들은 다 정당한 것입니다!"라는 주장을 하려는 생각은 전혀 없다. 하물며 필자도 비슷한 생각을 다른 변호사 내지 다른 전문가들을 대상으로 하곤 하니까. 다만 위 비용이 과연 뭘 위한 비용이고 어떻게 접근해야 조금은 덜 아까운(?) 법률비용이 될 수 있을지에 대한 소비자(고객) 입장에서의 생각은 한번 다시 해볼 필요는 있겠다는 생각으로 글을 써보려고 한다.
변호사 비용은 어떠한 결과물에 대한 비용이라기 보단 그 변호사가 나를 대신하여 내 회사에 대한 걱정을 해주는 걱정대리 비용이라 생각하면 마음이 편하다.
물론 한 기업의 대표보다 그 기업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하는 사람은 없다. 자다가도 회사 생각에 갑자기 눈이 떠지기도 하고, 자려고 누웠다가도 갑자기 책상 앞에 앉아 급하게 이메일을 쓰는 사람은 그 회사의 대표 말고는 거의 없다고 봐야 한다. 아무리 높은 연봉을 받고 있는 그 회사의 임직원이라 하더라도 그들의 고민의 무게가 그 회사의 대표가 가진 그것의 무게를 능가할 수는 없다.
변호사는 그 대표가 가진 고민의 무게를 조금이나마 덜어주기 위하여 옆에서 도와주는 사람 중에 하나이다. 사람이 고민을 할 수 있는 뇌의 용량은 제한적이어서 대표가 가진 고민의 무게가 줄어야 대표는 그 고민을 다른 쪽(서비스나 제품 개발 또는 후속 투자 유치 등)에 쓸 수 있다. 사실 변호사가 줄 수 있는 결과물이란 것이 거의 대부분 무형적이거나 심지어 그 결과가 A or B와 같이 뜬구름 잡는 내용일때도 많다. 도대체 이런 명확하지도 않고 애매한 무형적인 결과물을 만들려고 시간당 왜 수백불, 많게는 수천불의 비용을 써야하는 지 이해가 안가고 지나치게 비싸다는 생각이 들 법도 하다. 그건 그 변호사가 이 결과물을 내기까지, 예를 들어 이 계약서를 작성하는데 과연 물리적으로 몇 시간 몇 분을 썼을지의 관점에서 접근을 하면 더욱 그럴 수 밖에 없다.
우리는 가끔 비용을 내고 정신과 상담을 받기도 하고 진로상담 컨설팅을 받기도 하며 재미삼아 타로 점을 보기도 한다. 내가 내는 금전의 반대급부로 받는 것은 대부분 그들의 의견이나 생각의 전환을 유도하는 조언, 그리고 큰 의미없는 위로인 때도 많다. 내가 얻은 무형적인 반대급부가 사실 별 의미가 없을 수 있지만 그들이 나의 고민을 공유하고 그 짧은 2~30분의 시간만이라도 나를 대신하여 고민을 대신하여 준 그 행위 자체에 대하여 우리는 비용을 지불한다.
변호사의 비용에도 위 고민대리 비용이 어쩔 수 없이 들어갈 수 밖에 없다. 변호사가 고객을 위하여 계약서 조항을 수정하고 협상하는 그 1시간의 시간 안에는 변호사의 법률적 지식이나 경험, 노하우에 대한 가치도 물론 들어가겠지만, 적어도 그 1시간 동안은 변호사는 자기 자신의 개인적인 고민은 모두 제쳐두고 오직 고객을 위하여 그 고객의 고민을 대신하여 주는 사람이 된다. 변호사는 그 회사의 대표를 제외하고는 적어도 어떤 특정 시간 동안만큼은 그 회사의 누구보다도 그 회사에 대하여 가장 깊고 진지한 고민을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만약 "나의 고민의 가치는 금전적으로 따졌을 때 몇 천원, 몇 만원 수준 밖에 안돼" 라고 생각하는 대표가 있다면 그 사람은 딱 그 수준의 변호사 또는 전문가를 찾으면 된다. 또는 그 고민의 무게를 굳이 다른 사람들과 나눠가지려고 할 필요도 없다. 그 정도 낮은 가치의 고민이라면 타인의 의견이나 고민의 공유가 필요하기 보다는 직접 스스로 고민하고 해결하면 충분할 부분으로 보이며, 굳이 타인의 걱정대리 비용이 비싸네 마네 할 이유도 없다. 필자는 개인적으로 사주팔자를 본 적도 없고 딱히 역술인이 나의 고민의 무게를 줄여줄 것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기 때문에 역술인들의 서비스 비용(얼마인지도 잘 모르지만)에 대해서 그것이 적정하네 혹은 싸네 비싸네 할 이유가 전혀 없는 것과 같다.
특히 요즘은 셀프로 법인설립부터 등기까지 할 수 있도록 해주는 서비스뿐만 아니라 몇 가지의 정보만 입력하면 각종 계약서 템플릿을 자동적으로 완성해주는 서비스들이 많이 생겨났다. 내가 하는 고민의 깊이와 그 크기가 이와 같은 셀프 서비스 내지는 AI의 도움으로도 충분히 줄어들 수 있다는 믿음이 있다면 굳이 변호사에게 비싼 비용을 주면서까지 나의 고민을 나눠가질 것을 바랄 필요가 없다. 그런데 만약 위 서비스 만으로 내 마음속의 걱정이나 불안감이 완전히 해소되지 않는다면, 그 걱정과 불안감을 나눠가질 변호사를 찾아서 그 사람에게도 나의 스트레스를 나눈 것이기 때문에 그에 대한 비용이 포함되어 있다고 생각을 한다면 변호사 비용의 적절성과 합리성에 대한 생각이 조금은 바뀔 지도 모르겠다.
변호사는 평소에 꾸준히 물과 거름을 줘야 주인이 내뿜는 이산화탄소(걱정과 고민거리)를 조금 더 잘 흡수하는 식물 화분과 같다.
적당한 비유일지는 모르겠으나, (좋은) 변호사는 한 기업 안에서 그 대표(뿐만 아니라 다른 임직원들)의 수시로 뿜어내는 이산화탄소를 흡수하고 이를 다시 호흡할 수 있는 산소로 바꾸어줄 수 있는 식물과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물론 변호사가 사람이 생존하는데에 있어 필수적인 산소를 생성하는 그 정도로 중요하고 필수불가결한 존재라고 주장하는 것은 전혀 아니다. 방 안에 산소가 부족하면 꼭 식물을 가져다 놓아야만 하는 것이 아니라 창문을 열어서 환기를 시키는 등 다양한 방법은 있으니까..) 회사가 사업 과정 중에서 어쩔 수 없이 발생하는 유쾌하지만은 않은 고민들(폐기물)의 일부를 변호사가 흡수하여 다시 회사가 건강하게 사업을 영위할 수 있는 자양분으로 바꿔줄 수 있는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밀폐된 방안에 식물을 가져다 놓고 그냥 방치만 해놓아서 시들시들하진 식물에게 나중에 산소가 부족한데 왜 제 역할도 못하고 빨리 이산화탄소를 산소로 바꾸어 내지 못하는지 식물 탓만을 하는 것도 바람직한 주인의 자세는 아닌 것 같다. 이 식물이 계속 건강하게 자랄 수 있고 제 역할을 하려면 꾸준히 물과 거름을 주고 관리를 해야하듯이, 변호사에게도 우리 회사의 사업내용이나 경영 현황, 내부 사정, 그리고 사업과 관련된 규제의 변화 등을 계속적으로 소통하고 작은 일들부터 하나씩 같이 해결을 해 나가야지 나중에 더 큰 일들을 같이 고민하여 그 고민을 흡수하고 도움을 줄 수 있다.
일부 대표 분들을 만나서 이야기를 하다 보면 가끔 "죽음과 변호사 고용(미국에선 응급실 방문도!)은 최대한 미루는 것이 좋다"라는 마인드를 가지신 분들을 꽤 많이 만난다. 물론 사실 살면서 변호사를 한 번도 안 만나거나 한 번도 변호사를 고용하지 않고 사는 것이 가장 좋긴 하다. 그런데 사업하시는 분들에겐 사실 그게 쉽지는 않다. 그런데 이미 산소가 거의 고갈된 방 안에 갑자기 식물 하나를 들여놓는다 하여 사람이 편하게 숨 쉴 수 있는 환경으로 드라마틱하게 바꿔줄 수 있으리란 기대를 하기는 어렵듯이, 사건이 다 터질 때까지 변호사와 일체의 소통이나 업무가 없었는데 변호사를 쓴다고 하여 갑자기 우리 쪽에게 상황이 좋아지는 것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다.
대표 분들과 이야기를 나눌 때 듣는 변호사에 대한 가장 큰 불만 중 하나가 바로 변호사가 우리 사업과 이 쪽 분야에 대하여 너무 모른다는 것이다. 그래서 매번 처음부터 설명을 하고 있자니 내 시간도 아깝고 답답하다는 것이다. 소위 대형로펌의 시급이 높은 유명한 변호사는 한 마디만 해도 우리 회사의 고민을 쫘악 다 파악하고 솔루션도 탁 하고 제시해 줄 것 같은데 괜히 규모가 작은 로펌의 시급이 싼 무능한 변호사를 써서 그런건가라는 생각이 들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제 아무리 뛰어나고 경험많은 슈퍼 로이어라고 해도 슈퍼 히어로는 아니다. 나와 한번도 일을 해본 적도 없고 우리 회사의 히스토리나 이 쪽 산업구조에 대해서도 잘 알지 못하는 변호사가 갑자기 나타나서 짧은 시간 내에 내 방 안에 깊은 뿌리를 내리고 이 방 안에 생명을 불어넣을 수 있도록 산소를 마구마구 뿜어내는 화초가 되기란 어렵다. 또 고객들은 변호사가 시간당 비용을 청구하는 것을 알기 때문에 최대한 변호사가 고민할 수 있는 시간을 타이트하게 쪼(?)려는 경향이 다소 있는데, 특히 소송이 아닌 기업에 대한 자문을 해주는 변호사는 이 회사에 대하여 아는 만큼 리스크가 보이고 리스크가 미리 보여야 예방도 가능하다. 2년에 한 번 건강검진 받으러 가는 대학병원의 의사보다 한 달에 한번 정기적으로 진료를 해 주는 동네병원의 가정의학과 선생님이 나의 몸과 건강에 대하여 더 잘 알기 때문에 처방도 제때 제때 내려줄 수 있는 것과 같다.
물론 대학병원 의사를 내 주치의로 하여 매 달 검진을 받는 것이 더 좋은게 아니냐고 반문할 수도 있겠으나 그건 비용과 시간적인 부분을 각자의 상황에 맞도록 고려해야 할 부분이다. 시간당 비용이 1,400불의 대형로펌의 파트너 변호사가 우리 회사의 주치의가 되는 것이 부담이 없으면 다행이겠지만, 그 비용이 부담되어 명색이 주치의인데 1년에 한 번도 찾아갈까 말까한 상황이라면 차라리 조금 더 저렴한 비용으로 주치의가 되어 줄 변호사를 찾는 것이 오히려 더 나을 수 있다. 그리고 결국 그 주치의도 자주 방문해서 상담도 받고 정기적으로 혈압도 재고 혈액 검사도 해 보고 할 수록 나의 건강에 대한 데이터들이 지속적으로 쌓이게 되고 그러한 과정 속에서 주치의가 볼 때 이 환자에게 가장 효과적인 약이라든지 건강관리를 위한 식습관 등을 제안을 해 줄 수 있는 것이고 결국 내가 더 건강해질 수 있도록 신선한 공기를 불어넣는 식물과 같은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분명한 것은 법률비용은 누구에게나 비싸게 느껴지고 결코 유쾌한 소비는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업 중에 변호사가 필요한 적절한 시점에 개입하고 합리적인 수준으로 법률비용 지출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결국 그 모든 고민의 중압감은 대표에게 더욱 과도하게 쌓일 수 있다. 또한 법률비용이 정말 마지막 순간까지 미루고 미루는 최후의 비용 개념으로 인식된다면 정작 그 비용이 지출되었을 때 그 비용의 효용성에 대한 실망감은 더욱 커질 수도 있다는 점을 많은 스타트업 대표님들이 이해하셨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