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 취재 중, 잠시 딴 소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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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나 살기 좋은 도시인지 측정하는 기준은 뭘까요?
가계소득, 교통 인프라, 녹지 면적, 범죄율처럼, 이미 보편적으로 사용되는 지표도 있겠지만, 이 도시가 얼마나 매력적인지 알 수 있는 지표가 있을까요? 말하자면 정량적 지표 외에 주관적인 도시의 가치나 행복도를 측정할 수 있는 기준이 있을까, 궁금합니다.
그래서 연구했습니다. '맥주/생수 가격비'를 소개합니다.
예를 들어 보죠. 여러분이 외국의 어느 도시를 여행하고 있다고 생각해봅시다. 한참 구경을 다니다가 목이 말라서 동네의 평범한 식당에 들어갑니다. 메뉴를 훑어보니 이런저런 음료수들이 있습니다. 여기서 맥주와 생수 한잔의 가격을 비교해보자는 것이 바로 '맥주/생수 가격비'입니다. (공짜로 주는 수돗물 말고, 주문해서 먹는 생수 말이죠.) 만약 맥주 한잔의 가격이 6달러, 생수가 3달러라고 하면 맥주 대 생수 가격비는 6 나누기 3 = 2가 되는 겁니다.
그럼 이 '맥생비'가 무엇을 의미하느냐? 이 도시가 밤에 얼마나 행복하고 즐거운지를 알 수 있는 지표라는 것이 우리 연구소의 주장입니다. 맥생비가 낮으면, 즉, 맥주값이 생수값에 비해 상대적으로 저렴하다면, "야, 물 마시느니 차라리 맥주를 한잔하자" 이런 결정을 내리는 사람이 늘어납니다. 맥생비가 충분히 낮다면, 한잔이 두세 잔으로 이어집니다. 이 밤, 행복한 사람들이 도시에 점점 늘어나는 거죠. 가게는 늦은 시간까지 사람들로 가득 차고, 소상공인들은 소득이 늘며, 도시의 밤을 즐기는 관광객이 증가합니다. 믿거나 말거나, 맥생비는 그 도시의 나이트 라이프가 얼마나 매력적인지 측정하는 기준이 됩니다.
이 말이 사실인지 여부는 잠시 제쳐두고, '그 맥생비라는 거, 도시마다 차이가 있긴 있는 거야?' 이런 의문을 품으실 분들을 위해 매력도시 연구소가 조사한 바를 알려드리자면:
- 런던의 평범한 레스토랑에서 500cc 생맥주 한잔을 주문하면 평균 5파운드, 같은 양의 생수를 주문하려면 1.47파운드가 듭니다. 그러니 런던의 맥생비는 5/1.47 = 3.4 가 되겠죠.
- 뉴욕은 생맥주가 7달러, 생수가 2.6달러. 맥생비는 2.7
- 파리는 6.75유로 나누기 3.24 = 맥생비 2.1
세계 3대 매력 도시 중에는 파리의 밤이 가장 즐겁고, 의외로 런던이 덜 취한 도시입니다.
맥생비의 과학성(!)을 증명하기 위해 다른 중요 도시들도 살펴보죠.
베를린의 경우, 3.50 € / 2.38€ = 무려 1.47! 행복한 베를린 시민들입니다. 나이트클럽계의 세계 수도라는 명성에 걸맞은 맥생비를 자랑합니다. 싱가포르가 심각한데요, 10.00 S$ / 1.75 S$ =5.7. 싱가포르 시장님은 반성을 좀 하셔야겠네요.
그렇다면, 맥생비 1위 도시는 어디일까요?
프라하입니다. 35.00 Kč / 35.77 Kč =0.9. 놀랍게도 프라하에서는 생수를 마시느니 같은 양의 맥주를 마시는 편이 돈이 덜 든다, 이런 결론이 나옵니다.
서울이 궁금하죠?
4000원/1336원 = 3.0입니다. 실은 여기에 문화 차이가 있는데, 혹시 호프집 가서 생수를 사서 마시는 분들 있습니까? 어디 가나 정수기가 있고, 물이 공짜인 우리나라에서는 적용하기 힘든 기준이긴 합니다. 여하튼, 수치상으로는 서울이 런던을 눌렀습니다.
이상, 매력도시의 지표, <비어/워터 인덱스 Beer/Water Index>에 대한 연구 보고였습니다. 혹시 이 지표로 논문 쓰시려는 분들 있을까 봐 말씀드리는데, 매력도시 연구소가 다 지어낸 이야기이니 참고하세요. 그럼, 이런 믿거나 말거나 같은 조사를 대체 왜 했느냐. 매력 도시의 측정 지표에 대한 얘기를 하려다 보니, 서론이 좀 길어졌습니다. 진짜 이야기는 다음 편에. [매력도시연구소]
Reference
Cost of living, Numbeo +
Beer Index Lufthansa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