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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매력도시 연구소 Jul 29. 2018

귀향파의 매력, 낙향파의 매력: <소규모 상점> (1)

매력도시 매거진 vol.04_안동 (3)


귀향파도 있지만, 낙향파도 있습니다. 


지난 글에서 매력도시연구소는 '리터너 Returner', 즉, 소도시로 귀향歸鄕한 사람들을 주목한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대도시의 경험과 고향에 대한 이해, 두 가지 장점을 갖춘 귀향파派들이 소도시에 매력을 불어넣고 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이번에는 소도시를 찾아오는 또 다른 종류의 매력적인 사람들에 대해 생각해보려 합니다. 대도시에서 태어나고 살다가 소도시로 삶의 터전을 옮긴 사람들 말입니다. 새로운 삶의 고향을 스스로 찾아 나선 낙향파落鄕派입니다. 


인생의 전반전과 후반전을 완전히 다른 경기장에서, 그것도 새로운 시합으로 치른다. 이 쉽지 않은 결정을 내린 낙향파들은 편안하게 홈구장에 돌아온 귀향파와는 조금 다른 관점으로 지역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매력도시연구소가 낙향파에게도 관심을 가지게 된 이유는 이들이 소도시의 매력에 대해 그동안 생각하지 못했던 질문을 던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어떤 속도로 매력을 얻어야 할까?"

 


안동의 낙향파, 김선영 대표를 만났습니다. 지난 글에서 소개했던 귀향파 <존하테치아>에서 길 하나만 건너면 김선영 대표가 운영하는 지역 상품 편집숍, <소규모 상점>이 있습니다. 

"가족 한 사람 당 옷 다섯 벌 씩만 남겼어요. 사는 방식을 한 번에 바꿔야 해요. 그렇지 않으면 금세 다시 돌아가요. 서울의 생활로." 

김선영 대표는 중간에 말을 흐리는 법이 없습니다. 조용한 목소리지만, 또렷하게 한 문장 한 문장 마침표를 찍듯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그 말 그대로 살고 있습니다. 원래 김선영 대표 부부는 방송 작가와 감독으로 서울에서 살았습니다. 이들은 우연히 도시 농부를 체험하다가 시골 생활을 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고, 온 가족이 안동으로 이사했습니다. 



안동의 오래된 한옥으로 들어간 가족은 집을 고치고 매만져서 스스로 삶의 터전을 만들었습니다. 옷, 가구, 전자제품 같은 삶의 구성품을 다시 돌아보고 잉여를 걷어내 갔습니다. 작가와 감독 부부. 어찌 보면 우리 사회에서 가장 변덕스럽게 돌아가는 대중문화를 다루던 사람들이 변화에 완고하기로 유명한 동네에 제 발로 걸어 들어온 것입니다.  

속도전의 최전선에서 싸우던 남편은 천천히 가구를 손으로 깎고 다듬는 목수가 되었고, 부인은 자신처럼 귀향한 사람들이 만든 물건들을 모아 소품 가게 <소규모 상점>을 열었습니다. 숨 쉴 틈 없이 전개되던 드라마가 어느 순간 갑자기 롱 테이크 슬로모션으로 바뀐 겁니다. 


김선영 대표는 시내 중심, 퇴계로에 면한 작고 낮은 집을 골라 깨끗한 흰색 페인트를 칠했습니다. 여백이 넉넉한 벽에 담백한 글씨체로 <소규모 상점>이라는 간판을 걸었습니다. 가볍게 문을 열고 한 계단 내려가면 밝은 빛이 가득한 가게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꾸밈이나 과장이라고는 한 점도 섞이지 않은 순수한 느낌의 공간입니다. 



판매하는 물건들도 가게와 닮았습니다. 나무 도마, 과일청, 수제 캔들. 정성과 시간을 듬뿍 담아 만든 물건들입니다. 그런데 아무리 소규모 가게라 하더라도 그렇지, 가게를 둘러보면 파는 물건이 그다지 많지 않습니다. 매력도시연구소는 겨울과 봄, 두 번 가게를 찾아갔는데 봄에는 겨울에 비해 유난히 물건이 적었습니다. 

"팔리고 나면 더 이상 물건이 없는 경우가 많아요. 여기서 파는 물건들은 시골로 오신 분들이 소량만 만드는 것들이거든요. 그래서 이 분들이 한가 해지는 농한기에 물건이 늘어나요."


가게에 둘 물건을 고르는 원칙은 단순합니다. 로컬과 핸드메이드. 자신과 상황이 비슷한 귀향파들이 집에서 직접 만들어 생산하는 향초, 꿀, 소품을 팔다 보니, 물건이 하나 빠지면 금방 다시 보충하기 어렵습니다. 많이 채우고 많이 팔 생각을 하는 게 가게의 당연한 이치일 텐데... 그러니 '소규모'라는 가게의 이름은 공간의 규모라기보다는 운영의 태도를 드러내는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가게 유지가 가능하신가요? 죄송. 어리석은 질문입니다만.

"여기는 큰 기업이 없으니까, 큰 소비도 없어요." 멋진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좋은 레스토랑, 대형 마트, 거대한 몰이 주변에 있기 때문에, 우리는 바쁘게 돈을 법니다. 소비가 삶의 출발점이고 동기입니다.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롯데백화점, 신라호텔에 둘러싸여 사니, 마음이 조급하고 바쁩니다. 대규모 사회에서 벗어나면 소규모 삶이 가능합니다. 


안동의 최근 변화에 대한 그녀의 생각도 들어봤습니다.

"소도시가 활성화된다던가 그런 변화에 주목하진 않아요. 우리 가족은 변화가 적다는 이유로 안동을 택했어요. 최근 이곳에서 벌어지는 빠른 변화가 좋은 일인지 안 좋은 일인지 모르겠어요."

그녀는 안동의 느린 속도가 매력이라고 말합니다. <소규모 상점>처럼 담담하고 저자극성 공간을 만들고 심심치 않게 찾아오는 오는 손님들을 기쁘게 맞는 것. 이런 가치가 변화의 속도보다 더 중요하다고 믿습니다. 빠른 변화는 오래가지 않는다는 사실을 일과 삶을 통해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쯤에서 생각해봤습니다. 귀향파와 낙향파가 도시를 바라보는 관점의 차이는 뭘까요?


귀향파는 고향으로 돌아온 사람들입니다. 더 큰 꿈을 펼치기 위해 고향을 떠나 대도시에서, 해외에서 경험을 쌓았습니다. 그리고 어느 시점에서 돌이켜보게 됩니다. 정말 내가 원하던 삶인가? 이곳에서 행복한가? 그리고 자연스럽게 자신의 고향을 떠올립니다. 익숙한 고향에서 새로운 시도를 해보자. 말하자면, 귀향파의 동인動因은 홈그라운드의 익숙함과 새로운 기회입니다. 고향이라는 푹신한 안전망이 버티고 있으니, 진심으로 바라던 일을 향해 용기 있게 뛰어들 수 있습니다. 


낙향파에게는 대도시의 세련된 풍요가 태어나면서부터 익숙합니다. 그 속에 살다 보니 어느 순간 풍요 속에 근원적인 결핍이 있음을 알게 됩니다. 사랑, 감각, 여유, 태도. 눈에 보이지 않는 가치를 채우는 일이 대도시에서는 쉽지 않습니다. 소비사회의 안티테제, 삶의 규모와 속도에 대한 의심. 이런 본질적 질문의 해답을 얻기 위해 새로운의 터전을 찾아 나섭니다. 서울을 떠난 낙향파에게는 고향이라는 안전장치가 없습니다. 내가 고른 도시가 해결책을 내놓지 못한다면, 다시 지도를 펴고 다른 곳으로 옮겨갈 준비를 할지 모릅니다.



그래서 낙향파들은 지역을 객관적인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습니다. 귀향파는 '여긴 누가 뭐래도 내 고향이니까'라고 한 줄 이유를 달 수 있지만, 낙향파는 좀 더 공정하고 명확한 기준으로 도시를 선택합니다. 이웃과 가족들의 눈치를 볼 필요도 없습니다. 도시가 자신의 신념과 잘 맞는지, 그리고 내가 믿는 바 대로 도시가 변화해나가는지 체크합니다. 

"저희 부부는 어떻게 보면 사회의 중심에만 있었잖아요. 변방으로 나오니까 중심이 훨씬 잘 보여요." 행정과 기업이 중심의 논리로 변방을 움직이려 한다면, 이들은 손을 들고 이의를 제기할 수 있을 겁니다.


삶의 태도, 낙향파의 관심


서울을 버리고 한적한 시골에 사는 낙향파들을 보면서 한적하고 유유자적한 삶의 방식이 부럽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만난 김선영 대표는 요즘 말하는 킨포크 Kinfolk, 욜로 Yola, 소확행小確幸을 찾아 안동을 택한 것 같지는 않습니다. 라이프 스타일 style이라기보다는 라이프 애티튜드 attitude를 얻기 위해 삶의 터전을 적극적으로 선택했습니다. 

낙향이 유유자적한 삶 같은 개인적 관심사에만 머무르지 않는다는 것을 김선영 대표의 <소규모 상점>은 보여줍니다. 작은 가게를 열고 자신과 비슷한 사람들이 농한기에 보내오는 물건으로 공간을 채웁니다. 그리고 이런 원칙이 가진 힘으로 지역에 기여하고 태도의 변화가 자신과 가족을 넘어 지역에도 천천히 일어나기를 기다립니다. 



매력의 속도


근본적인 질문을 해결하기 위해 삶의 터전을 옮긴 낙향파는 소도시가 빠르게 매력을 얻고 활성화되는 것에 큰 관심을 보이지 않습니다. 오히려 느리게, 매력을 얻는 속도를 조절하여 정확한 방향을 찾아보자는 것이 이들의 태도입니다. 

생각해보면, 포틀랜드가 얼마 만에 킨포크를 하게 됐는지, 덴마크는 어느 정도 시간이 걸러 휘게를 삶의 부분으로 받아들였는지, 잘 알지 못합니다. 일과 삶의 균형, 가족과 함께 하는 시간이라는 목표를 정했지만, 거기까지 다다르기 위해 얼마나 많은 시간이 필요해,라고 물어보는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습니다. 라곰 Lagom과 단샤리斷捨離 조차 빨리 얻으려고 조급해하는 아이러니가 벌어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간소하게 삶을 살고 싶어. 우리는 늘 다짐해보지만, 조금만 방심해도 충동적으로 쇼핑을 하고 옷장의 옷이 하나씩 늘어납니다. 매력도시도 그럴 겁니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담담한 매력을 자신만의 템포로 늘려나가려는 의지와 철학이 없다면 금세 너무 많은 것에 짓눌릴지 모릅니다. 매력도시의 속도 조절. 낙향파 김선영 대표가 <소규모 상점>에서 발신하는 메시지라고 생각합니다.


김선영 대표와의 대화가 길어질수록, 소도시의 매력에 대한 견해보다는 삶의 태도에 대한 그녀의 생각이 점점 더 궁금해졌습니다. 그녀가 '가족의 시골'에서 겪은 삶의 변화는 무엇일까요? 다음 글에서 이어집니다.    [매력도시연구소]



Reference

<가족의 시골> 김선영 +


매력도시 매거진 vol.04_안동

1편: 전통과 글로벌의 원투 펀치, 안동의 매력

2편: 리터너와 가족의 왕국, <존 하테치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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