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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소송은 대체 왜 이렇게 비용이 많이 들까?

현직 미국변호사가 들려주는 미국소송 이야기


필자는 한국에서 수년간 사내변호사로 활동하면서 미국소송에 드는 법률비용(Legal Fees)에 놀란적이 많다.  세계적인 대형로펌들은 물론이거니와 규모가 그리 크지 않은 중소형 로펌을 통해서 소송을 진행하더라도 보통 1심 소송을 진행하는데 최소 20~30만불 이상의 비용이 발생하는 경우를 많이 보았기 때문이다.  사실 이 정도만 해도 매우 저렴(?)하게 소송을 진행한 것이라 볼 수 있다.  일례로 삼성전자와 애플의 특허소송에서 애플이 약 3년간 지출한 법률비용은 약 6천만불(현재 환율 기준으로 약 713억원) 정도로 알려져 있으며, 삼성전자가 지출한 비용까지 합치면 양측이 이 특허소송을 위하여 총 1억불(약 1190억원) 이상을 지출하였을 것으로 예상된다.  역사적인 특허소송이라는 특수성(기술에 대한 전문가 증인들이 Deposition에 참여하는 등으로 인해 상당히 높은 추가비용 발생)을 감안하더라도 가히 천문학적인 수준이다. 



상대적으로 국내의 대형로펌을 선임하여 국내소송을 진행하는 경우에는 (물론 소송의 규모와 민사/형사 사건의 종류, 그리고 사안에 따라 다르겠지만) 로펌비용으로만 십억대 이상의 비용을 지불하는 경우는 많이 들어보지 못했다.  필자가 국내에서 소형로펌에서 일하던 당시 파트너 변호사들이 수임하던 사건들의 경우를 생각해보면 보통 착수금 500만원에서 2천만원, 성공보수를 감안해도 보통 한 사건에 법률비용으로 지불되는 금액은 3~4천만원 이하였던 것 같다.  또한, 사내변호사로서 외부의 대형로펌을 선임하여 민사소송을 진행하는 경우라 하더라도, 보통 수천만원 수준의 착수금과 그에 상응하는 성공보수 수준으로 진행을 할 수 있었다.  



미국에 와서 한국회사 클라이언트들과 사건수임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한국에서와 같이 일부 착수금+성공보수 체계로 미국로펌을 선임하고자 하는 수요가 상당히 많았다.  시간당 임금체계로 소송을 진행하다보면 소송비용이 얼마나 들지 예측자체가 힘들다는 부담감이 많기 때문이다.  그런데 미국로펌들은, 특히 대형로펌의 경우에는, Flat fee 또는 Contingency (성공보수) 베이스로 사건을 수임하는 것을 꺼려하는 편이다.  필자가 근무하는 로펌의 경우에도, 성공보수 베이스로 사건을 수임하기 위해서는 매우 제한적인 조건하에 매니징 파트너들의 동의하에만 가능하다.  필자가 만난 한 클라이언트 회사 역시, 승소가능성이 상당히 높은 소송이었지만 수십만불 씩 쓰면서 소송을 진행하기에는 부담감을 느껴 미국 내 대형로펌에 성공보수 베이스로 사건을 맡기려 했으나 해당 로펌이 이를 거절하여 보다 규모가 작은 다른 로펌들에 성공보수 베이스로 사건수임이 가능한지 여부를 문의한 사례가 있다.   



미국에 와서 변호사 일을 시작하기 전까지는 막연하게 미국로펌과 미국변호사들이 부러운 부분이 있었다.  시간당 임금(Hourly rate)도 상대적으로 한국로펌보다 높은 편이고(현재 필자가 근무하는 로펌은 소송을 전문으로 하는 부띠크 로펌으로 어쏘시에이트 변호사의 hourly rate은 연차에 따라 350불에서 600불 정도, 파트너급이 되면 600불 이상 되며, 미국 내 대형로펌의 1년차 어쏘시에이트 로펌은 대략 400불에서 900불 정도, 파트너급이 되면 900불 이상으로 알려져 있다), 소송업무를 시간당 임금체계로 진행을 한다는 것 자체도 한국에선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특히 성공보수 약정이 없는 사건의 경우에는 더, 착수금이 들어온 후 소송을 진행하다보면 시간이 지남에 따라 자연스럽게 해당 사건에 소홀해질 수 있는 여지가 많다.  특히 소송이 장기화될수록 변호사가 50시간을 쓰나 100시간을 쓰나 어차피 변호사에게 돌아가는 몫은 변하는게 없다보니 가급적 소송을 빨리 마무리하려는 경향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반면에 미국로펌은, 아무리 간단한 사건이라 하더라도 변호사가 사건기록을 검토하고 서면 작성 등에 들어가는 최소한의 시간이 있기 때문에, 최종적으로는 수백시간을 빌링하여 억대의 수임료를 챙길 수 있다고 생각하니 부러울 법도 하다.  그렇다고 하루에 한국로펌보다 일을 2배, 3배로 하느냐, 그것도 아닌 것 같았다.  미국에서 만나는 변호사들은 대부분 한국로펌 변호사들의 살인적인 업무강도를 걱정하고 믿기지 않는다는 반응을 보인다.  그럼 대체 같은 소송을 진행해도 미국에서 진행하는 소송의 경우에는 비용이 이렇게 많이 드는 걸까?  미국로펌과 미국변호사들의 업무의 난이도가 한국로펌, 한국변호사들의 그것과 그렇게 많이 차이가 나는걸까? 




원인은 매우 다양할 것이다.  그러나 필자는 그 원인이 근본적으로 소송의 장기화(lengthiness)와 비정형성(Nontypicality)에서 발생한다고 생각한다.  뭐 이 부분은 미국소송을 경험하였거나 어느 정도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부분일 것이다.  그럼 미국소송이 한국소송과 구체적으로 어떤 점에서 차이가 있어서 소송이 더 오래 걸리고 비정형적이라 얘기하는 것일까?  



첫째는 한국에서 법무일을 하다보면 한 번 쯤은 다들 들어봤을 법한, 디스커버리(Discovery) 제도 때문이라 볼 수 있다.  그리고 두 번째는, 필자 역시 미국에 와서 실무를 접해보기 전까지는 자세히 알지 못했던 (엄청나게 다양한 종류의) 모션(Motion)이 또 하나의 이유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어떻게 보면 앞의 두 가지 이유를 아우르는 부분일 수도 있겠는데, 법원의 자율방임주의(라고 쓰고 무관심이라 읽는다)이라고 할 수 있다.  결국 위 3가지 이유가 복합적으로 소송의 장기화와 비정형성을 만들고, 결국 장기화, 비정형화된 소송으로 인하여 법률비용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할 위험이 있는 다소 비합리적인 구조를 가지고 있다.  그럼 도대체 디스커버리와 모션이 뭔데, 그리고 법원의 자율방임주의가 어떤 식으로 소송을 길게 만들고 복잡하게 만드는 것일까?  그리고 제도의 차이점은 알겠는데, 그렇다면 미국소송에 드는 비용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것일까?  



다음글에서부터 하나씩 자세하게 한번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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