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로펌 이야기
미국로펌을 선임해야 할 때, 의뢰인 입장에서 가장 먼저 확인하고 싶은 것은 바로 변호사 비용일 것이다. 필자 역시 한국에서 사내변호사로서 미국로펌을 알아볼 때 그들의 높은 비용에 놀랐던 기억이 있는데, 한국에 있는 클라이언트 입장에서 미국로펌의 비용은 여전히 매우 높은 장벽으로 작용하고 있다.
최근에 미국에서 LG화학과 SK이노베이션 사이의 배터리 영업비밀 침해소송에서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 1 심을 진행하면서 지난 500여 일 동안 양사가 미국로펌에 지출한 법률비용의 추산액만 약 4천억 원에 달한다는 뉴스 기사를 본 기억이 있다. https://news.mt.co.kr/mtview.php?no=2020092922413048297
한 회사 기준으로 2천억 원으로 계산하면 대략 소송 기간 중 하루에 평균 4억 원 정도를 법률비용으로 썼다고 볼 수 있고 하루의 평균 working hour 8시간을 기준으로 시간당 5천만 원 정도가 발생했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위 금액에는 변호사 비용뿐만 아니라 전문가 증인들에 대한 비용이나 기타 부대비용들까지 모두 포함한 일부 부풀려진 금액으로 예상되나, 그렇다고 하더라도 저 중 대부분의 비용은 로펌이 청구하는 법률비용(변호사 비용 + paralegal 등 paraprofessionals 비용)일 것이고, 문득 그들 로펌은 시간당 어느 정도의 비용을 청구하기에 저정도 액수를 청구할 수 있는 것일까라는 궁금증이 생길만하다. (참고로 LG화학은 Fish & Richardson, Dentons, Latham & Watkins 등을 세 곳을 법률대리인으로 두고 있으며, SK이노베이션은 Covington & Burling 을 대리인으로 두고 있다.)
사실 각 로펌의 billing rate(시간당 청구하는 금액)은 영업비밀로써 관리되어 외부에 공개되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실제로 고객들 사이에서는 로펌을 선임하기 전에 흔히 말하는 로펌 쇼핑을 하면서 대략적인 fee range를 제시받게 되는데 이를 통해 어느 정도 미국 (대형)로펌들의 비용에 대해서 예측은 가능하다. 당연한 얘기겠지만, 같은 로펌 내에서도 어쏘와 파트너의 rate이 다르고, 어쏘 중에서도 연차에 따라 rate이 다르며, 파트너 사이에서도 당연히 연차와 전문분야에 따라 rate이 다 상이하다. 심지어 동일 변호사여도 민사소송, 형사소송에 따라 rate이 달라지기도 하며, State court사건, Federal court 사건에 따라 rate이 달라지기도 한다. 오피스의 위치(예컨대 같은 로펌이어도 뉴욕 오피스의 billing rate과 미네아폴리스 오피스의 billing rate이 다를 수 있으며, 대도시에 위치한 오피스와 지방 중소도시로 갈 수록 그 rate의 차이는 상당히 커진다), 각 케이스의 난이도나 케이스 내에서의 역할(1st chair 인지 2nd chair)에 따라서도 달라질 수 있다. 결국 같은 로펌에 케이스를 맡겨도 의뢰인들마다 받게 되는 invoice 상의 변호사들의 billing rate은 상당한 차이가 있을 수 있다.
그러면 미국 (대형)로펌들의 billing rate은 대략적으로 어느 정도일까? 일부 top 로펌들의 경우에는 Senior 어쏘 변호사의 경우에도 시간당 $1K 이상을 청구한다는 조사결과가 있었다.
Weil Gotshal 로펌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2020년 기준, 어쏘 변호사의 rate이 $595 ~ $1,050, 파트너 변호사와 Counsel의 rate은 $1,100 ~ $1,695 수준으로 나타났다. 또 다른 대형로펌인 Kirkland & Ellis와 Skadden의 경우에도 Senior 어쏘 변호사의 rate이 $1,000을 넘는 것으로 나타났다. 모든 로펌에 적용시켜 일반화시킬 수는 없겠지만 로펌들 간에도 치열하게 경쟁 로펌들의 rate을 확인하고 가격경쟁을 하고 있는 것에 비추어 볼 때, 상당수의 대형로펌들 역시 위와 비슷한 수준의 rate system을 가지고 있을 것이라는 추측이 가능하다. 따라서 1년차 Junior 어쏘 변호사($500 내외), 7~8년차 Senior 어쏘 변호사($1,000 내외), Junior급 파트너 변호사 ($1,000 ~ $1,300), Senior급 파트너 변호사($1,500 이상, 사실 이들은 부르는 게 값인 경우가 많으며 아주 유명한 파트너들의 경우 $2K를 넘는 경우도 많다) 정도로 예상을 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위 예상은 소위 미국 내 대형로펌 중에서도 top급의 로펌들의 경우를 예상해 본 것이고, 그 외의 로펌들의 경우에는 tier가 내려갈수록 rate은 낮아질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사실 위 billing rate보다 더 중요한 것은 바로 billed hours(청구된 시간)이다. Billing rate이 $1,500로 매우 비싼 편이어도 30분만 써서 내가 원하는 답변을 찾아주는 것과 시간당 비용은 $500로 상대적으로 저렴한 편이지만 3시간을 써서 답변을 찾아주는 것 중에 결과적으로는 전자가 법률비용이 더 적게 든다. 필자가 생각하기로는 일을 맡길 변호사를 선정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내가 원하는 바를 변호사가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는가, 그리고 실시간으로 의사소통이 잘 되는가이다. 의뢰인 중에는 제한된 budget과 시간당 발생하는 비용이 부담되어 변호사에게 일을 맡긴 후에 의사소통을 꺼려 하는 의뢰인들이 종종 있다. 아무리 실력이 뛰어난 변호사라도 의뢰인과의 티키타카 없이 의뢰인에게 최적의 결과를 안겨다 줄 수는 없다. 다시 말해, 의뢰인 입장에서 billed hours를 고려할 때 변호사 입장에서 예상하는 시간보다 (추가적인 질의나 보완 요구에 대한 가능성을 염두에 두어) 조금 더 여유를 두고 총 법률비용을 예상하는 것이 좋으며, 결국 이 예상 비용이 나의 budget에 맞는지를 보고 이 로펌을 선임해도 괜찮을 지를 따져봐야 한다.
그리고 Flat-fee(시간당 청구하는 것이 아닌 사건당 청구하는 방식으로 음식점 메뉴판처럼 케이스 종류별로 금액이 정해져 있다)로 변호사에게 케이스를 맡기는 것에 대해서도 유의할 필요가 있다. 작은 규모의 로펌들에서 많이 광고하는 방식이기도 하고 법률비용이 예측 가능하다는 점에서 의뢰인 입장에서는 매우 매력적인 옵션이긴 하다. 그러나 일정한 요건만 만족하면 종결되는 일부 간단한 페이퍼 업무(예컨대 정관 작성, 법인설립 신청서 작성 등)들을 제외하고는 케이스 초반에는 변호사가 실제로 일을 해야 하는 시간을 예상하기란 상당히 어렵다. 예를 들어 $1,000에 계약서 작성을 해준다는 변호사가 있다고 해보자. 변호사가 3시간을 써서 공들여서 작성한 초안을 상대방이 빨간 줄을 잔뜩 그어서 회신하였고 의뢰인은 변호사에게 2차 수정안 작성을 요청한다. 계약 상대방과의 협상이 잘 안되면서 계약서 핑퐁이 계속되었고 3차, 4차 수정안까지 오고 가게 되었다. 다른 사건에서 이 변호사의 시간당 rate이 $250라 가정하면, 4시간을 초과하여 투입할 경우 위 계약서 작성은 변호사 본인에겐 가성비가 안 나오는 업무가 되어 버린다. 결국 시간이 많이 투입될수록 변호사의 업무의 퀄리티는 급격히 떨어질 수밖에 없다.
따라서 내가 변호사에게 맡길 업무가 Flat-fee 방식에 적합한 업무인지를 일단 먼저 확인하는 것이 중요하다. Hourly billing 방식으로 진행하기로 하였더라도 나의 예산에 맞추어 billing cap(시간당 비용을 청구하도록 하되 해당 금액을 초과하여서는 청구하지 않기로 하는 일종의 상한선)을 설정한다든지, billing report(weekly/bi-weekly/monthly statement를 통해 기간별로 비용을 통제하는 방식 또는 $5K, $10K, $15K 등 법률비용을 $5K 단위로 발생할 때마다 통지하여 추가 업무 진행에 대한 permission을 받도록 하는 금액대별로 비용을 통제하는 방식) 등 여러 가지 방식으로 법률비용을 통제하고 관리하는 것이 가능하니, hourly billing 방식에 대한 막연한 거부감보다는 이를 적극적이고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방식에 대해 변호사와 상의해 볼 것을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