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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매력도시 연구소 Jul 20. 2018

리터너와 가족의 왕국, <존 하테치아>

매력도시 매거진 vol.04_안동 (2)


'리터너 Returner'.


'돌아온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매력도시 연구소는 소도시의 리터너들을 주목하고 있습니다. 

지방의 작은 도시에서 태어나고 자란 이들은 청년기에 고향을 떠났습니다. 이 조그만 마을 너머에 있을, 큰 꿈을 펼칠 무대를 찾아 대도시나 외국으로 나갔습니다. 그런데 3, 40대에 접어들어 그중 몇몇이 마을로 되돌아옵니다. 그렇게 바라던 꿈의 무대를 버리고 말이죠. 큰 바다를 돌아다닌 후, 인생의 원점인 작은 개울로 헤엄쳐 되돌아온 겁니다.

우리는 매력 소도시를 취재하는 과정에서 이런 리터너들이 지역의 구심점이 되어 마을의 매력을 높이는 모습을 여러 차례 보게 되었고, 관심을 가지고 그들을 만나봤습니다. 소도시의 '리터너 효과 effect'를 확인하기 위해서 말입니다. 


젊은 날, 답답한 울타리로만 느껴지던 내 고향에 대체 뭐가 있길래, 어느 순간 이들은 다시 되돌아왔을까요?


안동에는 리터너 박종식 셰프가 있습니다. 다국적 식당 <존 하테치아>를 운영하는 오너 셰프입니다.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몇 번 만났는데, 매번 편안한 티셔츠에 차림이었지만 앞치마는 늘 단정하게 입고 일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동네에서는 존 John으로 통하시더라고요"

주변 사람들이 다들 그를 존이라고 부르는 이유가 궁금해서 물어봤습니다. 

"제 이름이 박종식인데. 외국 친구들이, 종식, 종식 부르다가, 그냥 존이라고 해라. 그래서 지금은 편하게 존으로 부르게 됐어요. 식당 이름인 <존 하테치아>의 존이죠. '하테치아Jatetxea'는 스페인 바스크 지역을 여행할 때 후배에게 들은 단어였어요. 그 지역 언어로 작은 식당이라는 뜻이래요. 재미있는 이름이다, 나중에 어딘가 사용하면 좋겠다 싶어 메모를 해놨었죠."



안동에서 태어난 그는 셰프가 되기 위해 고향을 떠났습니다. 요리를 공부하고, 현장 경험을 쌓고, 해외의 음식 문화를 경험한 그는 안동으로 돌아와 자신의 가게를 오픈했습니다. 호텔에서 일했던 이력, 서울의 유명 레스토랑, 스페인의 작은 식당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원 테이블 one table 식당을 차리고 요리를 했습니다. 매력도시연구소가 존과 그의 식당을 점찍은 이유는, 무엇보다 수준 높은 음식과 편안하게 꾸민 공간 때문이었습니다. 이태원에 즐비한 다국적 레스토랑과 나란히 견주어도 손색없는 식당이었습니다. 담백하게 재료의 맛을 살리고 악센트를 살짝 더한 음식들은 스페인과 이탈리아의 레스토랑의 그것과 진배없었습니다. 안동 간고등어와 찜닭의 연속 공격에 지친 우리가 안심하고 쉬어 갈 수 있는 오아시스가 바로 존 하테치아였습니다. 


안동에서 이런 다국적 요리를 하는 것은 물론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음식에 루꼴라를 듬뿍 올렸는데, 손님들의 반응은 대부분 이랬어요. 이게 대체 무슨 풀이냐. 화덕 피자를 드렸더니, 왜 단무지는 안주냐.(웃음) 저는 대도시와 해외 경험 속에 자연스럽게 체득한 음식인데, 돌아와서 보니, 아, 내 고향이 원래 이런 동네였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이런 곳이구나, 아직은."


그는 왜 피자에 단무지가 필요 없는지 손님들에게 일일이 설명하는 대신, 더욱 요리에 집중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음식은 결국 먹어봐야 아는 것이고, 그 과정을 통해 안동도 입맛의 지평을 넓혀가리라. 자신이 그랬던 처럼 말입니다. 루꼴라를 상추로 바꾸거나 단무지를 추가하기보다는, 안동에서 루꼴라를 더 많이 쓰는 식당이 되기로 했습니다. 



"흔하고 많이 먹어야 음식이 발달하게 마련이거든요." 요리에 대해 물어보면 존 셰프는 조용하지만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합니다. 

존 셰프의 말이 맞습니다. 안동 간고등어가 유명한 이유는 안동에서 고등어가 많이 잡히기 때문이 아닙니다. 기름진 생선을 노릇하게 잘 구워서 갓 지은 쌀밥과 먹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으니 이런 음식이 발달한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유난히 짭조름하게 간을 잘하는 사람이 등장해서 아예 직업으로 간잽이를 하기도 하고요. 좋아하고 많이 먹으니 음식이 발달하는 것일 테죠.


새로운 음식을 안동에 소개하겠다고 마음은 먹었지만, 뭐 하나 쉬운 일은 없었습니다. 우선, 루꼴라 같은 독특한 식자재를 구하는 일부터 문제였습니다. 대도시의 대형 마트처럼, 각종 채소와 독특한 재료를 파는 곳이 이곳에는 없으니까요. 존 셰프의 해결책은,

"아버지께 재배해달라고 부탁했어요. 루꼴라와 바질 정도는 안동에서 자체 생산할 수 있을 테니까."

안동은 시내에서 한 걸음만 나가면 산과 밭이 펼쳐지는 도농都農 근접 도시입니다. 흔히들 말하는 팜 투 테이블 Farm to table 레스토랑이 생기기엔 최적의 입지조건을 갖추고 있습니다. 주변의 농장 한편에서 아버지가 루꼴라를 키우고, 시내에서는 아들이 그 재료를 받아서 음식을 만든다. 부자父子의 콜라보레이션. 이 멋진 스토리가 자연스럽게 완성되었습니다. 


가족의 콜라보레이션


어머니도 존의 작은 식당 팀에 합류했습니다. 처음에는 1인 식당으로 운영해보려 했으니, 일손이 부족해서 어머니가 존의 수 셰프 sou chef로 일하게 되었습니다. 평생 가족들을 위해서만 음식을 하던 어머니가 주방에 서자, 의지 굳건한 셰프와 부드럽게 포용하는 어머니의 조합이 완성되었습니다. 

존의 안동 귀향이 가족 비즈니스로 이어진 겁니다. 사업을 하시던 아버지와 가정 주부였던 어머니가 존 하테치아 팀의 일원이 된 거죠. 놀라운 일은 또 이어졌습니다. 


"처음엔 우리 둘 다, 결혼은 안 하고 독신으로 살겠다고 했었어요.(웃음)"

식당 근처에서 카페 <가비향>을 운영하는 미모의 사장님이 식사를 하러 가끔 존 하테치아를 찾아왔고, 커피 만드느라 밥을 잘 못 먹고 다니는 여성분이 측은하다며 주방의 어머니가 잘 챙겨주셨습니다. 한 번 두 번 방문이 잦아지고, 영업을 마친 후 존과 사장님은 안동의 삶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털어놓는 친구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독신주의자 두 사람은 결혼을 하고 곧 태어날 아이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아내가 운영하던 커피숍은 곧 안동의 이탈리안 식당으로 다시 태어납니다. 가족의 왕국이 안동에 완성된 겁니다. 


음식 이야기를 할 때 보다 한결 표정과 말투가 부드러워진 존에게 안동에 돌아오니 뭐가 제일 좋은가 물어봤습니다. 

"가족들과 따뜻하게 밥 먹는 것." 

여러분, 정답은 가족이었습니다. 많은 곳을 거쳐 안동으로 돌아온 리터너는 가족이 자신을 안동에 자리 잡게 했다고 말합니다. 끼니를 건너뛰어 가며 바쁘게 음식을 만들던 삶에서 벗어나, 그는 손님을 치른 후 가게 문을 닫고 가족들과 밥을 먹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가족이 주는 안심과 지속성. 리터너가 세운 왕국이 가진 힘입니다. 


리터너의 귀향. 도시의 바쁜 삶에 지친 그를 고향이 위로해준다는 정신적 측면 외에, 이들이 집으로 돌아와서 얻게 되는 현실적인 장점도 있습니다. 

대도시와 글로벌 문화를 맛본 후 와보니, 고향이 이전과는 다른 시각으로 보입니다. 지긋지긋했던 앞산의 경치, 한적하고 쓸쓸한 뒷골목. 떠나올 때만 해도 분명히 이렇게 부정적인 느낌이었는데, 다시 돌아와 보니 비슷한 풍경 속에 숨어 있던 스페인의 아늑한 식당이 떠오릅니다. 영화 한 편 보려 해도, 파스타 한번 먹으려 해도 인근의 대도시까지 나가야 했던 어릴 적 슬픈 추억은 이제 리터너들에게는 오히려 좋은 기회입니다. '화덕 피자? 없으면 내가 하지, 뭐.' 소도시의 결핍은 리터너의 기회입니다.


소도시의 결핍은
리터너의 기회


무엇보다 이들은 스스로의 눈으로 다음과 같은 장면을 목격했습니다. 서울 외곽 동네의 뒷골목에도, 일본과 캐나다의 한적한 소도시에도 지역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문화를 만들어내며 행복하게 사는 모습을. 대도시의 심각한 경쟁과 과도한 임대료에서 벗어날 수 있고 새로운 문화를 내 고향에 소개한다는 자부심도 있습니다. 심리적 안정감과 현실적인 자신감을 등에 업고 원하는 삶을 위해 자유롭게 활동을 할 수 있는 무대가 내 고향입니다. 


존의 식당이 입소문을 타자 주변에 친구들이 늘어났습니다. 수제 햄버거 가게와 소품 가게가 들어섰고,  존의 가게 2층에는 곧 새로운 카페가 개업할 예정입니다. 카페의 사장님 역시 안동 리터너라고 합니다. 친구들과의 든든한 연대까지 생긴 것입니다. 존 셰프는 여건을 정비해서 루꼴라 재배도 더 많이 하고, 식당들이 더 많이 생기면 나눠주고 써보게 할 예정입니다. 


리터너, 가족과 친구들
그리고 지역의 구심점


리터너 존 셰프의 귀향 후, 별다른 매력이 없던 안동 퇴계로 변에 글로벌 식당과 카페가 들어섰습니다. '또 하나 뜨는 골목이 생겼구나'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안동 퇴계로를 바라보는 더 중요한 관점은, 이런 변화의 중심에 고향의 가치를 알아본 사람이 있고, 이 사람을 중심으로 가족과 친구들이 변화하기 시작했다는 점입니다. 안동의 아버지가 평생 구경도 못해봤던 채소를 기르시고, 어머니가 새로운 스페인 레시피를 시도해봅니다. 친구들은 그의 음식을 먹어보며 새로운 아이디어와 용기를 얻습니다. 

고향과 타향의 경험을 잘 버무려 새로운 에너지를 지역에 공급하는 역할. 리터너가 일으킨 작은 물결이 도시 매력의 파도로 되돌아오고 있습니다. 근사한 맛집과 카페가 생기고 상업 인구가 모여들어 매력도시가 되는 것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변화가 지금 안동 퇴계로에 벌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가족과 친구들, 그리고 지역의 구심점. 매력도시 연구소가 리터너들을 주목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이들이 힘을 합쳐 만드는 변화를 확인하기 위해 안동의 작은 식당을 예약해보시길.   [매력도시연구소]




매력도시 매거진 vol.04_안동

1편: 전통과 글로벌의 원투 펀치, 안동의 매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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