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력도시 매거진 vol.01_양양(4)
매력도시 대담: 조성익 x 이호
조성익 홍익대학교 건축대학 교수, 매력도시 매거진 에디터
이호 FIT Place 대표, 매력도시 연구소
조성익 왜 갑자기 서핑인가? 이 얘기부터 해보죠. 동해안이 서핑 천국이 되리라고 예상한 사람은 별로 없었는데요.
이호 해양 레포츠 산업에 관심 있는 행정가, 사업가, 기획자 들은 입을 모아 다음 트렌드는 요트라고 했었어요. 국민소득 3만 불 시대가 되면 요트를 즐긴다,라고 말했죠. 그런데 의외로 서핑이 터진 거예요. 요트 산업은 여전히 답보 상태고요. 무엇보다 서핑은 젊은이 들을 중심으로 자발적으로 시작됐다는 점이 중요해요.
조성익 요트처럼, '이게 다음 순서야'라고 미디어에서 떠들썩하게 이야기하지도 않았는데 말이죠.
이호 서핑을 스포츠나 레포츠의 범주에 넣어야 할지도 생각해 볼 문제예요. 단순히 유행하는 아이템이라기보다는 라이프 스타일에 가까워요. 서퍼들이 동해안에서 사는 모습을 보면, 자신이 원하는 삶의 방식을 찾아 이곳에 왔구나, 하는 생각이 들죠. 이들이 라이프 스타일을 기반으로 이곳에 모였다는 것, 이게 특별한 점이예요. 우리 대부분은 학군, 직장, 집값으로 사는 곳을 정하잖아요. 그런데 서퍼들은 파도와 여유 있는 삶이 필요하고, 그래서 양양을 고른 거예요. 서퍼 친구들끼리 부족 마을을 만들어 교류하면서 살고요.
여기서 포인트는, 사람들이 1) 자신의 라이프 스타일을 찾아, 2) 자발적으로 모여, 3) 교류하며 산다는 것입니다. 이런 도시의 등장은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그동안 우리가 도시에 그다지 기대하지 않았던 일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대부분은 1) 집 값과 애들 교육 때문에, 2) 어쩔 수 없이, 3) 집과 직장을 오가며 삽니다. 옆 집과 교류할 필요를 느끼지 못하면서요.
양양을 매력도시로 만든 자발적 운영자들
조성익 양양이 서핑 성지로 '뜬' 가장 중요한 요인은 서퍼들이었어요. 바루서프의 채화경 대표를 만나보니, 단순히 서핑의 유행을 이용하기 위해 사업을 기획했다기보다는 진심으로 이 문화가 좋고 알리고 싶어 일을 시작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죠. 라이프 스타일로 도시를 고른다, 라는 이야기도 흥미로운데요, 이야기를 조금 넓혀볼까요. 왜 양양이, 라이프 스타일의 도시가, 지금 우리나라에 등장했을까요?
이호 지역이나 마을을 이끄는 주도권이 바뀌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기획자가 이끌던 도시에서 운영자가 이끄는 도시로 헤게모니가 넘어가는 것 같아요. 지금까지 우리의 도시와 마을은 기획자들이 주도해서 만들었어요. 정치인, 행정가, 건설사, 시행사, 금융투자사가 그런 기획자들이고요. 정책을 결정하고, 상황을 분석하고, 땅을 매입하고, 아파트 단지를 계획하고, 금융투자받아서, 분양하고, 수익을 나눠 가졌죠.
조성익 그리고 우리는 그렇게 만들어진 도시와 마을에 형편에 맞춰 들어가서 살았고요.
이호 네, 그런데 양양을 서핑 도시로 이끈 사람들을 보면, 이런 기획자들이 아니에요. 서핑숍, 크래프트 비어 바, 핸드드립 커피숍을 직접 경영하는 운영자들이 주인공이죠. 양양을 매력도시로 만든 것은 자발적으로 파도가 좋아서 들어간 운영자들이었어요.
조성익 '앞으로 10년은 서핑이 유행할 것으로 예상되니까, 7번 국도면으로 서핑숍 거리를 만들자, 투자계획을 세우고, 서퍼들을 모아보자', 하고 시작된 일이 아니라는 거군요. 행정가나 사업가 같은 기획자의 마인드가 아니네요.
이호 생각해보면, 기획자들이란 개발도상국에서 필요한 인재들이에요. 개발도상국의 핵심 전략은 양 量, 집단 集團, 속도죠. 많은 것을 획일화해서 한 번에, 그것도 빠르게 해내야 하죠. 그러니 다른 사람보다 먼저 미래의 트렌드를 읽고 사업 전략을 짜는 기획가가 인정받는 거예요.
양, 집단, 속도를 중시하는 개발도상국의 전략은 선진국으로 진입하면서 질 質, 개별 個別, 지속 持續으로 추구하는 가치가 바뀝니다. 작더라도 좋은 것을 찾고, 개성이 존중되고, 오래오래 할 수 있는 일이 각광받습니다.
운영의 노하우가 없으면, 사업의 지속성이 없다.
조성익 선진국의 전략에 맞는 가치를 실현하려면 기획자보다는 운영자의 능력이 필요하다고 보는 거군요.
이호 그렇죠. 서핑의 라이프 스타일을 알린다는 것은 책상머리에만 앉아 아이디어를 내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거든요. 오랫동안 그 콘텐츠를 실행한 사람들, 서핑을 하러 세상을 돌아다녀본 사람들이 운영의 노하우를 쌓아서 하는 일이에요.
조성익 게다가 좋아하는 사업을 운영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양양의 서핑촌을 만든거고요. 서퍼끼리 서로 돕는 커뮤니티와 생태계를 말이죠.
이호 이런 자발적 매력도시는 우리나라에 최초로 등장한 것이 아닌가 생각해요. 자발적으로 형성된 커뮤니티는 지속 가능성도 높을 거예요. 여하튼 단순히 양양이 왜 서핑으로 떴나, 왜 라이프 스타일의 도시가 뜨는가, 라는 질문을 넘어 생각해볼 점은, 우리나라의 젊고 재능 있는 사업가와 크리에이터들이 운영의 노하우를 쌓고 있는 최근의 추세예요. '오버 더 디시'의 손창현 대표, '어메이징 브루어리'의 김태경 대표 같은 사람들이 세계적인 컨설팅 회사를 그만두고 자신의 가게를 운영하고 있죠. '운영의 노하우가 없으면, 소비자의 공감을 얻을 수 없고 사업의 지속성이 없다.' 이런 생각을 미래의 리더들이 하고 있는 것 같아요.
조성익 바루서프와 서피비치의 대표들도 스마트한 운영자들이고요. 그렇다면 기획가들이 이런 일을 해보고 싶으면 어떻게 하죠? 양양의 성공을 보면서 서핑 사업을 규모 있게 해보고 싶은 사업가도 있을 것이고, 라이프 스타일 매력도시를 만들고 싶은 지방 소도시의 행정가도 있을 텐데요.
이호 시간입니다. 시간을 들여 운영 경험을 쌓아 기획을 해야해요. 운영의 경험까지도 포함된 기획이 진짜 기획이니까요. 매력도시 양양의 교훈이죠. A-City
Reference
3만불 요트 시대 +
오버 더 디시 +
어메이징 브루어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