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력도시 매거진 vol.01_양양 (2)
"아이가 자연을 보며 자랐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바루 서프'의 채화경 대표가 이야기를 시작했습니다. 조용하지만 탄탄한 목소리였습니다. 바루 서프는 한 걸음 앞에 푸른 바다가 있는 서핑 숍입니다. 서핑 관련 제품을 파는 1층 공간을 세련된 솜씨로 꾸몄습니다. 진한 푸른색 벽을 배경으로 나무 가구를 두어 안정된 느낌의 공간이고, 진열된 서핑 용품들은 하나하나 눈길이 갔습니다. 명확한 안목과 기준에 의해서 마련된 편집숍임을 알 수 있습니다.
"제가 디자인 관련 일을 했었어요. 남편은 서핑 강습을 하고 있고요."
"패밀리 비즈니스 군요."
"그런 셈이죠. 우리 두 사람 다 자연에서 노는 것을 좋아했거든요."
쇼핑, 식음료, 숙박이 함께 있는 서퍼의 파라다이스
2014년, 채화경 대표는 남편인 김진수 대표와 함께 남애 해수욕장 인근에서 '바루 서프'를 열었습니다. 양양 시내에서 자동차로 약 20분 거리에 위치한 곳입니다. 인근 해수욕장에 우후죽순 생기고 있는 서핑촌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조용히 자리 잡고 있습니다. 바루 서프 앞에는 한적한 2차선 도로가 해변을 따라 뻗어있습니다. 도로의 한쪽에는 바다가 보이고, 다른 쪽에는 아담한 건물들이 늘어서 있습니다. '장군 수산', '황토방 민박', '창 밖의 바다 횟집' 같은 건물입니다. 허름해서 익숙 다정한 동해안 해안도로의 풍경입니다. 횟집과 민박집 사이에 붉은색 페인트를 칠한 3층 건물이 바루 서프입니다.
바루 서프 건물은 모래사장보다 2미터 정도 높은 도로변에 있어서, 멀리 까지 바다를 바라보기 좋습니다. 서퍼들은 바루 서프의 테라스에 보드를 꺼내놓고 파도를 바라봅니다. 좋은 바람과 파도가 밀려온다 싶으면, 언제든 몇 걸음 만에 바다로 뛰어들 수 있습니다.
채화경, 김진수 부부는 바다가 한 걸음인 평범한 콘크리트 건물을 감도 좋게 꾸며서, 서핑 숍, 서핑 스쿨, 서퍼 게스트 하우스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숍 한편에 카페가 있어 간단히 먹고 마실 수 있고요. 쇼핑, 식음료, 숙박이 함께 있는 서퍼의 파라다이스를 만들었습니다.
서핑 숍은 감각 있는 물건들로 가득했습니다. 서프보드와 모자들이 잘 정돈되어 있고 음악 연주와 비디오 게임을 할 수 있는 작은 소파도 있습니다. 눈길을 끈 것은 가게 한 편에 세워둔 나무로 만든 옷장이었습니다. 옷장에는 서핑에 필요한 물품들이 한 세트씩 들어 있었습니다.
"이 나무 옷장은 어떤 건가요? 사람 이름이 위에 붙어있네요."
"프로 서퍼 탑 랭커들의 이름이에요. 캘리 슬레이터 라든가, 존 존 이라든가. 세계 서핑 대회에 참가하는 유명 선수들이죠"
서핑 대회는 일종의 포인트 대회라고 합니다. 몇 개월간 세계의 여러 해변을 돌아다니며 투어를 하는데, 이 대회에서 얻은 포인트의 합으로 우승자를 결정한다고 채화경 대표는 설명합니다. 해변에 선수들을 위한 라커룸을 만드는데, 나무로 된 단순한 모양의 옷장에 선수들 이름을 붙여놓는다고 합니다. 바루 서프에서는 그 모양 그대로 옷장을 만들어 서핑 용품을 전시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좋아하는 선수들이에요. 마치 탑 랭커 서퍼들이 양양에 와서 파도를 기다리며 시합을 기다리는 것처럼 옷장에 이름을 붙여놨어요."
책임감을 가지고 서핑을 알리려 노력합니다.
큰 파도가 치는 외국의 어느 해안에서나 가능한 것이라 생각했던 서핑이 어떻게 동해안으로 왔는지, 양양에서 서핑숍을 시작한 계기가 무엇인지 물어봤습니다.
"우리나라는 이제 시작 단계인 거죠. 시작 단계니까, 저희는 책임감을 가지고 알리려 노력하고요."
책임감을 가진다, 라는 채화경 대표의 이야기가 흥미로워 자세히 설명해달라고 했더니,
"우리나라에 자동차를 처음 들여왔던 때라고 생각해보세요. 그걸 들여온 사람이 처음에 제대로 가르쳐두지 않는다면 도로가 난리 나겠죠. 지금 서핑이 그런 것이 거든요. 지금 잘 배우지 않으면 나중에 무법자가 될 수 있어요."
도로에서 운전자가 지켜야 할 법규가 있듯, 서퍼가 되어 파도를 타려면 알아야 되는 중요한 룰이 있다고 합니다. '서퍼의 규칙 Surfer's codes'이라는 것이죠. 예를 들어, 하나의 파도에는 한 사람만 올라타야 하고, 먼저 올라 탄 사람이 있는 파도는 그 사람에게 양보해야 합니다. 다른 서퍼의 옆을 지나갈 때는 큰 소리로 알려야 하고요. 이런 룰을 모르고 마음대로 파도를 휘젓고 다니다가는 '바다의 무법자'가 됩니다. 채화경 대표는 이야기 중간중간에 이런 서퍼의 상호 존중과 배려를 여러 번 강조했습니다.
숍에는 디자인이 좋은 서핑 장비들이 진열되어 있었습니다. 유선형으로 잘 뻗은 보드, 날씬하게 몸에 붙는 옷, 화려한 로고의 모자. 서핑의 물건들은 색채와 무늬가 화려하고 모양이 유려했습니다. 서퍼가 아니더라도, 디자인 만으로 탐나는 물건들이 잔뜩 있었습니다. 서핑 장비로 이야기가 옮겨갔습니다.
"서핑을 시작하려면 장비를 많이 사야 하나요?"
"그렇지 않아요. 서핑이 다른 스포츠들과 다른 점이죠. 예를 들어, 스노 보드의 경우라면 내 체격에 맞는 장비가 어느 정도 정해져 있어요. 그래서 처음부터 내 부츠와 보드를 구입해서 시작하는 게 유리하는 말도 틀린 건 아니거든요. 그런데 서핑의 경우에는 장비의 종류가 아주 다양해요. (서프보드를 가리키며) 저렇게 짧은 것부터 이렇게 긴 것 까지 있고. 그러니, 몇 번은 렌털을 해서 써 보신 다음에 구입하시면 좋죠. 처음 오시는 초보들 중에도 가격이 좀 있는 이런 웻수트(wetsuit: 서핑할 때 입는 위아래가 붙은 옷)를 당장 구입하는 분들이 있어요. 물론, 저도 사업을 하는 사람이니까 팔아야 하지만, (웃음) 말리기도 해요. 충동구매거든요."
충동구매를 말리는 사업. 무조건 하나라도 더 팔기보다는 '빌려서 해보고 정말 꾸준히 할 것 다 같으면 그때부터 서서히 하나씩 사야 한다.'라고 힘주어 말했습니다.
서핑 문화에 내가 점점점 흡수가 되는 것이죠
"서핑보드는 저희가 강습할 때 쓰는 보드는 겉에도 스펀지로 되어 있어요. 부력도 훨씬 더 좋거든요. 그래서 그게 초보자들이 타기가 쉬운데 그 보드로 한 10번 내가 테이크 오프(Take off: 서핑 보드를 딛고 일어서는 동작)를 했을 때 한 6번 정도를 내가 성공을 해야, 그때쯤에 저희는 보드를 구매하시는 것을 추천을 해드려요. 왜냐하면 스펀지로 안 되면 진짜 보드로는 절대 안 되거든요. 그렇게 어느 정도 그 정도 타면서 자신에게 맞는 보드를 골라가는 거죠."
"잘 타면 큰 보드를 타는 것 아닌가요?"
"그건 상관없어요." 잠시 생각하던 채 대표는 음악에 비유해서 설명했습니다. "어떤 사람은 클래식을 좋아해서 연주회에 가고, 어떤 사람은 락을 좋아해서 페스티벌 가죠. 롱보드(Long board)와 숏 보드(Short board)를 선택하는 기준도 그렇게 보시면 돼요. 스펀지 보드를 타면서 자세를 익히고, 다양한 보드를 경험하며 취향을 만들어요. 그러면서 서핑 문화에 점점점 흡수되는 것이죠."
채화경 대표는 '점점점 흡수되는 문화'가 서프라는 것을 특히 힘주어 말했습니다. 스키와 스노보드처럼 한때의 유행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충분한 시간을 들여야 한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서핑은 단순한 레포츠 사업이 아니라 긴 시간에 걸쳐 자리 잡아야 할 문화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를 알리기 위해 남편과 함께 서핑 비즈니스에 뛰어들었습니다.
이후에 숍을 운영하는 여러 서퍼들을 만나며 알게 된 일이지만, 양양을 서핑의 성지로 만든 사람들은 하나 같이 서핑 문화를 '길게 바라보는' 서핑 전도사 들이었습니다. 이들은 입을 모아 서핑을 단순한 사업으로 시작한 것이 아니며 자신의 삶과 하나가 된 라이프 스타일이라고 말했고, 그것을 알리는 것이 자신의 역할이라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말콤 글래드웰은 자신의 저서 <티핑 포인트>에서 이런 사람들을 메이븐 (maven: 영향력 있는 전문가)이라고 표현했죠. 전문 지식을 열심히 주변에 퍼뜨리는 사람들 말입니다. 메이븐은 직접 경험을 통해 지식을 습득하고, 이를 다른 사람에게 나눠주고 싶어 합니다. "내가 그거 해봤는데, 이러이러해서 좋아. 강추야."라고 말하는 여러 분 주변의 사람이 바로 메이븐입니다. 그리고 글래드웰에 따르면, 이런 메이븐들이 영향력을 가지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이들의 '사심 없음'입니다. 이런 '강추'를 통해 자신이 얻는 직접적 이득은 별로 없다는 것이죠. 순수한 마음이 강력한 영향력을 만듭니다.
채화경 대표가 남편과 운영하는 바루 서프는 유난히 이런 메이븐의 느낌이 강했습니다. 노는 것을 좋아하는 남녀가 만나 결혼하고 서핑숍을 낸 이들의 사심 없음은 양양에서 통했습니다. 많은 초보 서퍼들이 바루 서프에서 강습을 받고, 카페에서 교류하고, 도미토리에 묵으며 서핑을 이해했습니다. 카페의 소파에 느긋하게 기대서 맥주를 마시고 서핑 시합 동영상을 함께 보며 수다를 떨었습니다. 데크의 캠핑 체어에 앉아 바다를 바라보다가, 좋은 파도가 나타나면 용감하게 바다로 헤엄쳐갔습니다. 숍과 카페와 숙소를 결합한 바루 서프에 머물면서 잠시나마 서퍼의 삶을 살아본 거죠.
자연에서 아이를 키우고 싶어 양양을 택한 서퍼 가족
동해안의 서퍼들은 겨울에는 숍의 문을 닫고 발리의 해변으로 서핑을 하러 훌쩍 떠나기도 합니다. 좋아하는 일을 하며 행복한 삶을 추구하는 서퍼들은 좋은 파도가 있는 곳으로 떠날 준비가 되어있습니다. 정착의 관습에 구애받지 않는 보헤미안입니다.
보헤미안은 자유롭게 사는 것 자체가 자신의 중요한 자산입니다. 학군과 직장에 맞춰 살 곳을 정하는 우리에게 파도를 찾아 떠나는 보헤미안의 라이프 스타일은 매력적으로 보입니다. 보헤미안들은 자신의 직업, 사용하는 물건, 먹고 마시는 것이 자신이 믿는 가치를 반영하길 원합니다. 모험심, 자유로움, 재미, 영적 충만함, 자연스러운 매너 같은 것들을요.
7번 국도변 서퍼들의 숍은 이런 가치를 파는 보헤미안 라이프 스타일 비즈니스였습니다. 바루 서프는 자연에서 아이를 키우고 싶어 양양을 택한 서퍼 가족의 진심이 만든 삶의 방식이었습니다. 합리적인 이익보다는 사는 방식을 보여주는 것에 더 가치를 둡니다. 좋아하는 프로 서퍼들을 상상하며 옷장을 만들고, 서퍼의 규칙을 알려주고, 서핑 문화가 점점점 흡수되도록 했습니다. 여기에 도시의 젊은 사람들이 빠르게 반응하기 시작했습니다. 양양이 '쿨'한 서프 문화의 중심지가 된 이유입니다.
서퍼들의 보헤미안 비즈니스. 이것으로 인구유출이 심각하던 3만 인구의 도시 양양이 매력도시가 될 기회를 잡았습니다. 다음 편에서는 서핑을 '바다 사업'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써피 비치'를 만나겠습니다. A-city
Reference
바루 서프 양양 Barusurf Yangyang +
프로 서퍼, 캘리 슬레이터 Kelly Slater +
서퍼의 규칙 Surfer's codes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