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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샹 Oct 11. 2017

위화의 인생을 읽고

活着

이번 연휴가 오기 전 읽고 싶었던 책 세 권을 샀다.


하루키의 에세이 직업으로서의 소설가

칼뉴포트의 딥워크


그리고 위화의 인생


오늘 아이 우는 소리에 잠이 깨어 책을 잡았다가 멈추지 못해서 늦은 새벽에 완독 하게 되었다. 위화의 인생은 중국의 문화 대혁명 전후를 배경으로 쓰인 소설이었는데, 소설 속 주인공인 푸구이의 인생을 들려주는 내용이다. 비록 중국의 시대적 배경을 바탕으로 한 중국 작가의 소설이지만, 타 국가의 어떤 사람이 읽어도 대부분이 공감할 만한 글이었다.


푸구이는 유복한 집안에서 태어나 방탕하게 살아가다 도박과 여색(주로 도박)에 빠져 모든 가산을 탕진하고 농민으로서 남은 삶을 살아가게 된다. 경제적으로 넉넉하던 시절의 그는 가족을 소홀히 하고 소중한 것들을 놓치고 살다가 도박 빚으로 인해 나락으로 떨어지고 나서야 가족들을 살뜰히 살피고 이웃과 어울리며 남은 여생을 보낸다. 물론 소설은 푸구이의 행복한 일생을 써 내려가지 않았다. 지극히도 현실적이게 또는 지극히도 불행하게 경제적으로 힘들어진 시점에서 맞닥뜨린 온갖 역경과 가족의 죽음 등을 주로 다루었다. 나는 이렇다 할 반전도 없는 푸구이의 인생을 들여다본 후 그의 아버지가 가산을 탕진하고 돌아온 그에게 들려주었던 말이 계속 맴돈다.


"옛날에 우리 쉬씨 집안 조상들은 병아리 한 마리를 키웠을 뿐인데 그 병아리가 자라서 닭이 되었고, 닭이 자라서 거위가 되었고, 거위가 자라서 양이되었고, 양이 다시 소가 되었단다. 우리 쉬씨 집안은 그렇게 발전해 왔지. 그런데 내 손에서 쉬씨 집안의 소는 양으로 변했고, 양은 또 거위로 변했다. 네 대에 이르러서는 거위가 닭이 되었다가, 이제 닭도 없어졌구나."

(푸구이의 아버지도 도박으로 가산의 절반을 날렸다.)


이 문장이 지금의 나와 어떠한 연관이 있지는 않다. 그런데도 이 문장이 맴도는 이유는 저 문장 안에 나타나지 않은 가족의 소중함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병아리가 소가 되고 소가 무(無)로 돌아가기까지 푸구이 부친의 가족도 푸구이의 가족도 모두 그들 곁을 지켰다는 것이다. 현대적 시점에서 이러한 교훈은 시대적 흐름을 역행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다만 방탕한 구성원의 모든 것을 감내하고 함께 해주는 것이 미덕인 세상은 지났기에 이 책이 더 가슴에 와 닿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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