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력도시 매거진 vol.01_양양(5)
'서핑은 단순한 스포츠가 아니라 문화예요.'
'서핑은 내가 사는 방식이에요.'
동해안의 서퍼들은 입을 모아 이런 얘기를 했습니다.
유선형 널판자에 올라 해변으로 밀려오는 스포츠 아닌가요,라고 되물었다가는 야단맞을 분위기였습니다. 서프 문화를 조사하다 보니, 서핑이 스포츠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은 분명했습니다. 서퍼들의 행동 방식, 그들이 쓰는 언어, 입는 옷, 서프보드를 꾸미는 방식, 파티에서 듣는 음악을 포괄한 것이 서프 컬처 Surf culture 였습니다. 1960년대 미국의 서해안에서 정점을 이루었던 서프 컬처는 지금까지 수많은 하위 문화와 산업으로 발전해왔습니다. 흥겨운 팝 음악, 화려한 색상의 그래픽, 자유로운 패션, 좋은 파도를 찾아다니는 관광 산업, 해변을 보호하는 친환경 운동으로 말이죠.
서핑의 파생력
서핑은 파생력 派生力이 있습니다. 주변 문화와 산업을 만들어 내는 힘이 있다는 뜻입니다. 서핑의 파생력은 매력도시의 관점에서 흥미롭습니다. 파도가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젊은 사람들이 모여들고, 이들을 중심으로 지역 문화와 지역 산업이 생길 수 있다는 의미니까요. 서핑이 매력도시의 도화선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서핑 문화를 중심으로 하조대, 인구, 죽도 해변에 자유로운 문화, 예술, 스포츠 산업이 생길 수 있을지 모릅니다.
지금이야 당장 서핑을 하러 양양으로 몰려오는 관광객들이 반갑겠지만, 길게 보면 동해안에 독특한 문화와 삶의 방식을 가진 사람들이 정착하도록 하는 것이 이상적입니다. 바다를 낀 지방 소도시들이 긴 안목을 가지고 생각해봐야 할 문제입니다. 젊은이들이 지역에 자발적으로 모여 문화와 산업을 만든다면, 그 보다 좋은 매력도시가 없을 테니까요.
서핑을 문화와 삶의 방식으로 이해하고 싶은 지역 주민, 사업가, 행정가에게, 영화 <폭풍 속으로 Point Break>를 추천합니다. 여성 감독 캐스린 비글로우가 불량기 넘치는 서핑 패거리들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인데요, 뜬금없이 영화를 추천하는 이유는 이 영화가 서핑 문화의 여러 측면을 스케치하듯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영화 만으로도 충분히 재미있고요.
이 영화를 처음 봤던 1991년에는 서핑이란 흥미로운 미국의 문화구나, 라는 단순한 생각으로 봤는데요, 동해안의 서퍼들을 취재하고 다시 보니 당시에는 이해하기 힘들었던 서핑의 속성이 보였습니다. 영화에 나온 장면을 짚어 가면서 서핑이 왜 단순한 스포츠가 아닌지, 파생력이 기대되는 문화인지, 살펴보겠습니다.
캘리포니아 해변에 전직 미국 대통령의 가면을 쓰고 은행 강도짓을 하는 독특한 범죄자 일당이 등장합니다. FBI 요원 키아누 리브스와 게리 부시는 이들의 범행이 서핑 시즌 직전에 몰려있다는 점, 큰돈에 욕심이 없다는 점, 사람을 해치지 않는다는 점 등의 단서를 근거로 동네의 서퍼들을 수사하기 시작합니다. 키아누 리브스는 범죄 증거를 잡기 위해 신분을 감추고 서핑을 배우며 이들에게 접근합니다.
잠입 수사를 지시하는 베테랑 형사 게리 부시가 신참내기 키아누 리브스에게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저기 서퍼들을 봐. 이 사람들은 일종의 트라이브 (tribe: 부족) 같은 녀석들이야. 자기들끼리만 통하는 언어를 사용하지. 그냥 저 녀석들에게 접근하는 것은 불가능해. 네가 스스로 서퍼가 돼서, 그들 머릿속에 들어가 봐야 단서가 나올 거야."
베테랑 형사의 말대로 서퍼들은 '부족'을 이룹니다. 서핑을 진심으로 좋아하는 사람들끼리 동질감을 느끼며 함께 몰려다닙니다. 때로는 서핑을 단순히 '멋으로' 즐기려고 하는 사람들을 배척하거나 무시하는 태도를 보이기도 합니다. '이너 서클 inner circle'을 중시하는 서퍼의 문화는 다른 스포츠에서 찾아보기 힘든 독특한 측면입니다. "진심으로 탁구를 좋아하는 사람끼리만 어울리자"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은 별로 없을 테니까요. 왜 유독 서퍼들은 서퍼와 비非서퍼의 선을 긋고 자신들의 부족을 이룰까요?
서핑의 로컬리즘
서핑은 파도가 없으면 아무런 의미가 없는 스포츠입니다. 잔잔한 바다에서는 프로 서퍼나 초보나 할 일 없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운이 좋아서 적당한 날씨와 해변을 만난다고 해도, 스릴 있는 멋진 파도는 기껏해야 하루에 몇십 번 정도 옵니다. 불과 몇 미터 차이로 좋은 파도가 내 옆을 지나가기도 하죠.
서핑을 한다는 것 자체가 시간과 장소에 의해 크게 좌우되므로, 간간히 만나는 좋은 파도란 참 귀한 것입니다. 그런 귀한 파도를 간신히 '잡았는데', 내 앞에 초보자가 냉큼 먼저 올라타고 나는 기회를 놓친다고 생각해보세요. 진짜 서퍼들은 화가 나는 일이겠죠. 초보 서퍼가 사고를 내면 해변이 한 동안 폐쇄되기도 하고요. 그래서 서퍼들은 좋은 파도가 치는 해변을 중심으로 자신들의 영역을 확보하는 행동을 하기도 합니다. '우리 동네 서퍼들만'이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서핑의 특징에서 비롯된 독특한 로컬리즘 (Localism: 지역주의)이 생깁니다.
이런 로컬리즘 때문에 서퍼들끼리의 다툼이 일어나기도 한다는군요. 키아누 리브스는 서퍼들을 수사하기 위해 일부러 다른 패거리들이 장악한 해변에서 보란 듯이 서핑을 합니다. 곧바로 동네의 무서운 형들이 나타나 키아누 리브스를 혼내주죠.
이런 '텃세 문화'를 긍정적 측면에서 보면, 내가 사는 동네에 대한 애착이라 할 수 있습니다. 바다의 오염을 감시한다던가, 쓰레기를 버리지 못하게 하는 서프 환경 보호주의 Surf Environmentalism가 등장한 이유입니다. 바다의 상태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스포츠라서 나오게 된 생각들이죠.
궁극의 파도타기
우리가 만난 서퍼들은 참 행복해 보였습니다. 얼굴은 밝고 건강하고, 생각은 자유로웠습니다. 그리고 서핑을 삶의 방식, 정신적으로 성숙하게 하는 도구라 이야기하기도 했습니다. 영화에 나오는 서퍼들도 그런 사람들입니다.
키아누 리브스가 해변에서 만난 여성 서퍼는 서핑 패거리의 우두머리인 패트릭 스웨이지를 소개하면서, 그를 '진정한 탐구자'라고 부릅니다.
"뭘 탐구하는데?"
"파도타기! 궁극의 파도타기 말이야."
서핑은 기껏해야 몇십 초 파도를 타면 끝나는 찰나의 스포츠입니다. 스포츠라는 말도 정확한 표현이 아닙니다. 기록이나 경쟁의 요소가 없기 때문입니다. 프로 경기가 아니라면, 누가 해변에 빨리 도착했나, 누가 더 멋지게 탔나를 겨루지 않죠. 그 찰나의 시간에 어떻게 스스로 파도를 스릴 있게 즐겼는가. '스스로'에 포인트가 있습니다. 스포츠라기보다는 개인적 경험에 가깝습니다. 어느 파도를 잡을까 결정하고, 파도에 올라 해변으로 밀려왔다가, 다음에는 어떤 방식으로 타볼까 궁리합니다. 이기거나 지거나하는 개념이 없습니다. 파도에 대응해서 개인적인 성취를 하는 운동입니다. 궁극의 파도를 찾고 탐구해가는 것이죠.
영화 속 서퍼, 패트릭 스웨이지는 한 걸음 더 나아가 구도자의 느낌마저 줍니다. 큰 파도를 보며 두려움을 느끼는 키아누 리브스에게 패트릭 스웨이지는 이렇게 말합니다.
"파도가 하려는 바를 느끼고, 그 힘을 받아들여야 돼. 파도를 쳐다볼 필요도 없어. 시각은 과장된 것이 거든."
해변의 보헤미안, 서프 투어리즘
낮에는 파도를, 밤이면 파티를 즐기고 인생을 행복하게 삽니다. 현재의 삶에 관심 있고, 오늘의 파도에 집중합니다. 그리고 언젠가 만날 파도를 꿈꾸며 삽니다. 누군가 해변에서 뛰어오며 '좋은 파도가 나타났어'라고 외치면, 서퍼들은 하던 일을 제쳐두고 바다로 뛰어갑니다. 용기, 모험심, 낙관적 태도, 파티, 술, 음악이 독특하게 어우러진 매력 인생들입니다. 이런 삶에 한번 빠져들면 쉽게 도시의 반복된 삶에 적응하기 어렵습니다. 보헤미안이 되어 세상을 떠돌면서 궁극의 파도를 만나는 것을 인생의 목표로 삼기도 합니다. 영화 속 서퍼 일당이 독특한 방식의 은행 강도짓을 하는 이유도 최소한의 경제적 여유를 가지고 서퍼의 삶을 유지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시간이 흘러, 두 주인공은 폭풍으로 폐쇄된 호주의 벨 비치에서 다시 만납니다. 서핑에 대한 애정과 범죄로 얽힌 악연이 뒤섞인 채로요. 50년에 한 번 온다고 알려진 전설의 파도가 치는 날입니다.
"여기서 다시 만날 줄 알았어, 특수요원."
"너를 찾아 멕시코의 해변은 다 돌아다녔어. 바하, 수마트라, 피지에서는 아슬아슬하게 놓쳤고... 하지만 네가 50년 만에 찾아온 폭풍을 놓치지 않을 거라 생각했지."
서퍼들은 파도를 찾아 세상을 떠돌아다닙니다. 높고 위험한 파도를 마다하지 않습니다. 높은 파도뿐 아닙니다. 교각 밑에 치는 파도, 방파제 인근의 파도, 빙하가 떠있는 아이슬란드의 파도를 탐구하러 떠납니다. 서퍼들의 표현을 빌리자면, '세상에 똑같은 파도가 두 번 치지 않'기 때문에, 이들은 새로운 파도를 찾아 여행을 다닙니다. 서프 투어리즘 Surf tourism입니다.
유스 컬처의 힘
<폭풍 속으로>는 서프 문화를 다각도로 보여주는 영화입니다. 부족 문화, 지역에 대한 애착, 개인의 성취를 우선하는 정신적 측면, 현재를 즐기는 삶의 방식, 세상을 떠돌아다니는 삶 같은 것들이 잘 버무려져 나오는 것이 서프 문화입니다. 그래서 복잡한 삶에 매여 사는 우리의 관심을 끄는 매력이 서퍼들에게 있습니다. 비록 자신이 쫓는 범죄자이지만, 자유로운 서퍼들에게 마음이 끌리는 특수요원처럼 말이죠. 서퍼의 매력은 추종자들을 끌어모으는 힘이 있습니다. 지역 문화를 만들고, 동네를 형성하고, 커뮤니티를 만듭니다. 서핑의 힘입니다.
그리고, 1960년대 미국 웨스트 코스트에서 시작된 가치에 2010년대 우리나라 동해안이 반응하고 있습니다.
매력도시의 관점에서 보면, 다음과 같은 서핑의 힘이 관심거리입니다: 젊은 사람들이 지역에 애착을 가지고, 자발적으로 커뮤니티를 만들며, 사람들을 끌어모은다는 것. 이 세 가지는 매력도시를 꿈꾸는 지방 소도시의 목표 아닙니까?
이야기를 조금 확대하자면, 이것은 서핑과 같은 유스 컬처 Youth cultre 스포츠의 속성이기도 합니다. 산악자전거, 스케이트 보드, 래프팅, 암벽등반, 패러글라이딩, 절벽 다이빙 같은 액션 스포츠 Action sports 말이죠. 이런 스포츠는 특수한 지역 환경이 꼭 필요합니다. 바다와 산이 있는 곳을 찾아 가야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지역과 쉽게 결합하는 문화입니다. 더욱 중요한 점이 있습니다. 유스 컬처들의 배후에는 소비력이 왕성한 젊은이들이 있다는 점입니다. 이들은 자신들이 좋아하는 문화와 관련된 패션, 상품, 관광, 이벤트, 예술, 음악, 식음료를 적극적으로 소비합니다.
지역과 쉽게 결합하는 젊은 문화. 매력도시가 되기를 원하는 지방 소도시들이 지역 결합형 유스 컬처를 주목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다음 편에서는 서핑이 가진 또 다른 힘을 지역 산업의 관점에서 살펴보겠습니다.
Reference
<폭풍 속으로 Point Break>, 1991 +
서프 로컬리즘 Surf localism +
서프 투어리즘 Surf touris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