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미국소송 비용증가의 주범, 디스커버리?

현직 미국변호사가 들려주는 미국소송 이야기


미국 소송의 가장 큰 특징을 꼽으라고 하면 대부분이 아마 디스커버리를 먼저 떠올릴 것 같다.  필자가 한국에서 변호사로 실무를 하면서도 매우 자주 접했던 용어이고, 미국 로스쿨에서 공부를 하고 미국 로펌에서 실무를 하면서도 매우 빈번히 듣고 실제로 많은 시간을 이 업무에 투입하고 있기도 하다.  이제는 한국 민사소송 절차에서도 일부 도입이 된 제도이기도 하다보니 한국에서 법무쪽 일을 하고 있는 분들은 매우 익숙한 단어일 것이고, 소송과 관련없는 일을 하는 일반인이더라도 미국소송에 관한 뉴스나 기사를 접한 경험이 있다면 역시 한 번쯤은 들어봤을 용어라 생각한다.  



사실 미국에 와서 실무를 하기 전에는, 다시 말해 글로만 디스커버리를 배웠던 시절에는, 디스커버리가 우리 말로 증거개시 혹은 증거수집이라는 것은 알겠는데 한국에서 소송할 때 증거제출하는 것과 구체적으로 어떤 점이 다른건지에 대한 개념이 명확하지 않았다.  막연하게 상대방에게 이러이러한 증거를 제출하라고 요청하고 상대방은 이에 성실히 응해야 하며 이에 성실히 응하지 않을 경우에는 법원에서 강력한 제재(Sanction)가 내려질 수 있다는 정도로 이해를 했었던 것 같다.  




디스커버리에 관련한 설명글은 이미 너무 많으니 자세한 설명은 생략하겠다.  그냥 아주 간단히 얘기하자면, 법원이 주재하여 양 당사자가 게임의 룰을 정해놓고, 그 룰 안에서 당사자들끼리 알아서 치고 받으면서 상대방이 가지고 있는 증거들을 수집하는 단계라고 보면 된다.  그런데 이 증거를 수집하는 방식이 하나가 아니다.  크게 4가지로 나누어 지는데, 1) 인정요구 (Request for Admission), 2) 문서제출요구 (Request for Document Production), 3) 질의서 (Interrogatories), 4) 선서증언 (Deposition)이 그 것이다.  보통 거의 대부분의 소송에서 디스커버리 절차를 진행한다고 하면 위 4가지 방식은 모두 동원된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어느 방식 하나 중요하지 않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필자가 개인적으로 느끼기에는 2)번의 문서제출요구 방식과 4)번의 선서증언 방식이 상대적으로 매우 중요하고 가장 효과적인 증거수집 방법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특히, 2)번의 문서제출요구를 잘 활용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사람은 거짓말을 해도 문서는 거짓말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일단 소송이 시작되었다는 것은 양측의 입장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고, 각자의 주장과 이를 뒷받침하는 근거들을 어느 정도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상대방에 보낸 1)번의 인정요구나 3)번의 질의서에 상대방이 순순히 내가 원하는 답변을 줄 것이라 기대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물론 노련한 변호사들일수록, 인정을 요구하는 내용과 질의하는 질문의 내용을 매우 정교하게 구성하여 상대방이 나도 모르는 사이에 그 함정에 빠져 상대방이 원하는 내용들을 공개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상대방도 기본적으로 변호사를 선임하여 대응을 한다는 전제하에, 일단 대답의 내용을 매우 제한적으로, 그리고 온갖 이의제기(Objection)를 활용하며 요리조리 즉답을 회피해나갈 가능성이 높다.  



사실 4)번의 선서증언(데포지션) 방식도 그런 면에서 굉장히 비효율적인 경우를 종종 보았다.  보통 선서증언을 하러 출석하는 증인(Deponent)은 이를 방어하는 측 변호사들에 의해서 철저한 교육을 받은 후 출석하게 된다.  기본적으로 묻는 말에만 대답할 것, 필요없는 부연 설명하지 말 것, 추측해서 대답하지 말 것, 최대한 수동적이고 방어적으로 임할 것 등등의 조언을 듣고 나서기 때문에 공격측 변호사의 질문에 술술 원하는 답변을 하는 것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위증에 대한 제재가 미국이 훨씬 더 강력하기 때문에 허위진술 등을 쉽게 하는 것은 아니지만, 불리한 부분에 대해서는 "기억이 안난다" 또는 "잘 모르겠다" 등의 대답으로 진술을 회피하는 것을 막을 뾰족한 수도(물론 데포지션 종료 후 그 정도에 따라 불성실한 증언에 대하여 상대방에게 이의를 제기하고 더 나아가 법원에 제재를 요청할 수는 있다) 없기 때문이다.  물론, 소송의 향방을 가를 정도로 결정적인 증언까지는 얻지 못한다 하더라도 데포지션을 통하여 다소 유의미한 증언내용을 얻는 경우는 많을 것이다.  그러나 들인 시간과 비용 등을 고려할 때 과연 이 정도 증언내용을 얻기 위해서 이런 노력을 들일만한 가치가 있는 내용이었나 그 효율성에 의심이 드는 경우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사실 이 부분은, 한국에서 증인신문 질문을 열심히 준비해서 갔는데 별 수확 없이 증인신문을 마쳤을 때도 많이 느꼈던 부분이다.  혹자는 데포지션을 잘해서 소송을 이기는 경우는 없어도 데포지션을 잘 못해서 소송에서 지는 경우는 있다고 얘기한다.  그만큼, 데포지션은 공격보다는 방어가 더 중요한 수단이라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반면에, 문서제출요구를 통해 얻은 상대방의 내부 문서 등이 가장 큰 결정적인 단서가 되는 경우를 많이 본다.  디스커버리를 통해서 한국에서의 소송에서는 상대방의 제출을 기대할 수 없었던 상대방에게 불리하고 나에게 유리한 자료들도 종종 현출된다.  미국변호사들은, 내 클라이언트라 하더라도, 성실한 자료제출 의무이행에 매우 민감하고 또 그것을 강하게 요구하는 편이다.  상대방이 제출을 요구한 자료 중, 우리 쪽에서 이의제기를 할 만한 사유가 없는 자료들에 대하여는 전부다 제출할 것을 요구하고 상대방에게 자료들을 제공(Serve)하기 전에 이를 재차 삼차 확인한다.  클라이언트 입장에서는 다소 불쾌할 수 있는 지점이다.  분명 내가 선임한 변호사인데, 나에게 불리하거나 혹은 불리하지는 않더라도 굳이 이런 자료까지 다 제공해야 하나 싶은 자료들까지 내 변호사가 계속 보낼 것을 요구하고, 제출할 것이 없다하면 정말 확실한지, 보관 중인 모든 자료들을 다 찾아보는 노력을 기울였는지에 대해 또 묻고, 불성실한 자료제출로 소송에 패소할 수도 있다고 겁도 주고..  어떻게 보면 이 디스커버리 제도가 효과적으로 작동하는 가장 큰 요인이 아닐까 싶다. 




이번 글에서는 디스커버리 제도에 대하여 아주 간략하게 이야기 해 보았다.  다음 글에서는 그럼 이 디스커버리 제도가 어떤 식으로 소송비용을 증가시키고 그 비용이 대체 어느 정도길래 소송비용 증가의 주범이라고 하는 건지에 대해 이야기 해 보려고 한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